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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인문 그리고 'A from place' /김수우

인류의 많은 지혜는 근원을 찾는 작업, 더이상 분석 말고 그냥 끌어안고 울자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5-13 21:04:39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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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지나간다. 신생을 꿈꾸던 날들이 희미해져 간다. 그 연연한 설레임은 어디 갔을까. 자살과 존속살인이 많아지는 일상 앞에 망연자실, 울적하다. 하루하루 초록으로 선명한 오월 숲이 무색하다. 아차 하는 사이, 함부로 놓쳐버린 저 생명의 끈들을 어쩔 것인가. 누군가의 비극으로 돌려버리기에 생명경시는 만연한 현상이 되어버렸다. 사회가 다원화되면서 모든 것이 재정의되고 있다. 역사가, 사랑이, 사물이 재정의되지만, 그 어떤 개념의 재정의가 이 분열과 폭력을 설명할 것인가. 여기는 어디쯤일까. 우리는 어디를 가는 중일까.

동광동 인쇄골목에서 생활한 지 2년이 지났다. 변화가 많다면 많고 없다면 없는 백년어서원이지만 중요한 건 많은 사람이 이 공간에 마음을 보태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사실의 결과가 되는 장소(a to place)인가, 사실의 원인이 되는 장소(a from place)인가. 건축가 루이스 칸의 질문이다. 존재의 영감을 받는 장소란 무엇을 위해 만들어진 결과가 아니라, 무엇을 만들어내는 원인이 되는 힘을 인지하게 한다는 것이다.

지성인이 출현하면서 많은 경전이 생겼다. 이는 모두 무한에 대한 물음일 것이다. 생명윤리를 자각하면서 또 이 문명의 부조리에 대응하면서 진행된 사유는 무수한 형식을 만들어냈다. 그 형식을 해석하기 위해 지난한 학문을 계속하고 있는 인류이다. 하지만 그 복잡한 지혜들이 결국 근원을 기억해내기 위한 작업에 불과한 건 아닐까. 광부는 순수물질을 찾아 갱도 깊이, 땅의 근원을 파 들어간다. 우리는 무엇을 따라 삶의 갱도로 깊이 들어가야 하는 걸까. 순수한 사람은 근원을 잘 기억해낸다. 근원에 대한 추억을 상실하지 않는 사람만이 근원을 찾아낼 수 있기에 말이다. 그건 어린아이 같은 순수일 수도 있지만 온갖 고난을 체험한, 이른바 깨달은 사람이 품고 있는 폭풍 뒤의 햇빛 같은 순수이다. 우리가 따라갈 것은 그 순수, 근원을 찾은 자의 눈물과 용기가 아닐까.

루이스 칸은 또 말했다. '우리의 새로운 시설은 단지 놀라움에서만 나올 수 있는 것이지, 분석을 통해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문명은 끊임없이 분석한다. 자본을 분석하고 생명을 분석하고 시를 분석한다. 얼마나 많은 지식들이 일상의 사건들을 잘 분석하고 있는가. 존재를 실현하는 일은 존재에 대한 감응이 우선이다. 놀라움은 감동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는 결국 진리에 대한 모험, 모험은 진리에 대한 감응으로, 감응은 다시 놀라움으로 삶의 실타래를 만든다. 그렇게 서로 원인이 되면서 희망은 진화하는 것이다.

근원이란 가장 단순한 자연이다. 우리는 자연의 순수를 믿는다. 생명의 회복이 거기서 오기 때문이다. 잎새처럼 푸른 일상과 풀숲 같은 사람이 우리의 자연이 아니었던가. 그 일상이 폭력으로 얼룩지고 병들어 있다. 폭력적 죽음이 밥상 앞에 날아들 때마다 그 단말마에 아뜩하다. 이 감사의 계절이 입구가 안 보이는 터널처럼 여겨진다. 이 때문인지 인문학이 유행이다. 인문학은 지식이 아니다. 차라리 인문학이 연민이기를 바란다. 더 이상 분석하지 말고 연구하지 말고 그냥 끌어안고 울기를 바란다. 탁한 우물에 떨어지는 한 방울 맑은 눈물이 인문학이다. 그 한 방울의 용기, 이 한 방울의 경이, 그 한 방울의 실천이 절실한 요즘이다.

여기저기 인문학이라는 깃발이 펄럭인다. 도시재생, 원도심 문화에도 어김없이 인문학이 붙는다. 이는 정말 눈물과 용기를 끌어낼 수 있을까. 원도심 바깥, 골목 바깥에 살고 있는 지식이 과연 얼마만큼 근원을 상기시킬 수 있는지 스스로 물어야 하지 않을까. 그 많은 현상학, 해석학, 사회과학이 정신의 틈을 비집고 들어오지만 인문의 모험은 눈물방울에서 시작해야 한다. 감응이 'a from place'인 것이다.

동광동 원도심이 이제 다시 문화의 원인이 되기를 기원한다. 여기 이 자리, 여기 이 시간이 순수의 근원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 만남이 모든 원한과 분노를 용서하는 용기의 근원이기를, 나도 당신도 숨은 질서의 푸른 꼭짓점이기를 꿈꾼다. 백년어서원이 눈물방울이기를, 그리고 부산이 저 햇살에 감응하는 'a from place'이길 그려본다.

백년어서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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