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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캄비세스 왕의 재판'을 생각한다 /송문석

저축은행·정부기관 비리와 부패 소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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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페르시아처럼 엄격히 죄 물어 엄두 못 내게 해야

30년 전 '민나 도로보데스!(모두 도둑놈들!)'라는 말이 유행했다. 일제시대 부자들의 성공기를 풍자한 TV드라마 '거부실록'에서 주인공인 '공주갑부' 김갑순이 걸핏하면 이 말을 내뱉은 데서 비롯됐다. 김갑순은 서울을 가려면 자기 땅 절반, 남의 땅 절반을 밟아야 할 정도로 땅부자였다. 그는 돈으로 벼슬을 사고, 벼슬을 이용해 다시 땅을 샀다. 일제로 무대가 바뀌자 이런 인간들이 으레 그렇듯 잽싸게 친일파로 변신해 부의 탑을 더욱 높이 쌓았다.

드라마가 방영되던 때는 5공화국 초기인 1982년이었다. 전두환 대통령과 인척인 이철희 장영자 부부가 권력형 거액 어음사기사건을 저질러 국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던 바로 그때였다. 사람들은 술자리에서 '민나 도로보데스!'를 소리치며 5공을 비아냥거렸다. 학생들도 시위때면 "민나 도로보데스!"를 "전두환 물러가라!"는 구호와 함께 외쳤다. 당시 5공의 국정지표는 '정의사회구현'이었다.

"민나 도로보데스!"의 시대가 다시 온 건가. 저축은행 사태의 꺼풀이 벗겨질 때마다 부패의 냄새가 코를 찌른다. 도무지 제 기능을 한 곳이 한 군데도 없을 만큼 문드러졌다. 금융위 금감원 감사원 국세청 국회 청와대까지 연루가 됐다. 소금과 방부제 역할을 해야 할 기관과 사람들이 한통속이 돼 뒹굴었다. 스포츠에서 심판이 한쪽 선수편에 가담했을 때 경기가 어떤 꼴이 될지는 뻔하다.

감시 감독기능을 맡은 기관과 공무원들이 제 역할만 했더라도 저축은행 피해자들의 통곡소리는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공직을 권력으로 착각하고 틈만 나면 제 잇속을 챙기려드는 '영혼없는 공무원' '공복의식 없는 공무원'들이 방조한 범죄이다. 제 봉급이 세금에서 나오고, 공직은 국민들이 위임해준 것이라는 생각을 공무원들이 조금이라도 했다면 이럴 수는 없다. 저축은행 비리는 빙산의 일각이다. 이번에는 국토해양부 환경부 공무원들이 감시 감독해야 할 산하기관과 기업으로부터 향응과 뇌물을 받았단다. 다시 묻는다. 부패의 시궁창은 정녕 이곳 뿐일까.

제라르 다비드는 초기 르네상스를 빛낸 화가다. 다비드는 당시엔 법정으로도 사용한 브뤼헤 시청사의 '정의의 회랑(로지아)'에 걸 그림을 그려달라는 요청을 받고 부패한 재판관이 처형되는 장면을 그렸다. '캄비세스 왕의 재판'이라는 그림이다. 캄비세스 왕은 기원전 6세기 고대 페르시아 제국의 전제군주였다. 그는 공정하고 정의롭고 청렴해야 할 재판관의 범죄에 대해 특히 가혹했다. 왕은 재판관인 시삼네스가 뇌물을 받고 부정한 판결을 내렸다는 사실을 알고는 산 채로 피부를 벗기는 생피박리형을 명령했다. 그림 속에서 네 명의 집행인은 냉혹하리만치 침착하게 칼로 시삼네스의 팔과 다리, 가슴에서 피부를 벗겨내고 있다. 처형대 주위에는 동료 재판관과 관리들이 둘러서 있다. 아마도 왕이 경종을 울리기 위해 참관토록 한 것 같다. 캄비세스 왕의 부패 척결의지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왕은 시삼네스의 아들 오타네스를 후임 재판관에 임명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피부를 벗겨 말린 가죽을 재판관석에 깔아 그 위에 아들 오타네스를 앉게 했다고 한다. 다비드는 시삼네스의 처형 장면과 함께 아버지의 가죽을 깔고 앉아 있는 오타네스의 모습도 한 그림안에 그려넣었다. 이러고도 뇌물을 먹을 간 큰 재판관과 공무원이 과연 있었을까.

감독자가 법을 위반한 것을 조선에선 '감수자도(監守自盜)'라고 했다. '지키는 자(감독하는 자)가 오히려 도둑질을 했다'는 뜻이다. 이는 장죄(贓罪·뇌물죄)에 해당돼 이마에 먹물로 죄를 새기고 부패관리들의 죄상을 적은 '장안(贓案)'에도 이름을 올려 본인은 물론 자식들까지 벼슬길에 나가지 못하도록 했다. 아예 패가망신을 시킨 것이다. 감독자가 부패하면 나라가 무너지고 백성이 기댈 곳이 없어진다는 뜻에서였다. 다산 정약용도 '감사론'에서 화적떼는 아예 도적의 축에도 끼지 못한다면서 가장 큰 도적으로 부패한 감사(監司)를 지목했다. 그는 "큰 도적을 제거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다 죽을 것이다"고 했다.

'민나 도로보데스!', 부패와 비리의 시대다. 청와대를 비롯, 전국 관공서 현관에 '캄비세스 왕의 재판' 복제품이라도 걸어두고 공무원들에게 경계로 삼게 하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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