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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기꺼이 손해를 보는 지혜, 그리고 미래 /김수우

인간의 고뇌 합하면 그것이 바로 배려…손해 보는 용기면 소외·분노 문제안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7-08 21:09:53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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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도가 높은 날들이다. 마음도 눅눅하고 그림자도 축축하다. 하지만 곧 햇살이 눈부실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이 자연이다. 그 질서와 조화를 믿어 우리는 매일 꿈꾼다. 하지만 우리는 어디다 집을 짓고 어디에다 꽃을 피우는 걸까. 지그문트 바우만이 '쓰레기가 되는 삶들'에서 지적했듯이 쓰레기 위에서 살며 스스로 쓰레기가 되어가고 있지는 않은가.

여섯 달이 넘도록 한진의 탑크레인에 올라가 도시를 지켜보고 있는 한 인간의 눈빛이 하루하루 가슴을 찌른다. 강화도 해병군인의 총기사건에 우리는 또 절망한다. 우리 시대의 슬픔들, 강은 강대로, 산은 산대로 사람은 사람대로 상처투성이이다. 여기에 문화기획이 넘치고 창조, 인문학, 대안 등 좋은 단어들이 유행하고 있다. 새로운 미래를 꿈꾸느라 야단이다. 하지만 그 모든 고뇌를 다 합하면 한 마디로 배려가 아닐까. 배려, 이 아름다운 실천을 접어놓고 엄청난 예산과 열정을 낭비하면서 제 발 앞만 비추는 게 문화이며 희망인 걸까. 악머구리 들끓듯 피해와 강박으로 산만한 현실은 우리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까닭이다. 배려가 빠진 자리는 아무리 융성해 보여도 황폐한 것을.

어느 시상식에서 들은 한 조각가의 수상 소감이 귀에 맴돈다. '재주 있는 사람이 재주 없는 사람의 종노릇하는 법이다'. 그의 아버지가 어린 시절 건네준 한 마디가 사십여 년 가난하고 외로운 작가정신을 지켜준 버팀목이었다고 했다. 스스로 종노릇하는 존재임을 이해한 마음이 예술의 정신적 기둥을 이루어준 것이리라. 회사후소(繪事後素)라는데, 우리가 삶의 무늬를 그릴 수 있는 흰 바탕(素)이란 무엇일까. 바탕이 살아있어야 그림을 제대로 그릴 수 있다. 인간성이란 타자와의 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문화란 모든 존재를 숨은 질서의 흰 바탕으로 이해하는 힘이다.

좀 더 손해를 보고 살면 어떨까. 경외할 줄 알았던 인간에게는 이 배려는 아주 자연스러운 일상이었지만, 이 경악의 시대에 배려는 스스로 손해를 보려는 용기가 필요한 게 분명하다. 용기가 필요하면 용기를 내어야 하리라. 흔쾌히 손해를 보는 용기. 이런 결단은 곧 사랑이다. 우리는 사랑에 빠졌을 때 기꺼이 손해를 자청한다. 기꺼이 희생하고 즐거워한다. 자식을 먹이는 어머니처럼 말이다. 손해가 손해가 아니고, 삶을 보다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실리가 무언지 한번 따져볼 필요가 있다. 모두들 부의 축적, 남을 이기는 것이 이익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친구, 믿음과 의리, 자긍심 등 내가 죽은 후에도 부끄럽지 않은 것들이 진정한 실리가 아닐까. 이는 곧 가치의 선택에 다름아니다. 손해를 보면 피해의식이 아니라 긍지를 챙길 수 있는 마음의 힘은 어디에 있을까. 이는 경쟁보다는 무엇이 옳은가에 관심을 가질 때 가능한 자세에 있고, 머리로 계산하기보다는 가슴으로 조화를 이루는 일이 진정한 이익임을 아는 데 있을 것이다.

이제 생명의 미래는 존재론에서 관계론의 패러다임으로 진행된다. '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라는 논어의 가르침은 이 시대가 상실한 관계론적 가치를 그대로 담고 있다. 군자는 다른 사람과 화합을 이루기는 하지만 남들과 똑같아지지는 않으며, 소인은 다른 사람과 똑같이 행동하면서도 화합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진정 탁월한 사람은 다양성을 인정하고 남과 공존하며 결코 지배하려고 하지 않는다.

초록이 한껏 푸르다. 우리는 그들의 언어를 읽어야 한다. 짧은 햇살에도 기꺼이 돋아나던 이른 봄의 잎눈들, 실바람에도 기꺼이 떨어지는 늦가을의 단풍들. 그들의 몸짓은 어떤 경우에도 기껍다. 대자연을 보고 온 사람이면 그는 묵묵해진다. 조용히 실천한다. 우리의 앎이란 게 얼마나 왜소한 것인지 깨닫는 것이다. 조화를 이루는 데는 스스로 손해 보는 방식이 가장 쉽다.

재주 있는 사람이 재주 없는 사람의 종노릇하는 것, 돈 있는 사람이 돈 없는 사람의 종노릇하는 세상, 생각만 해도 가슴이 뭉클하다. 예(禮)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섬기는 데서 시작한다는 옛 지혜도 있지 않은가. 흔쾌히 손해를 보는 용기가 있다면 우리는 소외와 분노를 한결 쉽게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기꺼운 손해, 나를 곰곰 성찰하는 아침이다.

백년어서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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