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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풋고추와 황새기 젓갈과 /박남준

최근 세찬 폭우에 수해방지작업, 개울 축대 무너져 내려 괜한 공사에 한숨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8-05 21:04:13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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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진다. 참 장쾌하게도 오는구나. 하루 이틀이라면, 아니 어쩌다가라면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아니지 않은가. 2, 3일 사이에 1000㎜가 내렸다면 그건 아예 물을 붓는 것이다.

오래 전에 돈황과 트루판을 여행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트루판이라는 곳은 신강 위구르 자치구역에 속해 있는데 연 강우량이 15㎜라고 한다. 매우 건조한 사막지대의 오아시스 같은 곳이니까 아예 비가 오지 않는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트루판에는 포도를 많이 재배하는데 설산의 눈 녹은 물을 지하 수로로 연결해서 이 물로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트루판의 포도는 대부분 건포도로 만들어지는데 트루판은 건포도로도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내가 도착한 그날 비가 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거리 곳곳에서 비명을 지르며 허둥거리고 어쩔 줄을 모른다. 그날 온 비는 무려 7㎜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였다면 뭐 이슬비가 오다만 정도였겠지만 1년에 내리는 비의 절반이 하루 만에 와버렸으니 얼마나 놀랐겠는가.

줄기차게 퍼붓는 폭우 속에서도 마당 앞 꽃밭에는 이윽고 제 차례가 된 꽃들이 어김없이 피어나고 있다. 며칠 전부터 불쑥불쑥 젖은 땅을 뚫고 솟아오른 상사화 꽃대가 드디어 꽃을 피우고 있으며 뻐꾹나리와 범부채가 한창이다. 지금쯤 땅속에는 노랑상사화와 백양꽃 꽃대가 잔뜩 몸이 간지러워 꿈틀거리고 있을 것이다.

생애에 단 한 번 준비한 공연을 무대 위에 올라가서 소신공양으로 마치듯 피고 또 지는 꽃들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지금껏 살아온 날들이 화끈거렸다.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지키고 이를 그대로 삶으로 실천하는 저 꽃송이들이 저녁 무렵이면 들려오는 고요한 산사의 범종소리처럼 울려왔다.

처음 이사를 왔을 때 집 옆에 흐르는 작은 개울은 돌무더기들이 이리저리 물길이 이뤄놓은 그대로 자연 상태의 개울이었다. 이사 온 다음 해 수해를 방지한다고 포클레인이 들어와서 개울을 아주 깨끗하게 직선으로 정리를 하고 높이 축대를 쌓아놓았다. 물론 바닥도 시멘트를 발라 반지르르하게 만들겠다고 하는 것을 몇 번의 삿대질과 큰소리가 오고가며 겨우 돌을 박아넣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다.

그런데 그 높이 쌓아놓은 집 옆 개울의 축대 아래 쪽 어마어마한 돌들이 와르르 빠져나와 무너져 버린 것이다. 겨우 축대의 윗부분에 시멘트구조물이 위태롭게 지탱하고 있어서 마당의 흙이 쓸려 내려가는 것은 면했지만 언제 무너져 내릴지 알 수 없게 되었다.

그곳에는 노루귀와 울릉나리와 초롱꽃과 용머리와 산부추와 하늘 매발톱과 매화나무와 개복숭아나무가 터를 잡고 오순도순 살고 있는데 이들을 다른 곳으로 옮겨주어야 하나 어쩌나 날마다 무너진 축대 밑을 쳐다보며 한숨을 쉬고 있다.

따다다닥~ 양철지붕이 큰소리를 지른다. 거센 빗방울들이 또 내린다. 걱정이 앞선다. 이러다가 아예 마당이 무너져 내려서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게 되지나 않을까 몰라. 앞으로 큰 태풍도 밀려오고 폭우도 다시 온다는데, 면사무소와 군청에서도 와서 보고 갔다는데 연락이 없는 것을 보니 아직 복구비용 문제 등으로 대책을 세우고 있지 못하는가 보다.

슬슬 배가 고파온다. 고추밭에 풋고추 벌써 빨갛게 익어가고 있다. 점심은 풋고추 몇 개 따서 곰삭은 황새기 젓갈에 찍어 먹을까. 흠흠 입안에 군침이 먼저 감돈다.

한 그릇이면 된다. 양이 좀 많고 적은 차이는 있겠지만 밥 한 그릇이면 되는 것이다. 한 그릇의 밥을 위해 땀을 흘린다. 누군가는 남의 밥상을 기웃거리며 갖은 궁리를 한다. 남의 밥을 뺏어 창고에 쌓아두는 자도 있다.

텃밭에 나가 풋고추 몇 개 땄다. 식은 밥에 찬물을 말고 젓갈과 장아찌, 밑반찬을 꺼내 밥상을 차린다. 밥상머리 앞에서 기도 드린다. 이 밥이 여기 놓이기까지 해와 달과 별빛과 생명의 대지, 비바람을 건너온 모든 시간의 손길들께 그 수고로운 땀방울께 고맙습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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