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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여행을 떠나기 전 준비해야 하는 것 /강영조

남도 정원보다 진수성찬에 환호, 최고의 맛집서 행복한 추억 공유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8-17 20:11:11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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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식당에서 김치 좀 더 주세요 하니, 어떤 김치? 하고 되묻는데 대답을 못했잖아." 전라도 지방으로 답사를 갈 때마다 경상도 농촌의 부농 가정에서 자라 먹을거리에는 부족하지 않게 어린 시절을 보냈던 J 선생은 전라도 식당에서 김치 가짓수가 많아서 행복했다는 얘길 이렇게 시작한다. 그리고 맵고 짠 경상도 식당 음식의 무성의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면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전라도 음식 예찬론을 편다.

그가 하는 말이 빈말은 아니다. 어떤 김치를? 하고 되묻는 말은 김치라면 고작해야 무김치, 배추김치밖에 없는 경상도 식당에서는 들어볼 수 없다. 전라도 식당의 식탁에는 배추, 무는 물론 각종 채소로 만든 김치가 가지가지 차려지고, 거기에다 같은 재료라고 해도 젓갈에 따라 다른 맛을 내는 김치가 또 올라오니, 김치만으로도 한 상 가득 찰 지경이다. 그러니 김치를 더 달라고 할 때 김치 종류를 정확하게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기'의 제일 첫 장인 '남도 답사 일번지'에서도 강진과 해남의 백반 집을 소개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전라도 답사의 즐거움은 뭐니 뭐니 해도 먹을거리다.

우리도 남도의 정원을 답사하면서 강진과 해남의 그 백반 집을 찾았다. 각종 해산물에다 홍어 삼합, 떡갈비, 생선구이 등이 켜켜로 올려져 비좁게 차려진 밥상을 식당 종업원이 들고 방안으로 들어오자 그 광경을 본 일행들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하나가 되어 손뼉을 치면서 환호성을 보냈었다. 다산초당의 고졸한 정원보다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밥상이 더 기억에 남았다. 그리고 그 기억을 공유하는 우리들은 일종의 연대감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 백반은 답사에서 돌아온 일행들 사이에서 남도 답사의 후일담으로 두고두고 얘깃거리가 되었다.

강진에는 백반보다 더 맛있는 먹을거리가 있다는 것을 안 것은 한참 뒤였다. 짱뚱어탕이 유명하다는 것이었다. 짱뚱어탕이라면 영암의 월출산을 찾았을 때, 영암 군청 앞의 오래된 식당에서 먹었던 것이 처음이었다. 뜨거운 갯벌 위를 기어 다니는 짱뚱어를 마치 추어탕처럼 끓여내어, 흙냄새를 없애기 위해서 제피가루를 뿌려서 먹었다. 그때가 6월이었던가. 삶은 낙지를 머리 통째로 먹는 연포탕도 그때 처음 먹어본 잊을 수 없는 음식이다.

몇 년 전, 가족들과 해남을 거쳐 보길도로 갈 때 짱뚱어탕으로 유명한 강진의 동해회관에 일부러 점심 무렵에 도착하도록 시간을 맞추어 출발했다. 남해고속도로의 교통 체증으로 점심시간을 훌쩍 넘겨 강진에 도착했지만 늦은 점심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짱뚱어탕은 기대 이상이었다. 반찬으로 내온 작년에 담갔다는 김장 김치는 씹을 때마다 입 속에서 아삭아삭 소리를 냈다. 그 상큼한 해남 배추에 곰삭은 갈치 젓갈 냄새가 입 안 가득 퍼져나갈 때, 아아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늘 먹고 있는 전라도 강진 사람들이란 얼마나 행복한가, 하는 생각이 들자 괜한 질투가 생겼다. 그 때 강진에서 먹었던 해남 배추김치는 우리 가족의 가장 중요한 추억이 되었다. 그 해 가을 해남 배추를 농협을 통해 구해와 김장을 할 때, 가족 전원이 환호성을 질렀던 것도 해남 배추김치의 맛을 공유한 행복한 기억 때문이었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으면 그것만으로 그들은 하나가 된다. 독일의 정신 병리학자 후베르투스 텔렌바하는 '맛과 분위기'에서 "사람들은 함께 식사를 즐기지만 그러나 동시에 식사를 함께 하는 사람들도 즐긴다. 서로가 미각을 공유하지 않으면 식사도 맛있지 않다"고 했다. 그때 우리 가족은 김치 맛을 즐기면서 그곳에 함께 있던 '우리'를 확인한 것이다.

미각의 판단 기준은 그 사회가 분절해둔 맛의 스펙트럼에 기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음식을 함께 하는 것, 미각을 공유하는 것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같은 음식을 먹고 동일한 미적 체험을 한 사람들을 하나가 된다. 한솥밥을 먹은 사이란 가치관을 공유하는 관계다. 여행의 진정한 의미는 여행자들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휴가 여행을 떠나기 전에 가장 먼저 그 고장에서 가장 맛있는 먹을거리를 찾아두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동아대 조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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