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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다문화 사회의 조건 /전진성

문화는 그 자체가 관계의 산물…차이점 이해해야 공존 가능해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8-23 21:37:31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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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가장 유행하는 용어 중 하나이다. 다문화 가정, 다문화 교육, 다문화 정책, 그리고 학계에서의 다문화주의 담론 등 '다문화'라는 용어는 이제는 외래어 딱지를 떼고 우리 사회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용어로 자리잡고 있다. 그런데 하필이면 이러한 때 노르웨이와 영국으로부터 참담한 소식이 들려와 이제 막 시작한 우리의 다문화 논의에 찬 물을 끼얹은 형국이다. 우리에게는 모범적인 다문화 사회로 알려진 서유럽에서 우익 테러와 이주가정 청년들의 폭력적 대응이 폭발했다니 참으로 실망스럽다.

우리 사회에서 다문화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진 것은 우리보다 경제적으로 낙후된 주변국들로부터 다양한 이주민들이 쇄도하여 이제는 더 이상 기존 방식으로는 '관리'하기 힘들게 된 현실적 사정 때문이다. 많은 이주민들이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공존'해야 할 이웃이라는 새로운 발상이 요청되고 있다. 이 같은 기본 발상의 전환을 위해서는 우리의 마음에 각인되어있는 단일 민족의 정체성이 변해야한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민족의 남다른 슬기와 유구한 역사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우리에게 피부색도, 언어도, 전통도 다른 이주민들을 '우리'의 일원으로 끼워준다는 것은 참으로 어색한 일이다.

'다문화'에 대한 보다 진전된 논의를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그 용어를 명확히 하는 일이다. 다문화라는 표현은 마치 문화가 원래는 단일한 실체라는 오해를 빚을 수 있는데, 문화는 그 속성상 결코 단일할 수가 없다. 문화란 그 자체가 관계의 산물이다. 인간은 주어진 환경에 기계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항상 주관적으로 반응하는데, 이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의미와 가치의 체계이다. 문화라 불리는 이 체계는 환경에 대한 반응을 자극하는 원인인 동시에 그 반응의 결과로, 환경과 끊임없이 변화된 관계에 놓인다. 예컨대 조선시대의 유교적 가치가 근대 산업사회의 환경에 부적합해서 퇴락했듯이, 문화는 시대적 환경이 바뀌면 변하는 것이 당연하다. 따라서 문화를 얘기하면서 자꾸 '원래'를 논하지 말자.

하지만 문화의 가변성은 인정하더라도 특정 문화의 단일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한국 문화가 계속 변하더라도 아예 일본 문화가 되어버릴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바로 이것이 다문화주의 반대자들의 기본 주장이다. 외국인들이 이 나라에 거주하는 것까지는 참아주겠다. 하지만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라! 이러한 주장은 일견 그럴 듯해 보인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현재의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문화, 소위 '자유민주주의'라 불리는 우리 사회의 의미와 가치의 체계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사회라면 종교적, 인종적, 이념적 차이를 허용해야 하지 않나? 우리의 헌법은 사회 구성원들이 어떠한 권위에 굴함도 없이 각자 자신의 목소리를 낼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사안의 핵심은 이주민들에게도 동등한 시민권을 부여하는 정치적 인정의 문제이다.

그러나 여전히 문화가 문제다. 설사 이주민들의 다른 문화를 '정치적으로' 인정하더라도 그것은 '우리' 사회의 가치를 존중해서이지 '그들'의 가치를 그 자체로 존중해주는 것은 아니다. 용인과 존중은 분명 다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정말로 우리와는 다른 문화를 내심 받아들일 수 있는가? 예컨대 지나치게 가부장적인 문화를 지닌 이주민 가정이 있다고 치자. 만약 그 가정에서 가장이 아내와 딸들에게 취하는 태도가 우리의 인권적 가치에 어긋난다면 우리는 과연 소수 집단의 독자적 정체성과 가치를 인정해 주어야 옳은가, 아니면 그 아내와 딸들을 가부장제의 억압으로부터 '해방'시켜야 옳은가? 우리는 우리의 가치가 보편적이고 그들의 가치는 편협하다고 주장할 것인가? 아니면 차이를 무조건 비판없이 존중해주어야 하는가? 무조건적인 존중은 '그들'과 '우리'가 공존하는 데 과연 도움이 되는가?

분명한 것은 이주민들의 권리에 대한 정치적 인정도 상이한 문화들 간의 소통과 연대 없이는 상호 무관심 혹은 적대감으로 번질 위험성이다. 바로 이것이 노르웨이와 영국의 불행에서 우리가 취할 교훈이다.

부산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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