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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슬픈 보스니아 /박형섭

비극의 역사 딛고 양보와 타협으로 세 민족 공존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09-02 20:37:09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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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 미래 세상도 민족 간 화합 절실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수도 사라예보. 지금도 라틴스카 다리 아래로 강물은 흐르고 있겠지. 밀차카 강변의 황제 모스크를 찾는 이방인들도 여전할 것이다. 누군가는 아폴리네르의 시(詩)를 따라, '라틴스카 다리 아래 밀차카 강물은 흐르고, 우리의 인생도 흐른다'고 노래하겠지. 지난 7월, 발칸으로 떠나기 전까지 나는 밀차카라는 이름도, 라틴스카 다리의 의미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방인들 틈에 끼어 밀차카 강변을 걷고, 라틴스카 다리를 건넌 뒤에는 세상의 그 어떤 강과 다리보다 생생하게 기억 속에 아로새겨져 있다. 그곳은 지난 세기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됐던 현장. 유럽의 역사는 마차를 타고 다리를 건너던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를 향해 한 발의 총성이 울렸고, 이를 기점으로 유럽 전역을 초토화시킨 전쟁이 시작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엄청난 비극을 안고 있는 라틴스카 다리는 작고 소박했다. 사건을 새겨놓은 푯말도 왜소하고 흐릿했다. 다리 건너, 사건의 기록과 사진, 마차 등을 전시한 역사박물관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보스니아는 옛 유고 연방이 해체된 뒤 독립한 나라. 다양한 종교와 민족이 얽혀 있어 갈등과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사라예보는 산들로 둘러싸인 나지막한 분지였다. 푸른 산자락에 빼곡하게 들어선 붉은 단층집들은 한 폭의 수채화처럼 보였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보고 잔혹한 살인놀이를 떠올릴 수 없었다.

구 시가지는 여느 유럽의 소도시처럼 역사와 고풍스러운 멋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색다른 광경은 바로 이슬람 사원, 세르비아 정교회, 로마가톨릭 성당, 유대교회당이 서로 인접해 있는 것이었다. 이들이 서로 상대의 차이를 존중하며 함께 어울려 살았을 때, 가장 화려한 문화가 꽃피웠을 것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가혹했다. 영화 '웰컴투 사라예보'가 증언하고 있듯이 시내 곳곳에 전쟁의 참상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도시는 작고 아담했지만, 시민들의 분노와 슬픔은 너무 커보였다. 내전이 발생하자 아버지(보스니아계)와 어머니(세르비아계)의 가족들이 서로 적이 되어 총부리를 겨누었고, 강의 양쪽에 흩어져 살던 형제들은 생이별을 해야 했다. 이 싸움으로 무고한 보스니아인들이 세르비아인들의 인종청소의 희생자가 되었다.

사라예보에서 버스로 약 3시간 크로아티아 방향으로 가면 모스타르에 도착한다. '작은 터키'라고 불리며 이슬람의 코란이 울려퍼지는 무슬림 도시. 네레트바 강의 스타리 모스트(오래된 다리)를 사이에 두고 보스니아계(이슬람)와 크로아티아계(가톨릭)가 내전을 치렀다. 당시 크로아티아인들은 무슬림들이 거주하는 지역을 봉쇄하여 수백 명을 학살하거나 추방했다. 스타리 모스트도 이슬람 사원도 대부분 파괴되었고, 20만의 인구는 전쟁이 끝나자 반 이하로 줄었다. 종교의 궁극적 목표는 평화지만, 서로 배타적일 때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그대로 보여주었다. 유네스코에 의해 복원된 스타리 모스트는 이 지방 최고의 명소로 되살아났다. 다리 양쪽을 잇는 좁은 거리의 상점들에는 프랑스, 독일, 일본 등의 관광객들로 붐볐다.

내가 하룻밤 묵었던 모스타르의 로즈 펜션의 주인 리키 부부는 크로아티아계. 그들은 조상 대대로 모스타르에 살았고, 리키는 한때 프랑스 유학도 했다. 그는 로마가톨릭 신자로 내전 때 크로아티아 편에서 싸웠으며, 전쟁 전에는 보스니아계 친구들이 많았다고 탄식했다. "전쟁으로 가족이 죽었지만 그들을 증오하지 않는다. 용서와 사랑만이 삶의 유일한 가치임을 깨달았다."

예로부터 종교적·민족적 반목과 대립은 정치권력의 희생양이 되어왔다. 현재 보스니아는 묘하게도 1국가 2체제로 3개 민족 3명의 대통령이 8개월마다 번갈아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다. 분쟁의 불씨가 언제 되살아날지 모른다. 상대의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양보와 타협이 결렬되면 재앙은 반복될 것이다. 사라예보 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이보 안드리치는 소설 '드리나강의 다리'에서 '이 놀랍고도 아름다운 건축물인 다리 위에 신의 축복이 내리시기를!' 하고 기원했다. 라틴스카 다리를 건너며, 보스니아의 운명, 아니 21세기의 미래를 생각했다. 서로 다른 민족들을 이어주는 소통과 화합의 다리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부산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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