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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우리 정치현실의 슬픈 그림자 박원순 /신율

기성 정치권의 잘못 감시자가 링에 올라…판 엎으면 해결될까, 제도 보완 노력 먼저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10-05 20:30:15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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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절 날 있었던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은 박원순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선거는 흥행이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은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그렇지만 여기엔 한국 정치의 슬픈 그림자가 숨어있다. 국민들의 기존 정치권에 대한 혐오가 드리워져 있다는 말이다. 물론 우리 국민들이 이런 정치 혐오증을 갖게 한 장본인은 바로 정치인들이다. 이러면서도 반성하지 못했던 기성 정치권은 국민들로부터 '레드카드'를 받을 만하다. 하지만 '레드카드'를 받을 만하다는 사실과 진짜 '레드카드'를 받는다는 사실은 엄연히 다르다. 그런데, 지금 일어나는 상황을 보면 국민들은 실제 '레드카드'를 꺼낸 셈이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아무리 정치권이 혐오스러워도 그들 자체를 몰아낸다는 것이 한국 정치의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해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란 갈등을 조정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개인 간 혹은 집단 간 갈등이 있게 마련인데, 사회에는 싸우는 규칙이 없어 갈등이 발생하면 무한 투쟁 상태에 돌입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엉망이라 하더라도 제도 정치권에는 최소한의 규칙이 있다. 그래서 갈등을 둘러싼 무한 투쟁을 피하기 위해 제도라는 링 위에서 정치인이라는 용병(傭兵)이 규칙에 맞게 대신 싸우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정치인은 우리의 세금으로 돈 받고 대신 싸우는 용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제도라는 링 위에 갑자기 정치인이 아닌 링 밖의 사람이 뛰어 오르면 상당히 당혹스러운 일이 발생한다. 링 밖의 무한 투쟁에 익숙한 사람이 규칙을 갖고 싸우는 링에 익숙해지기란 쉽지 않을뿐더러, 만일 제도라는 이름의 링의 규칙에 익숙해지면 그는 이미 링 밖의 인사가 아니라 링 안의 용병 즉, 정치인이 되기 때문이다.

실제 이런 일이 발생한 적이 있는데, 독일 녹색당이 그 사례이다. 독일은 환경운동이 비교적 일찍 발생했을 뿐 아니라, 국민들의 환경의식도 일찍이 높아서 환경운동이 매우 활발했다. 이런 분위기에서 탄생한 환경운동 단체가 1970년대 말부터 정당화 움직임을 보이다가 1980년대 본격적으로 정당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초창기에 '한 발은 운동권에 한 발은 제도권에' 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나름 운동권과 제도권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녹색당은 제도권 내에서는 성공한 정당으로 자리 잡았지만, 운동권 내부에서는 실패한 집단으로 낙인 찍혔다.

앞서 말한 대로 링 밖의 존재가 링 안으로 들어와 나름의 규칙에 익숙해지면, 정치인이라는 용병으로 바뀔 수밖에 없는 이치와 똑같다. 여기에 더해 우리나라의 대의 민주주의 역사가 너무나 짧아 아직은 대의 민주주의의 폐해를 논하며 새로운 시도를 하기에는 너무 이르다는 점 역시 지적하고 싶다. 유럽의 경우 인권의 보편성에 입각한 대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정착한 지 70년 정도 되지만 아직도 제도적 폐단을 고치려하지 우리처럼 아예 판을 갈아엎으려 하지는 않는다. 하물며 군사독재에서 벗어난 지 이제 24년 남짓한 우리나라가 모든 걸 갈아엎으려 한다는 것은 너무 시기상조라고 할 수 있다. 갈아엎기 전에 제도적 보완을 위해 우리는 과연 어떤 노력과 시도를 했는지부터 따져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한 가지 더 지적하고자 하는 점은 시민 사회의 역할은 제도 정치권의 행태를 감시하고 감독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링으로 따지면 일종의 링 밖의 심판 역할을 해야 한다는 말인데, 그 심판이 직접 용병이 되어 싸우겠다고 하니 그러면 누가 심판을 봐야 할지 어리둥절하게 된다. 더구나 이런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유명한 소설가는 후보 단일화 경선 현장에서 팬 사인회를 가졌고, 젊은이들은 사인 받으려고 정신 없었단다. 정치참여의 과정은 분명 신명나야하고 축제여야 하지만 정치 자체를 희화화 시켜서는 안 된다. 하지만 사인 받고 사인해주는 모습을 보며 자꾸 정치과정이 아닌 정치 자체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왜 일까? 박원순 후보의 지지자들은 그를 희망이라고 부를지 몰라도 나는 그를 한국 정치의 슬픈 그늘이라고 부른다. 그에게서 희망을 보기보다는 우리 정치 현실의 슬픈 그림자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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