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아침숲길] 멋진 팀워크 /이상섭

힘든 작업 중에도 서로 위할 줄 아는 에어컨 설치팀 보며 독촉전화까지 했던 내가 부끄러워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10-07 19:35:18
  •  |   본지 23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늦더위가 화근이었다. 아내가 또 에어컨 타령을 하고 나섰다. 이 여편네가 오늘 더운 바람을 간식으로 왕창 드셨나, 마침표 찍은 사안을 왜 또 들고 나선담. 북극의 얼음이 녹아 해수면이 높아지는 불안한 별에 살면서 온난화에 우리까지 일조를 하는 건 그렇지 않으냐, 17층이라는 높이 탓에 그다지 덥지도 않으니 내년에 다시 생각해보자는 얘기를 설마 까먹은 건 아니겠지. 하지만 자식들의 비지땀을 또 혀에 올리는 저 위대하고 거룩한 모성애 앞에서는 더는 거절할 재간이 없었다.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아이들 방이 얼마나 무더운지 나 또한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성수기가 지나 싼 가격에 분리형 에어컨을 구입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니 지갑과의 전투를 각오할 수밖에.

문제가 터진 것은 그 다음이었다. 아니, 무슨 설치작업이 아파트 평수나 가장의 연봉 순이라도 된단 말인가. 한여름이라면 모를까 가을 초입인데도 번번이 설치작업이 연기되니 급기야 내 분노가 폭발하고 말았다. 그러자 듣고 있던 딸내미가 맞장구를 친다. 그러니까 우리 가족의 무서움을 한 번 발휘하자니까요? 말투인즉 이번 참에 가족의 팀워크를 '세계만방'에 과시해보자는 거였다. 혹시 제 방 에어컨이 동생한테로 옮겨갈까 봐 그런지 아들마저 말꼬리를 덥석 문다. 다 그만한 사정이 있겠죠, 우리같이 알뜰한 가족이 어디 한둘이겠어요? 결국 이것이 빌미가 되어 딸내미가 다시 나서고 덩달아 오빠가 반격을 가하면서 가족 간의 팀워크고 뭐고 싸움으로 번지기 일보직전의 상황으로 치닫고 말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아내는 어금니만 깨문 채 취소 여부에 대해 아무 말이 없었다.

한바탕 벌어진 언쟁의 탓일까. 막상 작업팀이 현관 앞에 나타났을 때만 해도 내 표정은 차갑기만 했다. 팀장이라는 양반은 거듭 죄송하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한데 태연하게 웃는 저 묘한 표정이라니. 연출치고는 웃는 게 너무 요령 있어서 어처구니없었다. 내가 잠시 우두망찰하는 사이, 팀장은 배선이 어디로 깔리며 어떻게 작업 공정이 이뤄지는지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팀장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난감하기만 했다. 겨우 마련한 내 집에 구멍을 풍풍 뚫어야 하다니. 게다가 벽을 몇 개나 뚫는 난공사일 줄이야.

집안은 드릴 소리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세 명의 기사들은 맡은 바 역할대로 척척 알아서 몸을 움직였다. 그들이 부지런히 오가자 거실바닥은 땀방울로 얼룩졌다. 직업상 그들이 흘리는 땀은 당연한 것이겠지만 그냥 지켜보자니 마음에 켕겼다. 해서 냉장고로 직행해 냉수를 꺼내 들고 팀장에게 먼저 잔을 건넸다. 팀장은 고맙다며 깍듯이 인사를 하더니, 잔을 쥔 채 한 치의 머뭇거림도 없이 제일 젊은 기사에게 향하는 게 아닌가. 막내기사야말로 가장 많은 땀을 흘리는 중이었다. 일을 하다가도 부르면 "예, 팀장님" 하면서 쪼르르 달려가면서도 제 몫을 해내야 했으니까. 졸지에 나는 그런 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아파트 외벽에 냉각기 설치만 남겨둔 상태였다. 다행히 오래된 아파트가 아니라서 냉각기를 자리에 앉히면 그뿐이라고 했지만 내려다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할 정도였다. 그때였다. "제가 내려가겠습니다, 팀장님!" 막내기사가 나서자 팀장이 미간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막내가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팀장은 안전장치 하나 없이 창틀을 내려서기 시작했다. 마치 허공에 길이 있다는 듯이. 게다가 좁은 난간 위에 발을 올리고 한 손으로 창틀을 잡고 한 손에는 50㎏에 해당하는 기계를 내릴 때에는 머리끝이 곤두설 정도였다. 비지땀을 흘리며 위험까지 감수한 작업을 하는 그들을 보자 독촉 전화에 언성을 높인 것이 후회되기 시작했다. 아, 이런 일은 절대 서두를 수 없는 일이구나, 그런데도 설치비가 고작 3만 원밖에 안 된다니. 그런 마음 탓일까. 나도 모르게 현관을 나서고야 말았다. 무안함을 사죄하려면 시원한 아이스크림이나 건네는 것밖에 없을 듯해서였다. 슈퍼마켓에서 돌아왔을 때에는 거의 작업은 마무리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제일 먼저 막내기사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넸다. 그러자 감사하다며 넙죽 받아 쥐더니 쪼르르 팀장에게 달려가는 게 아닌가. 순간 나는 붉은 우체통으로 변한 채 또 한 번 그들을 지켜보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롯데, 공격서 수비로 중심 이동…주전 새판짜기 예고
  2. 2부산시 “북항에 5만 석 돔 아레나” 유치의향서 제출
  3. 3지광, 국회 동행명령 끝내 불응…여야 “즉시 고발”
  4. 4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고수하던 4개 구·군, 결국 폐지
  5. 5주민이 낸 감사청구서, 피감부서로 떠넘긴 부산시
  6. 6이태원 악몽 겪고도…서면 ‘만취길’ 대응 탁상공론
  7. 7영도 중리해변 알박기 텐트, 1개 더 늘었다
  8. 8[눈높이 사설] 부캉이가 알려준 부산관광의 새로운 가능성
  9. 9“르노 부산, 글로벌 개발·생산거점” 쐐기
  10. 10동부산 시민 만난 전재수 “산은 유치·동남투자공사 동시 추진”
  1. 1지광, 국회 동행명령 끝내 불응…여야 “즉시 고발”
  2. 2조현, 한미관계 난기류 우려에 “벨트 단단히 매면 돼”
  3. 3민주 “조희대 국정조사 실시”…국힘 “탄핵보다 더 비열”
  4. 4국힘 “공소취소 특검 전에 3+1 조작 특검 국조부터”
  5. 5국감 출석 거부한 지광(국제신문 대주주)에 국회 ‘동행명령’(종합)
  6. 6시설공단 이사장 후보 자진사퇴…田 인사 첫 낙마
  7. 7"농지조사 송 장관이 제안" 이 대통령에 野 "불리해지니 장관 탓"
  8. 8김정호 "국제신문 100억 체불 지광, 동행명령장 거부시 고발조치"
  9. 9중수청장 “한동훈 딸 의혹 규명 필요”(종합)
  10. 10김지용 중수청장, 또다시 국무회의 참석
  1. 1“르노 부산, 글로벌 개발·생산거점” 쐐기
  2. 2애플 ‘아이폰듀오’ 화면 결함 인정, 무상 교체 방침(종합)
  3. 3부산국제금융진흥원장 최병호
  4. 4내년 상반기 재가동…한빛 등 7기도 연장 속도(종합)
  5. 5부산시 벤처펀드 받은 유망기업 ‘쑥쑥’…IPO 도전
  6. 6강연 통역하고 요금 모니터링…관광·마이스산업 AI 바람
  7. 7“임기내 부산 1호 유니콘기업, 기업공개 2건 목표”
  8. 8주가지수- 2026년 10월 27일
  9. 9부산경실련 “산은 이전 없다는 금융위원장 발언 유감”
  10. 10애플, 아이폰듀오 화면 결함 인정…무상교체 방침
  1. 1부산시 “북항에 5만 석 돔 아레나” 유치의향서 제출
  2. 2부단체장 출퇴근 의전 고수하던 4개 구·군, 결국 폐지
  3. 3주민이 낸 감사청구서, 피감부서로 떠넘긴 부산시
  4. 4이태원 악몽 겪고도…서면 ‘만취길’ 대응 탁상공론
  5. 5영도 중리해변 알박기 텐트, 1개 더 늘었다
  6. 6[눈높이 사설] 부캉이가 알려준 부산관광의 새로운 가능성
  7. 7동부산 시민 만난 전재수 “산은 유치·동남투자공사 동시 추진”
  8. 8“국제신문 회생 더이상 미룰 수 없어”…전재수 시장, 지광에 공식서한 보내
  9. 9[한 손 뉴스] 변호사 업무 재개한 홍준표, 대선 경선 관계자 변호 맡아(종합)
  10. 10법원 “부하직원 횡령, 감독 안 한 상급자 견책 정당”
  1. 1롯데, 공격서 수비로 중심 이동…주전 새판짜기 예고
  2. 2‘무관의 제왕’은 옛말…케인 발롱도르 품었다
  3. 3허구연 KBO 총재, 3연임 사실상 성공
  4. 4K리그2 준PO 12월 2일 개최
  5. 5롯데 자이언츠 신임 감독 이동욱·단장 이택근(종합)
  6. 6올해 딱 한 번 지고 66번 이겼다
  7. 7차준환 계보 잇는 피겨 왕자 서민규
  8. 8똑똑한 ‘데이터 야구’와 수비 강화…개혁의 칼 뽑은 롯데
  9. 9[뭐라노] 데이터 기반 똑똑한 야구·수비강화…롯데의 ‘새판 짜기’
  10. 10[뭐라노] 아직도 '그들만의 체전'?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지역이 기획, 국가가 지원하는 R&D 시대 열자
진짜 질문의 시작
국제칼럼 [전체보기]
부캉이에게 부끄러운 북항 재개발 민낯
부산 관광, 마냥 좋기만 할까
기고 [전체보기]
‘2028 세계디자인수도 부산’의 과제
배의 피부를 지키는 기술은 도장이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북극항로, 첫 배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배다
도청도설 [전체보기]
어떤 ‘최장수’ 기록
프랑스를 망친 결정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개정 응급의료법이 ‘미수용 방지법’?
25년을 간직한 리플렛 세 장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국회 동행명령 외면한 지광스님, 법적 책임 물어야
북항 돔 아레나 유치전, 사업 타당성이 성패 가른다
세상읽기 [전체보기]
한국 경제 떠받치는 중장년, 이제 다시 봐야
AI 시대, 평가의 진정성을 묻다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대규모 대미 투자, 기회인가 위협인가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은 어떻게 마음에 남는가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시민 주거안정에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청년 떠나는 지방, 수도권 인구 분산해야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