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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배추벌레의 교훈 /정상도

올해도 어김없이 김장배추 파동 조짐…물량 공급·가격 안정, 근본적 대책 강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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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초였다. 여름까지 상추며 고추를 키워 먹던 사과상자 3개에 배추 모종 10포기를 심었다. 사과상자는 빌라 1층 손바닥만한 마당에 있었다. 베란다 유리문 너머로 모종을 살펴볼 수 있는 위치였다. 매일 일삼아 물을 주었다.

그런데, 모종이 하나 둘씩 말라가더니 1주일가량 만에 전멸했다. 2차로 모종 10포기를 더 심었다. 이전보다 더 열심히 물을 주었지만 사정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겨우 모종 2포기만 상추 크기만큼 자랐다. 옆집 할머니의 배추가 시퍼렇게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부끄럽기도 하고 아쉽기도 해 더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지난 주말 그 배추 두 포기에 변고가 생겼다. 생육 상태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한 포기가 배추벌레에 초토화된 것이다. 배추벌레는 잎맥만 남기고 잎사귀를 모두 먹어치웠다. 나머지 한 포기는 그나마 배추 형상을 하고 있었다. 나무젓가락을 가지고 마당으로 나갔다. 큰 것은 우동 굵기만 하고 길이가 3~4㎝, 작은 것은 국수 면발보다 가늘고 1㎝가 채 안 되는 초록색 배추벌레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뿌리 쪽에는 좁쌀만한 크기의 검은 배추벌레 배설물이 쌓여있었다. 초토화된 쪽과 형편이 나은 쪽에서 잡은 배추벌레가 모두 24마리였다. "배추가 갈비가 됐네요"라는 집사람의 말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우리나라처럼 배추를 매일 소비하는 국민이 있을까. 배추는 김치의 주재료로 무·고추·마늘과 함께 우리나라 4대 채소로 꼽힌다. 봄배추 고랭지배추(여름배추) 가을배추 월동배추(겨울배추) 등으로 나눠 한 해 생산되는 배추는 200만t이 넘는다. 입동이 지났으니 지금 유통되는 배추는 가을배추이다. 제주도에서부터 강원도까지 전국 어디서든 수확할 수 있는 김장용 배추이다. 우리 선조들은 배추 특유의 매운 맛을 없애기 위해 고추와 젓갈을 이용해 발효시킨 김치를 개발했다. 처음 우리나라에서 약용으로 사용될 만큼 건강식인 배추를 많이 소비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문제는 이 배추 가격이 종잡을 수 없다는 점이다. 배추 가격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은 기후와 생산량, 유통구조 등이다. 사계절로 나눠 3~4개월마다 배추가 출하되는 시점의 생산량에 따라 가격이 춤을 춘다. 지난해 배추 파동은 고랭지배추가 폭염으로 대부분 녹아버린 데다 태풍과 폭우로 파농하는 바람에 빚어졌다. 반면 올 초 배추가 과잉 생산돼 가격이 폭락한 것은 지난해 배추 가격이 오르니 재배량이 급증했기 때문이다. 유통구조도 심하게 왜곡돼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파동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심한 농정이 따로 없다. 게다가 올 김장철에는 배추 가격 폭락사태가 빚어질 가능성이 아주 높다.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배추 재배면적은 1만7326㏊로 지난해보다 28.0% 늘었다. 특히 배추의 재배면적은 1993년(2만874㏊) 이후 18년 만에 가장 넓었다. 올해 배추 생산량은 260만t으로 추산된다. 평년 생산량 244만t보다 많다. 인건비 운송비 등이 판매가보다 높아지면 산지에서는 배추밭을 갈아엎는 사태가 빚어진다. 거름을 주고 벌레를 막고 날씨에 노심초사하며 애써 키운 배추밭을 갈아엎는 농민들의 마음은 나무젓가락으로 배추벌레를 집어내는 도시의 소비자보다 천 배 만 배 더 무거울 것이다.

정부는 배추 파동이 빚어질 때마다 산지 재배면적 감축, 김치 가공물량 증대 등 대책을 쏟아낸다. 그러면서도 생산량의 예측이 가능한 면밀한 재배 상황 모니터링, 수출 등 잉여물량의 선순환 시스템 구축 등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농민들 가슴에 피멍이 들고 소비자들은 소비자들대로 어떤 때는 포기당 1만 원을 웃도는 '금추'를, 어떤 때는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헐값 배추를 사면서 분통을 터트린다.

배추의 학명에는 치료의 의미가 포함돼 있다고 한다. 농민들에게 정당한 수확의 대가를 얻게 하고, 소비자들은 사계절 안정적인 가격에 배추를 사먹을 수 있도록 하는 일은 당국의 책임이다. 배추벌레는 농민들의 수고로움을, 농정 당국의 책임의 엄중함을 깨우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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