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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삶을 꿰뚫는 힘 /김수우

마주친 것들을 고요하게 바라보면 성과주의 매몰된 본래의 나 찾게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1-11-18 20:40:41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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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진시황 부산전'에서 미공개 유물 몇 점이 소개된 적이 있었다. 그 포스터가 아직 내 방에 붙어있다. 진시황릉 병마용갱 전체를 바라보는 한 토용의 뒷모습이 중앙에 크게 디자인되어 있는 그림이다. 섬세함과 웅장함으로 세계 8대 경이라고 불리는 황제의 군단을 직시하는 뒷모습은, 찾아보니 문관용이었다. 우락부락한 병사들과 달리 양손을 소매에 집어넣은 자세가 공손해 보인다. 야위고 조용한 모습이지만 그 광대함을 직시하는 하급관리의 날카로운 눈매가 뇌리에 남았다. 병마용갱의 위용을 2000년 내내 어둠 속에서 공허하게 바라보고 있던 건 아니었을까. 비록 토용이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직시하는 듯해 가슴이 서늘했다. 첫 발견 후 가짜무덤 72개로 포진한 진시황릉을 포함, 다 발굴하는 데 150년은 걸릴 거라는 그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를 문관은 애초 허무로 꿰뚫어보고 있었는지 모른다.

대전역 앞에 일곱 마리에 1000원 하는 붕어빵 수레가 있다. 기억으로도 6, 7년째다. 계속 물가가 오르는데도 마냥 일곱 마리 1000원이다. 신기했다. 얌전해보이면서도 조금은 무뚝뚝한 중년여인은 일부러 고집부리듯 종이봉지에 일곱 마리를 넣는다. 고단하게 엮은 평생이 굵은 주름에서 그대로 읽히는 얼굴이다. 거기서 나는 철학을 보았다. 진리 운운할 필요가 없는 종교를 보았다. 보이지 않는 무한 자유로운 내면이 환하게 비친다. 진정한 무소유의 실천과 존엄한 가난을 배우는 것이다. 적어도 내겐 오병이어의 기적보다 더 살결에 와닿은 기적이다. 알렉산더에게 햇볕을 가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디오게네스가 따로 없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붕어빵이 그리워지는 요즘, 괜히 일없이 그 포장수레에 문득 찾아가고 싶다. 올해도 별 탈 없이 계실까.

붕어빵 아줌마의 굵은 주름과 진시황릉 병마용갱에서 발굴된 문관의 날카로운 눈매가 겹친다. 좀 엉뚱하지만 여기서 우리 사회의 여러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실천적 방식을 깨닫게 된다. 요즘 초등학생들에게 장래의 꿈을 물어도 돈, 대학생에게 물어도 돈이다. 결국 행복하고자하는 열망이라 차라리 '진정한 행복'이라고 대답하는 법을 가르치려 하니,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막무가내, 그저 돈, 돈, 습이 되어버린 집단 집착을 보는 것 같다. 전 국민이 다들 대입을 작정하고 유치원 시절부터 시험성적에 매달려 있으니, 애초 무인보다 문인의 기질을 함양하는 셈이다. 하나 입신양명을 향한 그 많은 공부는 사물을 바라보는 법, 전체의 이치를 꿰뚫는 지혜와 전혀 상관이 없다.

37년간 연인원 70만 명을 동원했다는 그 병마용갱은 오히려 삶의 허구를 묻는 게 아닐까. 붕어빵 일곱 마리를 1000원에 팔 수 있는 그 용기는 과연 무엇일까. 용기란 삶을 꿰뚫는 힘에서 나온다. 통찰력은 보이지 않는 것을 꿰뚫는 감수성을 말한다. 이 감수성은 고요한 응시에서 출발한다. 진정한 실천은 이 고요와 응시에서 나온다. 그것이 공부이다. 고학력 사회인데도 무작정 달리는 속도 그 자체와 성과에 매달린 현상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멈추어서서 마주친 것들을 오래 깊이 바라보자. 보이지 않는 것들이 어떻게 풀려나오는지 감지할 수 있지 않을까.

응시할 수 있는 힘을 우리는 철학, 역사라고 이름한다. 느닷없이 인문학이 유행처럼 번진 까닭은 그런 연유이리라. 하지만 거꾸로 인문학도 그저 더 잘 달리기 위한, 성찰이 없는, 성과를 위한 하나의 수단이고 마는 건 아닐까. 두렵다. 더 느리게 더 깊이 더 오래 서로 끌어안는 연습이 필요하다. 돈이 적어도 내 소유가 아니라는 것만 알아도, 빈손으로 이 세상을 떠난다는 자각만 있어도 우리는 더 용기를 가질 수 있다.

이제쯤 노랗게 물든 은행낙엽을 응시해보는 건 어떨까. 우리 속에 헝클어진 가짜욕망, 모방된 욕망을 직시하는 용기쯤 가져보자. 그럴 때 관계에 감응이 작용한다. 감응된 세계를 천천히 지각해내는 힘, 그래서 보이지 않던 원래의 나를 기억해낼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문화는 본래를 자꾸 지우는 중이다. 아무리 가치가 혼재하고 복잡한 소용돌이 속에서도 우리 본래를 찾을 수만 있다면 이번 생은 가치 있으니. 그 안에 담긴 무수한 관계의 고리들이 서로에게 영적 진화를 선물할 것이다. 단풍내 짙게 번지는 가을하늘을 본다.

백년어서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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