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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깨어 있는 손, 깨어 있는 사랑 /김수우

손은 마음의 눈, 할머니 약손처럼 사랑의 힘으로 타인을 위해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2-01-20 19:11:32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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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초에 작은 산사에서 머물렀다. 멀리 경전철 오가는 게 보이는 도시 근교인데도 며칠 꼬박 산에서 내려오는 물소리만 들었다. 절 마당 모퉁이에 고무장갑과 면장갑이 널려 있었다. 소박한 손들이 겨울햇살을 흔드는 듯했다. 새해라는, 삶을 환기하는 시간의 의미 때문일까. 그 낡은 장갑들이 내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것이다. 밤낮으로 나를 깨우는 물소리들이 그 장갑들을 천수천안으로 다가오게 한 것일까. 자연 내 손을 자꾸 펴보게 된다.

손에는 진정한 마음의 눈이 있다. 손이 깨어있다는 것은 손이 삶과 영혼을 보여준다는 말이리라. 손이 창조해낸 막대한 문명을 어찌 일일이 설명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시대는 손을 잃어버린 시대이다. 모든 것을 기계에 미루고 너도나도 머리와 입으로만 살아간다. 이를 진보라고 하지만 오늘날의 불신과 절망을 보면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손으로 많은 일을 하고 있다고 하지만 실상 손은 잠들어 있다. 깨어있는 손이란 가치를 실천하는 일, 자기 것을 덜어 타자를 배려하는 일을 말한다. 손은 마음의 더듬이이다. 가장 아름다운 촉수인데도 우린 너무 오래 손을 잊고 있는 건 아닐까. 기계에 의존하고 있는 이 문명이 교감을 잃어버린 건 바로 손을 잊어버린 까닭이다.

면장갑, 고무장갑들을 하나하나 마주보니 정말 천수천안관음보살이 따로 없다. 천수천안은 본래부터 우리 마음 속에 갖추어진 세계라고 하지 않는가. 모든 개인 속에 잠들어 있는 눈, 즉 스스로를 볼 수 있으면 손이 천 개인듯 눈이 천 개인듯 많은 능력을 발휘하고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관음은 어떤 곳에서나 모든 생명을 대상으로 자비를 펼친다. 그 자비는 차별이 없다. 마주치는 그 모든 존재가 곧 자비와 지혜의 대상인 것이다. 풀 한 포기, 벌레 한 마리까지도 말이다. 자비는 다양하고 차별이 없다. 다문화사회에 접한 이 문명에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천수천안의 지혜와 자비인 것이다.

지혜와 자비는 별개가 아니다. 기계적인 희망은 얼마나 우리를 외롭게 하는가. 기계화된 관계는 오히려 무관심과 무책임의 벽돌을 만든다. 관심도 사랑도 머리가 아니라 손이다. 손이 하지 않는다면 결국 게으름과 이기심일 뿐이다. 수시로 손해보고 흔쾌히 희생하는 실천이 곧 깨어있는 손인 것이다. 이젠 빨래도 청소도 잘 하지 않는 손, 연필을 잘 쓰지도 않는 손. 아주 기초적인 행동조차 기계들에게 미룬지 오래이다. 그러나 우리는 깨어있는 손을 믿는다. 손의 체온을 믿는다. 할머니의 약손처럼 손바닥에서 일어나던 치유와 사랑의 힘을 믿는다. 지금 기껏 손이 하는 일은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 정도가 아닐까. 문제의 본질을 그냥 놔둔 채 그때그때 얄팍한 계산으로 허물만 가리며 대충 넘어가는 일상은 삶을 꼼수로 만든다. 도망갈 때 머리만 땅밑이나 수풀 속으로 처박는 꿩처럼 말이다. 도무지 스스로를 볼 수 없는 캄캄한 눈은 사회 전체를 모순의 수렁으로 몰아간다.

손은 가장 정직하고 순수하다. 안고수비(眼高手卑)라고, 생각이 실천을 따르기 어려운 법이지만 손으로 실천한 삶만이 자기 것이다. 손은 존재의 가장 원초적인 가능성이다. 천수천안은 바로 우리 속에 있다고 한다. 내 손으로 하는 것만이 진실이다. 사유는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한다고 해야 할까. 게으름이나 불평이 생길 때마다 유영모 선생님의 실천을 떠올린다. 한겨울 재래식 변소가 꽝꽝 얼어 똥탑이 쌓일 대로 쌓였다. 볼일을 보기 어려운데도 너도나도 미루던 참에 노년의 선생님이 도끼로 직접 그 똥탑을 다 패내었다는 말이다. 그제서야 서로 민망해하는 제자들에게 그거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라며 유쾌해 하셨다 한다. 사상은 그렇게 손에서 피어나는 것임을 배운다. 궂은일을 해야 할 때마다 손이 영혼의 힘임을 기억게 하는 일화이다. 우리 속에 물소리처럼 흐르는 천수천안관음보살이 삶의 모퉁이 곳곳에서 봄꽃처럼 피어나길 기다린다. 손에 담긴 사유와 실천은 마치 꽃피는 일과 같으리라. 꽃봉오리 닮은 순수한 열정, 그런 실천이 일상에 푸른 신호등을 켜지 않을까. 지금 바로 모든 소외에 손을 내밀 일이다. 그 손이 바로 진정한 용기이리라. 한 해를 시작하며 내 사랑도 내 손도 이제 지혜와 자비로 깨어있기를.

백년어서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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