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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위험한 사상의 올가미 /김갑수

통진당내 계파싸움, 지탄받을만 하지만 '종북' 혐의 덧씌워 이념공방 꼼수 부당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2-05-22 19:43:41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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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고교 시절 내 친구의 친구였다. 신당동 골목 모퉁이의 친구 집에 놀러 가면 다른 학교에 다니던 그가 와 있고는 했다. 체구가 작고 낮은 톤의 음성으로 히죽히죽 잘 웃던 그와 함께 공을 차고는 했다. 대학에 입학해 다시 그를 만났다. 그는 경제학과 나는 국문과. 허밍버드라는 영어회화 동아리에 몸담은 그가 시국문제를 떠올린 기억은 전혀 없다.

우리가 3학년이 될 때 박정희 시해사건이 일어났다. 야학한다는 연고로 총학생회 부활운동에 가담하면서 그를 자주 보게 됐다. 그는 운동권 출신이 아닌 것을 몹시 쑥스러워했고 누구보다 열심히 활동했다. 폭풍우 같은 시간이 흐르고 4학년이 된 어느 봄날이었다. 가정대 건물 위에서 누군가가 군사정권 타도를 외치며 유인물을 뿌렸다. 곧장 백골단이 뛰어 올라가 시위자를 때려눕히고 여러 명이 함께 지근지근 밟았다. 나중에 심한 장파열로 고생했다는 걸 알게 됐는데 시신처럼 길게 뻗어 질질 끌려나오는 시위 주동자가 바로 그였다.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갔다. 그도 우여곡절 끝에 졸업하고 노동운동을 하겠다며 공장에 취업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대학 동기들이 민주동문회라는 이름으로 다시 만나기 시작했을 때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그가 나타난 것은 변호사가 돼서였다. 그동안에 사법시험을 준비했던 것이다. 다시 만나니 히죽히죽 잘 웃는 것도, 농담을 진하게 하는 것도, 남의 얘기를 열심히 들어주는 것도 모두 여전했다.

언젠가 북한문제가 화제로 떠오르자 참여정부의 대북접근이 소극적이라며 당시 열린우리당 초선의원이었던 민병두와 언쟁을 벌였던 기억이 있다. 부시에 대한 혐오감이 매우 깊고 주한미군 범죄에 대해 분노를 토로했지만 사실 그런 면은 진보성향의 친구 모두가 공유하던 정서이고 견해였다. 그가 남다른 화제에 오르게 된 것은 결혼 때문이었다. 사법연수원 동기를 만나 연애 끝에 결혼했는데 그의 아내가 민주노동당 대표가 되면서 정국의 핵으로 떠올랐다. 그는 의원님 아내를 둔 덕에 집안 살림을 도맡아야 한다고 투덜대면서 일찍 집에 가고는 했다.

그렇다. 그가 이정희 의원의 남편 심재환이다. 신문 1면에 얼굴이 오르내리며 주사파 경기동부의 숨은 실세며 무시무시한 적색 이적분자처럼 묘사된다. 수십 년간 그를 보아왔는데 언론에 비치는 그의 면모는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낯선 존재다. 언론은 어떤 마법의 재주를 지녔길래 곁의 사람도 모르는 숨은 정체를 밝혀내는 것일까.

정당조직에서 싸움은 일상적이다. 고승덕 의원의 폭로로 홍역을 치른 새누리당 전당대회 돈 봉투 사건도 친이명박, 친박근혜 갈등을 배경으로 하고, 민주당 계파 갈등은 거의 일상적이다. 현재 통합진보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두 개의 비상대책위원회 사태 역시 전형적인 정당 내 계파 갈등으로 보인다. 그 보기 흉한 다툼에 대해 실망하고 분노할 수 있다. 당내 민주주의조차 못 이루고 떼거리로 폭력사태까지 일으키는 행태는 손가락질 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어째서 통합진보당에게만은 계파 갈등을 넘어선 다른 혐의가 덧씌워지는 것일까. 군사 정권기에 횡행한 사상의 올가미를 씌워 여론 단죄로 사태를 몰고 가려는 것일까. 당사자 누구도 동의하지 않는 '종북'의 딱지를 붙여 흡사 무서운 간첩조직인 양 혐의를 부풀려 가는 것에 당혹감을 금할 길 없다.

1989년 냉전체제가 해체되고 20여 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남북 간 국력격차는 비교불가로 벌어지게 됐다. 정권이 바뀌며 북한에 대해 유화책과 강공책이 오갔지만 그들을 관리 대상으로 보는 점은 동일했다. 과연 우리가 조롱해 마지않는 3대 세습의 새파란 20대 청년 '지도자'를 추앙하고 따르는 무리가 정말로 우리 내부에 존재한다고 믿는 걸까.

세계사에서 모든 우파세력은 '공포'를 권력강화의 수단으로 삼아왔다. 9·11테러가 발생하자 미국의 작은 시골 마을 주민들까지 두려움에 떨며 생필품 사재기를 했었다. 당시 정권의 정략적 홍보 때문이다. 한국 대선이 '무찌르자 공산당' 분위기로 흐른다면 크나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주요 국가 의제에 대한 생산적 토론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과연 철 지난 이념공방으로 점철되는 대선을 누가 원하고 있는가.

시인·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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