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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하루를 일깨우는, 살아있는 보물들 /김수우

물질 넘쳐나지만 보물은 점점 사라져…일상 속에서 빛나는 것들이 보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2-06-15 20:31:29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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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외수레들이 많은 계절이다. 길가에서 참외가 수북한 노오란 수레를 보면 세상이 괜스레 환해진다. 마치 무수한 등불을 켠 것 같다. 동화책에서 보던 보물상자 같기도 하다. 같은 느낌이 또 있다. 사진액자 속 아들의 웃음이다. 고등학교 때 도서관 앞에서 잠시 찍은 겸연쩍은 웃음을 볼 때마다 주변이 환해진다. 아들은 외국에 있다. 팔순 어머니가 오십을 넘긴 딸애 호주머니에 몰래 찔러주는 몇 만원, 나보다 훨씬 가난한 어머니의 주름진 손. 민망하면서도 마음은 또 하나의 등불이 된다. 내 보물상자의 따뜻한 품목들인 셈이다.

서늘한 품목도 있다. 전율이 담긴 작은 책이다. 책이라기도 뭐할 십여 쪽 되는 김명숙 작가의 도록이다. 처음 그림을 보았을 때 알 수 없는 근원에 대한 절망과 강박, 그러나 동시에 충만한 정신성으로 다가오던 심연을 기억한다. 그 얇은 책은 외로울 때, 아플 때, 게으를 때조차 들여다보는 보물이다. 다섯 살 때 꽃밥짓느라 사금파리로 찧던 풀잎도 생각하면 보물이다. 그 풀냄새는 지금도 일상의 틈바구니에서 힘들 때마다 내 손을 잡아준다. 어찌 그뿐일까. 내게 반성을 준 가혹한 실수조차도 보물이 되어 있지 않은가.

보물이란 그런 것이다. 화려하고 값비싼 것이 아니라, 갇힌 생명성을 끌어내는 에너지를 가진 물건 또는 상황이다. 모든 보물은 존재 고유의 힘과 온도를 가지고 있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내면의 어떤 울림을 확 끌어내면서 삶을 눈부시게 하는 것이다. 보물은 허영이 아니라 어떤 암시와 절규를 가지고 모든 고통과 환희를 직시하게 한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가게 한다.

'하루의 질을 바꾸는 것, 그것이 예술의 최고봉이다'. 고결한 삶을 꿈꾸던 데이빗 소로우의 말이다. 그는 인간은 의식적인 노력으로 자신의 삶을 드높일 수 있음을 강조했다. 하루하루를 보물로 만드는 품목은 무엇일까. 보물은 장롱 속에 감춰두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살아 있어 하루라는 시공에서 작동되어야 한다. 사람도, 자연도 그런 숨은 결로 이루어져 있으리라. 중요한 건 매순간 가치를 선택하는 의지이다.

역사를 꿰뚫어온 철학은 인류 전체의 보물이다. 나라는 수직적 실존에 끊임없이 수평적으로 작동하는 역사와 사회가 바로 삶이고 사상이다. 하나의 투박한 원석이 가공돼 보석으로 탄생하듯, 고결한 사상도 거친 역사 속에 인간의 호흡으로 숨어있다. 역사적 시간 속에서 흐르는 실존은 무수한 관계로 피어난다. 아무리 바빠도 복잡해도 우리 몸속에는 관계라는 영롱한 보물이 들어있는 것이다. 우리를 격려하는 것도 아프게 하는 것도 바로 이 빛이다. 하지만 낡아가는 삶을 늘 새롭게 깨워주는 이 보물은 점차 단절로 빛을 잃어가는 중이다. 끊임없는 소외의 현대문명이 회복해야 할 것이 결국 이 '관계'가 아닌가.

새로운 물질이 넘쳐나지만 보물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너도나도 좇아가는 소비의 유행 때문에 잃어버린 것들은 무엇일까. 하루가 그리고 관계가 싸구려처럼 함부로 흘러간다. 그렇게 적층된 하루는 공허한 현실을 만든다. 자기만의 보물이 많은 자는 저절로 너그럽다. 넉넉하고 여유가 있다. 많은 것을 소유하면서도 결코 너그럽지 않는 현실이 우리의 빈곤한 영혼을 보여준다.

가장 큰 보물은 자신의 순수한 의지가 아닐까. 모든 절실함은 바로 극진함에 닿듯 순수한 의지는 우리의 무릎을 세운다. 노란 참외수레, 아이의 웃음, 어머니의 손 그리고 성실한 터치로 가득한 그림이나 풀냄새 모두 아름다운 결정체이다. 아무리 사소해도 일상 속에서 결정으로 빛나고 있는 것들을 챙겨보아야 하지 않을까.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아도 보물이 되는 것들, 그 속에 바로 내가 살아 있다.

하루의 질을 간소하게, 따뜻하게 바꾸는 것, 그것은 위대한 관계를 추구하는 우리의 용기에 있다. 예수는 가난을 가르쳤다.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 부자는 천국에 갈 수 없다고 했다. 부처도 무상과 무소유를 가르쳤다. 그런데 왜 우리는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지 못하는가. 왜 그럴까. 내게 보물이 되어준 시간이나 사람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보물이 되어줄 수 있을까. 내 안에서 노오란 참외수레 하나가 천천히 지나간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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