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아침숲길] 곁에 있을 때 /이상섭

아내와 사소한 일로 대화보다 티격태격…가족이 있어야 '행복한 말다툼' 가능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2-06-29 20:31:01
  •  |   본지 23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지금 수리하러 온다니까 무조건 대기하고 있으셈! 뒷산에 올랐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휴대전화가 울었다. 몹쓸 여편네 같으니, 아직 화가 덜 풀렸나. 가정을 내팽개치고 엉덩이를 뺀 주제에 감히 남편한테 문자지령까지 내리다니. 기분이 엉켰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문제는, 날씨가 날씨인 만큼 두어 시간 걸었더니 온통 땀범벅이라는 거였다. 샤워꼭지 밑으로 쪼르르 달려가고 싶은데 하필 지금 온다니 젖은 채로 기다릴 수밖에.

멀쩡하던 욕실에서 누수가 발생한 건 며칠 전이었다. 처음엔 바닥의 물기가 덜 말라서 그러려니 했었다. 알고 보니 벽과 세면기를 연결하는 파이프에서 물이 새고 있었던 것이다. 관리실에 수리를 부탁했다. 한데 직원이 바쁘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주민 편의를 위해 아파트 관리실에서 서비스 차원에서 해주는 일을 이래라저래라 할 수도 없는 일, 그래서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던 것이다.

조만간 오겠지 한 수리공은 오지 않았다. 무턱대고 벽시계 눈치만 보고 앉아 있자니 땀까지 말라붙으면서 온몸이 가려워오기 시작했다. 첵첵첵, 첵첵첵. 초바늘은 부지런히 달음박질을 쳤다. 십 분 경과. 뭐 이 정도야 늦을 수 있겠지, 바쁜 양반들이니까. 첵첵첵, 첵첵첵. 이십 분 경과. 에이, 이렇게 늦을 거면 진즉부터 늦는다고 하든지 그랬더라면 샤워라도 했을 걸. 첵첵첵, 첵첵첵. 삼십 분 경과. 첵첵첵, 첵첵첵. 사십 분 경과. 이거 혹시 아내가 잘못 안 거 아냐? 휴대전화의 문자를 다시 확인하는 그 순간에도 바늘은 멈추지 않고 첵첵첵, 첵첵첵. 급기야 온몸은 부들부들, 머릿속은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현관에서 초인종 소리가 난 건 그때였다. 딱딱한 얼굴로 문을 열었더니 웬 장대같이 키 큰 남자가 서 있었다. 대체 식사량이 얼마인지 몸에는 비상살점까지 달았으며 면도도 걸렀는지 얼굴에는 수염이 수북했다. 뭐랄까. 오십 년 전에 태어났으면 영판 산적이라 불러야 할 정도? 하이고, 많이 기다리셨죠? 늦어서 죄송합니다. 산적의 목소리는 제 덩치에 걸맞지 않게 부드러웠다. 그 바람에 나는 아, 네 하며 눈과 코와 입을 급히 재정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산적은 욕실로 향했다. 그러더니 메고 온 공구가방을 풀었다. 산적은 금정산만큼 쌓인 내 짜증을 알아채지 못하고 엉뚱한 말을 불쑥 꺼냈다. 오늘따라 이상하네요, 주말인데 집집마다 혼자 있네요? 산적의 흰소리에 나는 하마터면 자식은 공부 때문에 집을 잠시 떠났고 아내는 제 맘대로 외출을 자행했네요, 하고 말할 뻔했다. 어휴, 좀 전에 싱크대 배수구 수리한 집도 할머니 혼자 살고 계시지 뭡니까? 근데 얼마나 외로우신지 사람을 붙잡고 놔줘야 말이죠. 그래서 늦었다는 건가. 그걸로 내 짜증의 부피를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가. 산적은 다시 제 말만 이어갔다. 과일접시를 핑계로 주저앉히기에 처음에는 마지못해 앉아서 고개박자만 맞춰 줬죠. 근데 할머니의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일어날 수가 없더군요. 자꾸 아내 생각이 나서 말입니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내 귀가 솔깃했다. 아내라는 말 탓인가. 아무튼 나는 아내가 왜요? 하고 묻고 말았다.

산적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한동안 말문을 닫고 있었다. 사실 제 아내가 늘 누워 지내는 처지거든요. 앓아누워 있는 것만 보면 집구석이 지옥 같아 술을 안 먹을 수 없었죠. 근데 할머니 얘기를 듣고 나니까 생각이 달라지더군요. 아파도 곁에 있는 것 자체가 고마운 일이 아닌가 싶어서요.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이번 참에 술을 끊을까 하고요. 그 말을 끝으로 산적은 일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등을 굽힌 채 수리작업을 몰두하는 산적을 보면서 나는 아내 생각을 했다. 어제도 다림질해놓지 않은 와이셔츠를 빌미로 티격태격했었던가. 언제부터인가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싸움을 거는 것처럼 언성을 높이는 나. 그런 말다툼마저도 아내가 곁에 없다면 받아줄 수 없는 일이잖은가. 나는 남자를 뒤로 한 채 조용히 거실로 빠져나왔다. 그리고 소파 위에 던져둔 휴대전화를 거머쥐었다.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문자를 찍기 시작했다. 집안일은 잊고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다가 들어오셈!

소설가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만조 때면 멈추는 광복지하도 에스컬레이터
  2. 2‘좌초 위기’ 해운대 70층 주상복합 개발 기지개 켜나
  3. 3‘부캉이’ 추워지기 전 바다로…21일 3차 외해유도(종합)
  4. 423명 숨진 ‘아리셀 화재참사’ 기업 대표, 징역 4년형 확정(종합)
  5. 5신공항 공사 컨소시엄 1곳 탈퇴…내달 우선착공 무산 우려(종합)
  6. 6지광(국제신문 대주주) 만난 부산노동청장 “체임 방치 땐 강력 조치”
  7. 7사망사고 1년 만에…부산구치소 수감자 집단폭행 재발
  8. 8창원 구산해양단지 컨소 회생 포기…26년 표류 끝 좌초되나
  9. 9부산시, 신임 기조실장 26일 발표…행정부시장 행안부 고위간부 가닥
  10. 10마무리 캠프 코앞인데…롯데 감독·단장 인선 언제쯤
  1. 1지광(국제신문 대주주) 만난 부산노동청장 “체임 방치 땐 강력 조치”
  2. 2‘청문 부적격’ 기관장들 임명 기류…田시장-시의회 협치 두번째 뇌관
  3. 3교육위 국감 화두 ‘교부금 축소’…“교육감 대응도 안일” 질타
  4. 4부산회생법원 국감 “지역언론 가치 고려 국제신문 살펴야”
  5. 5與, 초광역특구법안 발의 “주 52시간 특례 숙의”
  6. 6"2026 AG 여자유도 계체실격, 남자 계체명단만 확인해 발생"
  7. 7언론노조·국제 비대위 “대주주 엄벌” 청와대 간다
  8. 8與, 추미애 ‘재정 빨대’ 진화 안간힘인데 기름 부은 부승찬(종합)
  9. 9또 도마 오른 항만공사 통합…“소신없는 사장 책임” 질타
  10. 10[2026 국감 브리핑]조경태 “최고 시스템 갖춘 건기연이 가덕도신공항 부지 침하 연구해야”
  1. 1‘좌초 위기’ 해운대 70층 주상복합 개발 기지개 켜나
  2. 2신공항 공사 컨소시엄 1곳 탈퇴…내달 우선착공 무산 우려(종합)
  3. 3부산에 둥지 수산무역협회…김 등 수출 드라이브
  4. 4송도 바다서 만난 융드립 커피 한 잔
  5. 5가덕 6200억 증액 확약 절실…국회는 특별법 개정안 논의
  6. 6부산은행, 불꽃축제 등 지역축제 발전에 2억 후원
  7. 7관광과 지역민 함께 성장을…세계가 부산서 묘책 찾는다
  8. 8“친환경 항만 투자 100억 당, 부산 124억 생산유발”
  9. 9동남아 접수하러 ‘부산표 게임’ 방콕행
  10. 10예탁원 나눔재단, 17년째 지역상생 실천
  1. 1만조 때면 멈추는 광복지하도 에스컬레이터
  2. 2‘부캉이’ 추워지기 전 바다로…21일 3차 외해유도(종합)
  3. 323명 숨진 ‘아리셀 화재참사’ 기업 대표, 징역 4년형 확정(종합)
  4. 4사망사고 1년 만에…부산구치소 수감자 집단폭행 재발
  5. 5창원 구산해양단지 컨소 회생 포기…26년 표류 끝 좌초되나
  6. 6부산시, 신임 기조실장 26일 발표…행정부시장 행안부 고위간부 가닥
  7. 7APEC공원·금련산역 러너지원공간 문 열어
  8. 8“기존 공부량 유지하며 취약점 공략…남은 주말 수능처럼 모의고사를”
  9. 9“광안리 해변 보행공간 개선…구 차원 추가 캐시백 검토중”
  10. 10구·군 일손 적고 주인 자비부담 꺼려…슬레이트 철거 하세월
  1. 1마무리 캠프 코앞인데…롯데 감독·단장 인선 언제쯤
  2. 231세 데이터 분석가, 최연소 MLB 구단 사장됐다
  3. 3유럽 강호 맞서는 김시우·임성재
  4. 4"2026 AG 여자유도 계체실격, 남자 계체명단만 확인해 발생"
  5. 5잘 넣긴 하는데…욱하는 외인, 속 타는 구단
  6. 6전설 수지 수산티 넘은 전설…안세영 47번째 우승 ‘세계新’(종합)
  7. 73연승 KIA, LG 꺾고 23년 만에 플레이오프 진출
  8. 8KIA 내리 3승이냐, LG 반격 첫 승이냐
  9. 9국대 에이스 곽빈, 최동원상 받는다
  10. 10김태형 유임이냐, 이동욱 전 NC 다이노스 감독·조성환 해설위원 등 새 얼굴이냐
우리은행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해운기업 유치, 해사법원 신설 “해양수도 부산 경쟁력 키울 것”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진짜 질문의 시작
AI 시대, 부산 R&D의 대전환
국제칼럼 [전체보기]
원칙이 흔들린 대가
‘빵과 책’·양자경·강말금 그리고
기고 [전체보기]
배의 피부를 지키는 기술은 도장이다
거장은 떠나도, 오케스트라는 남아야 한다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여름날의 애상, 왈츠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북극항로, 첫 배보다 중요한 것은 다음 배다
솔직할 수 있는 용기, 당신에게도 닿기를
도청도설 [전체보기]
주당 ‘13.7시간’ 고용
발가벗겨진 사우디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25년을 간직한 리플렛 세 장
요추부 척추관협착증, ‘메포츠’로 극복하기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미래대응기금, 지방재정 기반 흔들어선 안 된다
단일종목 ETF 졸속 심사 인정…책임 소재 밝혀야
세상읽기 [전체보기]
문화예술의 시대
다민족 사회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HMM 부산 이전, 해양수도의 시험대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한국이 가진 자산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오스트리아 와인,빈의 시간을 마시다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청년 떠나는 지방, 수도권 인구 분산해야
거울 속의 외계인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