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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미세한 마음 /이성희

민감해지는 가을, 비우고 고요해지면 막힌 곳 뚫리고 상처·고통 치유돼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2-10-03 19:25:15
  •  |   본지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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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휴가 지나자 완연한 가을이다. 추호(秋毫)라는 말처럼 짐승의 털이 가늘어지는 계절이다. 어디 짐승의 털뿐이겠는가. 송나라 구양수를 전율하게 하여 명문 '추성부(秋聲賦)'를 남기게 했던 가을바람, 창 너머 먼 산의 빛깔, 우리들 마음도 가늘어지고 민감해 진다. 지금은 진정 미세해져야 할 때이다.

한 인도 사상의 강연에서 귀동냥한 것이지만, 요가의 수련 과정은 '정화'와 '변형 가능'의 단계를 거쳐 최종적인 단계에서는 마음이 지극히 미세해지는 것이라고 한다. 요가에 따르면 마음이란 가장 미세하고 섬세한 물질이다. 동아시아 기론(氣論) 입장에서 찾아본다면 그것은 아마 '정(精)'의 개념에 가까울 듯하다. '정'은 무형의 기(氣)가 유형화되는 순간의 원초적인 미세 물질이다. 그래서 가장 미세한 생명의 종자를 '정자(精子)'라고 하고, 가장 미세한 마음의 활동을 '정신(精神)'이라고 하는 것이다.

파동으로 본다면 마음은 가장 미세한 파동이다. 파동은 미세할수록 빠르게, 그리고 멀리 나간다. 리처드 바크의 소설 '갈매기의 꿈'에는 비행의 최고 경지에서 얻게 되는 '사념 속도'가 나온다. 마음이 가는 순간 몸이 그곳에 가는 것, 신비로운 입신의 속도이다. 사실 마음은 늘 한순간에도 천리를 간다. 다만 몸이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마음이 미세한 파동인 반면 몸은 거친 파동이기 때문이다.

본래 미세했던 마음을 요가 수련을 통해 다시 미세하게 만들고자 하는 것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마음이 쉬 거칠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거칠어지면 도처에서 막히기 마련이다. 몸과 마음의 모든 질병은 막히는 데서 생긴다. 이 막힌 곳을 뚫어주는 것이 치유가 아니겠는가.

최근 도처에서 치유가 화두가 되고 있다. '힐링'이니, '치유 인문학', '치유의 예술'이니 하는 말들이 가을바람 소리처럼 도처에서 떠돈다. 그만큼 우리의 삶이 병들어 있다는 방증이리라.

인도 의학에 따르면 가장 저급한 치료가 몸에 물질(약)을 투입하는 것인 반면 최상의 치료는 마음을 투입하는 것이라 한다. 의사가 마음을 투입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의 마음이 지극히 미세해지고 섬세해야 할 것이다. 미세해진 마음의 파동은 모든 장벽을 돌파한다. 오래 전에, 치료 기공인 '아미포기공'을 조금 배운 적이 있다. 그때 중국인 선생은 이렇게 말하곤 했다. "마음이 가는 곳에 기(氣)가 간다." 우리 몸 가운데 막힌 곳이 있으면 그곳을 명상해보라. 그러면 자연히 기가 그곳으로 가서 뚫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기를 정치하게 수련해야 한다. 이때의 기 수련이란 요가에서 마음을 미세하게 하기와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 이치는 타인을 치료하는 데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나아가서 그것이 사회의 경우에도 적용되지 않을 이유는 없다. '설문해자'에 의하면, 동아시아에서 위대한 통치자에게 부여하는 '성(聖)' 자의 본래 의미는 통함(聖, 通也)이다. 성인이란 막힘을 뚫고 통하게 하는 자이며, 그것은 몸의 막힘을 뚫는 의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장자(莊子)는 세속의 정치에서 도피한 몽상가라 치부되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는 누구보다도 근본적인 정치의 방법을 제시했을지도 모른다. "마음을 비우고 고요하게 하여 천지에 나아가 만물과 통하게 하는 것, 그것을 하늘의 즐거움이라 한다. 하늘의 즐거움은 성인의 마음이며 성인은 그것으로 천하를 기른다." 장자의 말씀이다. 비우고 고요해지면 미세해지기 마련. 미세해진 마음으로 만물과 통하는 자가 참된 통치자이다. 그런데 이는 만물과 감응하는 시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쯤이면 시인들을 추방하고 철학자를 왕으로 세운 플라톤의 '철인정치론'에 대하여 '시인정치론'이라 해도 무방할 듯싶다.

올가을에는 장자의 시인정치를 믿어볼 작정이다. 미세한 마음이야말로 시인의 마음이며, 치유의 마음이며, 통치자의 마음임을 믿어볼 작정이다. 물질의 투입만으로 치유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상처와 고통은 미세한 마음의 투입을 요구한다. 누가 뭐래도 다가오는 대선에서 나는 미세한 마음을 찾아볼 작정이다. 무엇보다 내가 아프기 때문이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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