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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숲길] 늦단풍, 그 뜻밖의 /이상섭

단풍놀이 목적지 길 헤매다 늦게 도착, 산행 나선 일행보다 가을 풍광 더 만끽

  • 국제신문
  •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2-11-16 20:36:49
  •  |  본지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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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 너머 작년 그놈 왔다, 니는 우얄래? 죽마고우로부터 문자를 받은 건 한 달 전이었다. 그러니까 가을을 맞아 고향 친구들끼리 단풍놀이라도 다녀오자는 일종의 최종 의사 타진인 셈이었다. 다들 머리에 하얀 눈이 쌓이는 중이니 더 늦기 전에 우정의 잔고도 확인할 겸 모이자는 데 '딴지 걸고 자시고' 할 게 없었다. 해서 쌍수 들고 찬성했다. 한데 애당초 여섯 명이 전원 부부동반으로 1박2일을 함께 하는 게 무리였는지 모른다. 이건 뭐 모여야 출석을 부르고 출발도 하지, 당최 날짜 잡기가 쉽지 않았다. 날을 잡았다 싶으면 한 녀석에게 사정이 생기고, 다시 날을 잡으면 또 다른 녀석에게 사정이 터졌다. 그 바람에 종쳤다 싶었는데 뒤늦게 날짜가 잡혔다고 연락이 온 거였다. 이름하여 '무진장' 1박2일 가을여행! 그렇게 어렵사리 시작된 여행이 첫 단추부터 잘못 꿰일 줄이야.

삶의 근거지를 중심으로 몇 명이 모여 약속 장소까지 서로 달려가고 달려오기로 한 것까지는 괜찮았다. 문제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합류한 다음이었다. 친구들이야 그렇다 셈쳐도 코스모스처럼 낭창낭창한 허리를 가진 젊은 시절의 친구 아내들까지 약속이나 한 듯 죄다 항아리만한 배를 달고 나타났으니 누가 누구의 배필인지 구분도 힘든 판에 출발 신호부터 울렸던 것이다. 성미 급한 녀석에게 중책을 맡긴 게 화근이었다. 그렇다고 녀석의 닦달이 전혀 엉뚱한 건 아니었다. 예정시간보다 합류도 늦었고 다음날엔 전국적으로 비마저 예보되어 있으니 젖은 단풍만 밟다가 올지 모른다는 걱정들을 하고 있었으니까.

운짱 노릇을 자청한 나로서도 서둘러 운전석으로 달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얼마나 내빼는지 아무리 액셀러레이터를 눌러 밟아도 녀석의 승합차를 도저히 따라잡을 수가 없다는 거였다. 녀석은 어쩌면 숙소며 일정까지 알고 있으니 알아서 찾아오겠거니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같이 여행을 하기로 했으면 일행과 보조를 맞추는 것이 원칙이 아닌가. 더군다나 이 몸이야말로 시내만 벗어나면 길치 아니던가. 급한 대로 조수석에 앉은 친구 녀석에게 '내비 아가씨' 호출을 부탁했다. 아가씨가 시키는 대로 가기만 한다면 늦게나마 목적지에 도착할 터였다. 내비 아가씨의 목청이 터진 다음부터 우리는 본격적으로 각자 간직하고 있던 성미 급한 녀석의 추억담을 꺼내 '찧고 까불어대기' 바빴다. 그러다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엉뚱한 지명만 계속 나타났기 때문이다. 내비가 거짓말하는 거 봤어? 이 나라 대통령도 믿고 따르는 게 이 아가씨야, 그냥 달려! 조수석에 앉은 친구 녀석이 소리쳤지만 달릴수록 이상한 느낌은 가시지 않았다. 결국 내비게이션을 다시 조작해 보기로 했다. 한데 이런 낭패가 따로 있나. 같은 숙소명이 무주, 진안, 장수도 아닌 전주의 구석에도 있을 줄이야.

길을 잘못 들어도 한참 잘못 든 셈이었다. 부랴사랴 차를 돌려 목적지로 향했지만 앞선 일행은 기다리다가 지친 나머지 점심까지 먹고 등반에 나서는 중이라 했다. 잠잠하던 차 안은 다시 책임 소재를 따지는 끔찍한 언어들로 시끄러웠다. 옳거니 잣거니 해대다가,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대로 일정을 소화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때부터 우리 일행은 느긋하게 길가에 펼쳐진 가을 풍광을 감상하며 감탄사도 터뜨리고, 길가에 도열한 '지상의 별'이라는 선홍빛 단풍나무 아래 차를 세워 기념사진을 찍기도 했다. 더럽게 산 것들은 반성하라면서. 물론 그때까지만 해도 다들 길가의 경치가 이 정도라면 산속의 경치야말로 얼마나 이쁠까 싶어 앞선 일행을 부러워하고 있었다.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산행에 나선 일행도 맞을 겸 계곡 초입으로 향했다. 정말 향적봉 정상까지 올랐는지 내려올 기미가 없었다. 그러다가 산그늘이 꽤 깊어서야 물 간 낙지마냥 늘어진 일행과 만날 수 있었다. 한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산속 상황이 흉했다. 단풍은커녕 찬바람에 뺨만 실컷 얻어맞고 왔다는 거였다. 그제야 우리는 만연의 미소를 피우며 울대를 추켜세울 수 있다. '나윤선의 재즈아리랑'을 화제 삼아, 먼저 내뺀 싸가지 없는 '나쁜 님들'이야말로 발병만 오지게 났다면서. 그렇게 '요란뻑적지근한' 여행의 첫날이 깊어가고 있었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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