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생활 7년째를 넘기며 쇠락하는 이 나라의 모습이 슬프다. 그 모습은 거대 경제지표도 아니고 정치인들의 의회연설도 아닌 보통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나타난다. 잃어버린 20년의 끝이 보이지 않는 요즘 특히 일본사회에서 감지되는 부분은 여유의 상실과 긴장감의 고조이다. 내리막길을 가고 있다는 패배감과 미래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혼재하는 공기 속엔 '내 인생 내가 지키지 않으면 아무도 거들떠봐 주지 않는다'는 비장함이 스며있다. 경계심 어린 행인들의 표정에서도, 신호를 무시하며 달려가는 운전자의 모습에서도, 일본의 성공 신화는 이미 오래전에 끝난 듯싶다. 옥탄가 낮은 매캐한 매연 냄새가 짙어만 가는 겨울 거리의 풍경은 몹시 스산하다.

자기 방어가 생존의 패러다임이 된 각박함 속에서 여유나 관용 따위는 사치스러운 개념이다.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내용들도 열도의 살벌해진 인간관계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지난 10년간 친족살해는 5배, 아동학대는 10배, 가정폭력은 배가 증가했다. 이혼한 여성들의 약 40%가 가정폭력을 경험했다고 한다. 아동학대나 가정폭력의 경우는 폐쇄된 공간에서 긴밀한 관계를 가진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물리력의 행사라는 점에서 사회적 개입이 어려운 사안들이다. 일본의 문화코드 속에서 관계적 약자의 보호는 특히 힘든 부분이다. 혹시라도 개입했다가 자신마저 표적이 될까 두려워, 남의 일에 간섭하는 것이 실례가 될까 봐, 주위 사람들이 가만있는데 나섰다가 자신의 판단이 혹시 틀릴 수도 있을까 봐 등의 이유는 약자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한국도 일본의 비정함을 닮아가고 있지 않나 싶다. 고령화, 사회관계의 끈이 끊어진 무연(無緣)사회, 고독사, 집단 따돌림 등은 욕하면서 배운 사회악이지 싶다. 일본인들은 스스로를 강한 이성에 근거한 냉정한 사람들인 반면 한국인들은 인정에 끌리는 감정적인 사람들이라고 폄하해왔다. 인정에 끌린다는 것은 감정적 제어력이 떨어지는 약함 내지는 열등함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지난해 3·11대지진 이후 500만 달러의 모금액을 전달한 한국에게 일부에선 남 도와줄 생각하지 말고 자기 일이나 잘하라는 충고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절대로 틀린 생각이다. 인정(人情)은 한국의 자산이자 미래다.

몇 달 전 한국의 어느 중국식당에서 겪은 일이다. 짧은 방문길이라도 짜장면을 먹고 돌아오는 일은 사소하지만 필자에겐 나름대로 중요한 일과다. 그날도 출발을 몇 시간 남겨두고 변두리의 중국식당에서 식탐에 눈이 멀어 7000원짜리 삼선짜장에 4000원짜리 만두까지 시켜놓고 앉아 있었다. 그때 마침 겉으로 보기에도 힘든 노동일을 하고 있는 작업복 차림의 남자가 들어와서 4000원짜리 보통 짜장면을 시켜선 들이켜듯 순식간에 먹어 치우는 모습에 내 앞에 놓인 음식 접시들이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 남자는 계산하기 위해 얼마냐고 물었고 식당 주인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3000원이라 말하고 그만큼만 받았다. 순간 그렇게 따뜻한 한국과 한국사람들이 정말 좋았다. 삼선짜장이 붓도록 눈물을 참지 못하는 바보같은 내 모습이 창피했지만 그런 모국이 자랑스러웠다.

인정은 한국의 자산이다. 인정은 남의 아픔을 내 자신의 아픔으로 여길 줄 아는 동정심, 남이 겪고 있는 불행이 언제든 내게도 닥쳐올 수 있다는 겸손함, 좀 더 가진 자가 덜 가진 자와 나눈다는 정의감을 포함하는 아름다운 마음이다. 인정에는 부조리와 분노의 경험을 긍정적 에너지로 바꾸는 치유의 힘도 있다.

지금 한국도 힘든 시기를 넘기고 있다. 살아남기 위한 무한경쟁 속에서 우린 너무 삭막해지고 있지는 않은가? 아무리 먹고살기 힘들어도 잊지 말아야 할 마음이 있다. 홀로 세상을 떠나간 노인들도, 집단 따돌림으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하늘나라로 떠나간 소중한 아이들도, 살아있는 우리들에게 사람다운 따뜻한 마음을 잊지 말라고 한다. 인정은 한국의 경쟁력이고 또 미래다. 요즘 일본을 보면서 더더욱 그러한 마음이 든다. 새로 탄생하는 대통령도 이를 새겨 들었으면 한다.

히로시마 시립대 평화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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