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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통치기술, 그들끼리 싸우게 하라 /김갑수

극우 윤창중 이어 유신 김기춘 기용, 정치공작 갈등조장 묵인한다는 뜻?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3-08-12 20:21:18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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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끼리 싸우게 하라. 아무도 나에게 대항하지 못하리라'.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에도, 사마광의 자치통감 36계에도 등장하는 유명한 통치기술이다. 국가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갈등 요소가 정부로 수렴되지 않고 국민에게 전가되어 서로 싸우기 시작하면 통치자에게는 태평세월이 찾아온다. 유혹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런데 그런 통치기법이 동원되면 국가는 정체와 퇴행의 길로 들어선다. 건강한 경쟁사회가 아니라 비이성적인 물어뜯기 난장판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신기한 경험을 많이 했다.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소송을 거는 일이 빈번해진 것이다. 경찰, 검찰이 존재하는데 범법이 있으면 절차대로 다스릴 일이다. 하지만 정부 부처나 기관의 장들이 뜬금없이 시민을 상대로 고소 고발을 한다. 얼핏 권력을 휘두르는 대신 사법 절차를 존중하는 듯하지만 실은 갈등요소를 최대한 부각시키는 기법이었다. 고소 고발전의 관전자들끼리 2차 공중전을 벌이며 연일 시끄러워진다. 1989년 동서독 통일을 기점으로 지구상에 공산체제는 소멸한 것으로 본다. 북한이 존재하지만 공산주의 국가라기보다는 독특한 가부장적 독재국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땐 철 지난 좌우익 이념 용어가 온 세상을 휩쓸었다. 4대강 공사 반대든 뭐든 정부에 비판적이면 좌파, 종북, 빨갱이였다. 이 싸움은 공안당국이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국민들 간에 벌어졌다. 하루하루 생활하기 바쁘건만 그냥 국민 대신 좌익 국민, 우익 국민으로 선택을 강요받는 형국이었다.

그들끼리 싸우게 하라. 통치자 앞에서 그들 간의 싸움은 기세를 더해 간다. '라도코드' 등 전라도를 극심하게 혐오하는 사이트가 활개치고 그 정신을 계승한 일베 사이트가 등장해 혐오를 넘어선 증오와 선동의 발톱을 간다. 이들은 전라도 혐오에 그치지 않고 북한, 여성, 다문화인, 외국인 노동자로 증오의 범위를 넓혀간다. 표면적으로 정부가 직접 나서지는 않지만 최근 국정조사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이들 배후에 국정원의 지원과 공작이 상당히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 간에, 특히 사회적 약자를 향해 배려와 관용 대신 증오의 발톱을 키워나가면 상황은 어찌 되는가. 이성의 실종, 사익추구의 악다구니, 모든 관계의 서열화를 통한 작은 권력들의 강화, 그리고 결국에는 통치자의 태평세월이 찾아온다.

박근혜정부 들어서는 어떠한 변화가 있는가. 선거 복장을 빨간색으로 바꾸는 과감성에 혹시나 했었다. 과거 김대중 슬로건을 상당 부분 차용하는 한편 유신통치에 대해 사과하는 모습을 보며 어떤 기대감도 가졌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요령부득의 용어 역시 이명박 정권의 상호주의와는 다른, 전향적 대북정책의 가능성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주위 진보주의자 대부분이 콧방귀를 뀌었지만 일말의 기대감은 사실이다. 그런데 청와대 대변인으로 윤창중이 등장한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극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박근혜 대통령은 이해하지 못하는가. 국제 망신으로 윤창중이 떠나고 집권 초 40%대라는 기막힌 지지율도 상당 부분 회복되는 와중에 다시 인사가 있었다. 그런데 김기춘이라니!

윤창중 사건 후 '사람을 잘못 봤다'고 토로했는데 혹시 인사상의 실수가 아니라 그의 극단적 주장에 동감했던 것은 아닐까. 김기춘 비서실장이라면 유신, 지역감정, 정치공작 모두를 승인한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70대 중반 노인의 중용이 상징하는 것은 이제 그들끼리의 싸움 속에 세대갈등까지 심화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앞날은 어떻게 흘러갈까. 좌우로 가르고 동서로 싸우고 남녀로 다투고 세대로 미워하고 남북으로 전쟁하면서 김기춘 비서실장과 남재준 국정원장 주도의 정국은 탄탄대로를 걸을지 모른다. 국민 그들끼리 싸우는 목청 속에 비판자들은 갈수록 축소되어 나갈 가능성도 높다.

갈등의 치유가 아니라 갈등의 강화를 통한 공작적 통치가 계속 이어진다면? 개헌의 가능성이 높겠지. 이원집정제와 중대선거구로 개편되면 새누리당 영구집권이 펼쳐진다. 남북은 상시 전시태세로 돌입하여 국민총화 단결의 목청이 하늘을 찌르고 어쩌면 궐기대회가 자주 열릴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는 아련한 그때 그 시절, 1970년대로 회귀하는 중일까.

시인·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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