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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윤 칼럼] 지금이 왕조시대인가

지역편중·측근중용, 대통합 거스른 인사…권위주의 통치 불러

유신 찬양 공공연, 민주주의 후퇴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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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연 학연 등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새 정부에서는 그 직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는 적임자인지 여부가 인선의 최우선 기준이다." 감사원장에 이어 검찰총장까지 PK(부산 경남) 출신이 내정되면서 지역편중 인사에 대한 비난이 일자 청와대가 내놓은 답변이다. 대법원장 국무총리 헌법재판소장 등 헌법기관장뿐 아니라 청와대 비서실장과 민정수석 감사원장 검찰총장 등 사정라인도 PK 일색이다.

고금을 막론하고 인재등용의 가장 큰 미덕이 적재적소(適材適所)에 배치하는 일임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나 지역편중 인사가 적재적소의 명분이 될 수는 없다. PK 출신을 제외하고는 쓸 만한 인재가 없다는 게 아니라면, 청와대의 적재적소론은 궁색한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어쩌면 박근혜정부의 인사가 '고소영'으로 임기 내내 욕 먹었던 MB(이명박)정권의 인사보다 못하다는 세간의 구설에 대한 거친 반응은 아니었을까.

한 언론이 정부와 청와대의 장차관급 인사 90명의 출신지역을 분석해 본 결과 PK 20명, TK(대구 경북) 12명 등 영남 출신이 35.6%를 차지했다. 이는 지난 3월 1차 조각 완료 당시의 23.6%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수치이다. 정권의 2인자로 '부통령'으로 불리는 김기춘 비서실장이 입성한 뒤 PK 세력은 권력 핵심부로 눈에 띄게 약진했다. 총리까지 천거했다는 소문이 도는 등 박근혜정부의 권력 네트워크가 김 실장 중심으로 짜여지고 있다는 게 낭설만은 아닌 듯싶다.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인사가 시스템에 의존하기보다는 인간관계에 의존한 채 정실에 치우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정을 장악하기 위해선 신뢰할 수 있는 측근을 내각이나 청와대에 우선적으로 기용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지역편중이 생길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 문제다. 지역편중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지난 대선에서 박 대통령이 내세웠던 대통합·대탕평의 원칙을 스스로 훼손했다는 데 있다. 평소 원칙을 중하게 여긴다는 박 대통령이 국민화합이라는 대의명분을 헌신짝처럼 내버린 셈이다.

박 대통령은 선거 내내 대통합의 기치를 내걸었다.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 해소를 위한 경제민주화·복지확대와 함께 진보-보수, 영-호남으로 분열된 국론을 모으기 위해 국민대통합을 대선 으뜸공약으로 내세웠다. 선거 막바지 호남 유세에서는 "국민대통합은 말로만 외친다고 이뤄지지 않는다. 인사가 공정해야 하고 지역 간 갈등과 격차가 해소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탕평의 인재기용으로 국민화합을 이루겠다는 약속이었다. 물론 유권자들 중 이들 공약이 다 실현되리라고 믿은 이들이 얼마나 됐겠는가. 경제민주화는 자본권력이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 마당에 쉽사리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고, 복지확대 역시 재정의 한계에 봉착할 것이란 짐작 정도는 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실현 가능한 게 고른 인재를 등용하는 대탕평 인사였다. 그런데 그것마저 외면하고 지금에 와서 딴소리를 하니 국민들로서는 배신감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이 국민대통합이란 원칙과 약속을 깨뜨린 이면에는 일사불란한 통치에 대한 유혹이 도사리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정부 들어 내각은 책임장관론이 무색하게 '영혼 없는' 관료 출신으로 채워지고 청와대 비서실은 측근 실세들로 구축됐다. 그리고 권위주의 통치로의 회귀에 대한 우려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권위주의적 통치는 독선적 국정으로 귀결되기 십상이다. 역대 정권을 통해 대통령 일인에게 집중된 권력의 폐단을 숱하게 봐왔다. 권력의 배분을 통한 순리적 통치가 자리를 잃으면 민주주의 가치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파당적인 인재등용을 통한 권위주의적 통치는 개인사를 극복하지 못한 채 아버지 시대를 그리는 박 대통령의 과거회귀 욕망에 맞물려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복고적 풍토는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린다. 박정희 전 대통령 34주기를 맞아 유신을 미화하는 목소리가 공공연하게 터져나왔다. "우리 시민들은 간첩이 날뛰는 세상보다는 차라리 유신시대가 더 좋았다고 부르짖는다"는 정신 나간 주장도 모자라 "한국은 독재를 해야 된다"는 망발까지 난무했다. 지금 우리가 왕조시대에 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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