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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아름다운 퇴장 /최원열

'너 죽고 나 살자'는 아귀다툼의 시대에 이영표 은퇴를 보며 '우리'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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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올해도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 만산을 수놓았던 홍엽은 우수수 떨어졌고, 때이른 폭설 소식도 들려온다. 얼마후면 온 거리에 크리스마스 캐롤이 넘쳐흐를 것이고, 사람들은 한 해를 잊으려 이리저리 송년회에 뛰어다니겠지. 그렇다고는 하나 아직은 따스한 햇살이 남아 있다. 겨울로 넘어가기 직전 가을과의 짧은 공존이 아쉽기만 하다.

공존. 참 인간적이고 감성적인 단어다. 어우러진 삶은 푸근하기에. 하지만 나라를 보면 그렇지를 못하니 탄식만 나온다. 곪아터진 정치판을 도대체 어찌 해야할 것인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지금 대한민국에 정치가 있기나 한가. 여야 대표들을 보면 마치 꼭두각시 놀음이나 그림자 연극을 보는 듯하다. 무엇 하나 꼬인 실타래가 풀리는 게 없다. '누가 누가 못하나' 내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는 논리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맞서는 그 집착이 소름 끼친다.

너 죽고 나 살자를 일본 철학자 다카하시 데쓰야는 '희생의 시스템론'으로 설명한다. 이익은 내가 취하고 희생을 남에게 전가하는 매커니즘. 다수결을 따른다면서 소수의 차별을 정당화하는 시스템 말이다. 그 희생물로 원전이 밀집한 후쿠시마와 본토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도구인 오키나와를 들었다. 다카하시는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해 반드시 희생이 있어야만 유지되는 사회가 정상적이냐고 반문한다. 누가 희생될 것이냐는 게 아니라 희생의 시스템을 없애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군국주의가 청산되지 않은 까닭이 여기에 있다고 그는 봤다.

다카하시의 논지를 우리나라에 대입하면 단연 기장과 밀양이 꼽힐 것이다. 온 국민의 삶을 위해 두 지역은 원전과 초고압송전시설의 제물이 되었다. 공론의 장을 무시하고 무턱대고 덤벼드니 님비라는 저항에 부닥칠 수밖에 없을 터. 정치판 역시 마찬가지다. 대화는 없고 윽박지르고 밀어붙이기만 한다. 조금만 맘에 들지 않으면 국회를 거부하고 뛰쳐나간다. 한쪽에서는 앵무새처럼 민생을 되뇌기만 할 뿐 실제 하는 일이라고는 없고 팔짱만 끼고 있다. 나의 이익을 위해 상대를 쓰러뜨려야 한다는 희생의 시스템만 작동할 뿐이다.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에게 어디 한번 물어보자. 입법이 본업인 당신들이 12월 2일로 돼있는 새해 예산안 처리 법정기한을 제대로 지킨 적이 있는지를. 처벌규정이 없는데다 금배지 지키는 데 문제가 없다면야 법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겠지. '동물(폭력)'과 '식물(작동 불능)'을 오가면서 등골휘어지도록 고생하는 국민들로부터 세비를 받을 자격이 있나. 오죽했으면 헌법에 국회해산 규정이 없음을 한탄하는 소리가 나왔을까. 빈민과 서민들을 위해 눈물 훔치며 동분서주했던 제정구 의원 같은 이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지금 나라 안은 정치 공황에 빠져 있고, 밖으로는 방공식별구역을 둘러싼 초강대국들의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기 직전에 처해 있다. 하지만 국회를 비롯한 정치권은 오불관언이다. 오로지 나 살기 위한 묘수풀이에 올인한다. 국민들의 머리에 스팀이 끓어올라 터지기 직전이다.

그나마 증기를 빼주는 탈출구가 있어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아름다운 퇴장'이다. 얼마 전 현역에서 은퇴한 이영표 선수가 이렇게 말했다. 한국축구의 가장 큰 문제점이 수비 불안인데 그 중심에 내가 있었다고. 정정당당하게 받아들여야 할 패배 앞에서 비겁하게 변명한 적이 많았다며 사과했다. 좋은 축구선수보다 좋은 사람이 되어야한다는 명언도 남겼다. 가슴을 찡하게 한 퇴장이 아닌가.

고 채명신 장군도 그랬다. 한국전쟁과 월남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건만 화려하게 단장된 장군묘역을 거부하고 비석 하나 달랑 놓인 좁은 무덤을 택한 그가 자랑스럽다. 나만 살아 돌아왔다는 미안함, 동고동락한 전우들과 함께하겠다는 정신을 그는 죽어서 실천했다.

굳이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말하지 않더라도 버릴 때와 물러날 때, 그리고 내려놓을 때를 안다는 것, 아름다운 퇴장은 화려한 등장보다 훨씬 값지고 소중한 가치다. 내가 아닌 우리가 하나라는 신성한 이분법이기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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