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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윤 칼럼] 또 하나의 성역

친일·독재 미화한 교학사 한국사를 신성시하는 세력들

역사의 엄중함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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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홍원 국무총리가 국회에서 일제강점기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했는지, 진출했는지를 묻는 국회의원의 질문에 답변을 주저한 것은 경악스러운 일입니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을 학자들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니, 국민과 역사에 대한 모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명색이 일류대학 나와 그 어렵다는 사법고시까지 패스하고 온갖 요직을 거친 뒤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른 이가 일제의 침략 사실을 몰라서였겠습니까. 그가 우물쭈물 질문을 얼버무리려 했던 것은 일제의 '침략'을 '진출'로 기술한 게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였기 때문은 아니었을까요.

이처럼 상업 출판사가 낸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를 지켜내기 위해 비난을 감수하는 이유가 뭘까요. 친일에 면죄부를 주고 독재를 미화하려고 안달이 난 세력들이 그 교과서 뒤편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그들이 교학사 한국사를 마치 기독교인이 바이블 대하듯 하는 모습에서 '또 하나의 성역'을 봅니다. 교학사 한국사를 구하기 위해 이 나라 기득권층이 다 동원되다시피 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집권층과 자본가들, 이 땅의 거대한 기득권 세력들은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든 자신들의 어둡고 구린내 나는 과거를 감추고 싶겠지요. 아니 분칠하고 미화해서 권력과 자본뿐만 아니라 명예까지 대대손손 누리고 싶겠지요.

그들은 친일과 독재에 대한 노골적 미화로 지탄받는 교학사 교과서를 물타기 하려고 애꿎은 희생양을 만드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교과서가 역사의 어두운 부분만 기록했다느니, 좌편향이라느니, 얼토당토않은 이유를 들이대면서요. 교육부는 얼마 전 7종의 검인정 한국사 교과서에 대해 수정명령을 내렸습니다. '올바른 역사인식이 필요하다'며 친일과 독재에 대한 부정적 제목이나 서술을 긍정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압박했습니다. '이승만 독재'라는 소제목마저 못마땅해 빼라고 했다니 황당하기만 할 따름입니다. 심지어 그들은 이 판에 골치 아픈 검인정 교과서를 걷어치우고 국정 교과서를 만들자고 목청을 높입니다. 일제가 침략한 건지 진출한 건지 확신도 안 서는 총리가 앞장서 외치고 교육부 장관, 새누리당까지 가세했습니다. 국정 교과서를 만들어 역사를 기득권층의 입맛대로, 정권의 뜻대로 뜯어고치자는 심사가 아니고 뭔지요.

역사를 돌이켜 봅시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뒤에 친일파들은 정치적으로 득세하고 경제적 부를 독식하면서도 자신들의 잘못에 대한 반성이나 사죄 한 번 없었습니다. 프랑스 같은 나라는 부역세력에 대해서 가혹할 정도로 단죄하면서 과거사를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단죄 받아야 할 세력들이 오히려 권력을 잡고 떵떵거렸습니다.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온갖 호사를 누릴 때,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일신을 희생하며 일제와 싸웠던 독립투사와 그 후예들은 이름 석 자조차 건사하지 못한 채 끼니를 걱정하고 비바람 피할 곳을 찾아야 했습니다.

친일과 독재의 역사를 제대로 정리해 다시는 잘못된 전철을 밟지 말자고 한 게 과거사 정리입니다. 어렵사리 다시 세운 민족의 역사를 자학사관이라 폄훼하면서 오욕스러운 역사를 분칠하려 드니 이런 후안무치도 없습니다. 일본이 자신들의 침략 역사를 감추려 드는 것이나 우리 기득권 세력이 자신들이 저지른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려는 것은 하나 다를 바 없습니다. 권력을 잡고 자본을 탐닉했으면 됐지 거기에다가 명예까지 회복하겠다는 건 너무나 과한 욕심이 아닌지요. 또 그것이 용인되는 나라를 어떻게 정의롭고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는지요.

역사는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과거의 잘못을 감추고 미화하려 해도 친일파는 친일파이고 독재자는 독재자일 수밖에 없는 게 역사의 엄정함입니다. 민족시인 김남주의 '길'이란 시 중 일부를 인용해 봅니다. '넝마주이가 쓰레기를 긁어모으듯 그렇게 인간쓰레기들을 긁어모아- / 구식민지의 관료들, 친일매판자본가와 지주들, 식민지 군대의 장교들, / 애국투사들을 체포하고 고문하고 투옥하고 학살하기를 밥먹듯이 했던 / 특고 형사들, 헌병 보조원들, 주재소 순사들, 밀정들을 긁어모아- / 삼팔선 이남에 소위 '자유민주주의 정부'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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