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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GDP는 이데올로기다 /박무성

모든 경제지표는 현실의 반영이자 가치 지향적 척도

문제점이 더 많다면 대안을 찾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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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의 신작 장편소설 '정글만리'에는 중국의 두 억만장자가 잇속없이 개똥만 먹는 대목이 나온다. 서로 돈 자랑을 일삼던 코큰부자와 귀큰부자가 나란히 공원을 산책하고 있는데 금덩어리 같은 게 나타났다. 자세히 보니 개똥이었다. 코큰부자가 귀큰부자를 골탕 먹일 요량으로 내기를 걸었다. 개똥을 다 먹으면 1억 달러. 설마했는데 귀큰부자는 한치 망설임도 없이 먹어치웠다. 코큰부자는 쓰라린 속을 쓰다듬으며 1억 달러를 내놓았다.

비록 거금을 챙겼지만 귀큰부자 또한 조롱당한 느낌에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그 순간 개똥이 또 나타났다. 이번엔 귀큰부자가 복수할 심산에 똑같은 제안을 했다. 본전 생각이 굴뚝 같았던 코큰부자는 말끔히 먹어치우고 1억 달러를 되돌려 받았다. 둘이서 가만 생각하니 뭐가 잘못됐는지 개똥만 먹었지 아무 소득이 없었다. 저명한 경제학자를 찾아가 물었더니 답이 이랬다. "두 분은 이득이 아무것도 없이 손해만 본 것이 아니라 국가에 큰 기여를 한 애국자이십니다. GDP가 2억 달러나 늘어났으니까요."

중국 졸부의 행태를 희화화한 이야기지만, GDP(국내총생산)의 허구성을 이처럼 극명하게 드러내는 사례도 없지 싶다. GDP는 경제주체들이 창출한 부가가치를 합산한 것으로, 국내 외국인도 포함된다. 국가의 경제적 성과를 보여주는 지표로는 오랫동안 GNP(국민총생산)가 사용됐다. 하지만 1990년 들어 미국을 중심으로 GDP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던 때다. GDP는 세계화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국내 상품 생산에 따른 소득이 외국으로 흘러갈 경우 GNP는 감소하지만, GDP는 증가한다.

세계화 시대에 GDP를 신화처럼 신봉하는 데는 두 가지 가설이 전제돼 있다. 하나는 세계화가 진행되면 각국 GDP가 늘어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GDP가 증가하면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로 인해 모두가 이익을 본다는 것이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불평등의 대가'에서 이들 가설은 모두 틀렸다고 단언한다. 결국 이런 지표는 경제적 성과에 대해 그릇된 인상을 심어주고, 어떤 경제 시스템이 더 좋은지 대중이 잘못된 판단을 내리도록 유인한다는 것이다.

개인소득 수준을 나타내는 1인당 GDP는 총GDP를 인구 수로 나눈 것에 불과하나 희한한 구석이 많다. 이건희 회장과 정몽구 회장의 소득이 증가하면 한국인 평균소득도 쑥 올라간다. 중위 소득이 정체돼 있거나 감소해도 최상위층의 소득이 늘어나면 1인당 GDP는 상승한다. 의료보장이 미비해 개인 의료비 지출이 늘어나도 1인당 GDP는 늘어난다. 평균치의 함정이기도 하지만, 여기엔 의도치 않는 불순함이 개입된다. 양극화와 불평등의 심각성이 은폐 내지 왜곡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이런 모순을 극복하고자 다양한 대안 지표들이 제시되고 있다. 타이 국왕이 내놓은 '충족의 경제' 개념이나 부탄 국왕의 국민총행복지수(GNH) 등이 대표적이다. '지속 가능 경제 복리지수' 또는 '진정한 진보 지표(GPI)'도 눈여겨 볼 만하다. 이를테면 자연림을 벌목할 때 GDP는 베어낸 목재의 가치를 담는 것으로 그치는 반면 GPI는 벌목의 환경적 비용까지 계산하는 식이다.

2013년 1인당 국민소득이 2만4044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LG경제연구원은 추산했다. 지난해보다 5.9% 늘어 사상 최고 수준이다. 실제 경제가 성장한 측면도 있으나 환율효과에 의한 착시현상이 컸다. 여기서 1인당 국민소득은 국민총소득(GNI)을 인구 수로 나눈 것이다. 국내의 외국인 소득이 제외됐다는 게 다를 뿐 GDP와 대동소이하다. 국민소득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올해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하층'이라고 판단한 비율 또한 46.7%로 최고치를 보이는 것은 한국 민생경제의 역설적 현실이다.

GDP는 성장제일주의 시대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한다. 분명한 건 오로지 GDP 증가를 경제발전의 깃발로 좇는다면 국민 행복은 고사하고, 당면한 빈부 격차도, 사회적 불평등도 갈수록 악화되기 십상이라는 점이다. 경제적 성과가 본질이라면 그 지표는 상징이자 외피다. 안 맞는 옷은 고쳐 입거나 새로 사 입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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