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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저 낮은 곳을 향하여 /최원열

원칙은 고수하되 저 낮은 곳까지 모두를 포용하는 왕도정치 보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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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 캐럴송조차 울려 퍼지지 않는 희한한 성탄절을 보냈다. 아무리 저작권료 때문이라지만 영 마뜩잖다. 하기야 나라 꼴이 이러니 크리스마스 기분 내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았던 터이긴 하지만. 이제 올해도 마지막을 향해 치닫고 있다. 젊은이들이 새해 가장 듣고 싶은 말이 '잘 될거야'란다. 무엇 하나 제대로 굴러가지 않고 있는 우리 사회를 단적으로 표현한 게 아닐까 싶다.

연말을 맞아 교수들이 뽑은 올해의 사자성어가 '도행역시(倒行逆施)'였다. 순리를 거슬러 행동한다는 뜻이다. 불통의 국가 권력과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절묘하게 꼬집었다. 연초 묵은 것을 버리고 새것을 펼치기를 희망하면서 내건 제구포신(除舊布新)은 물거품이 된 지 오래다. 온통 뒤죽박죽에다 만신창이가 된 정국은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문제가 있는데도 귀를 닫고(護疾忌醫·호질기의), 거짓이 드러나 보이는데도 숨기기에 급급하다(藏頭露尾·장두노미)는 지나간 사자성어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지난해 정권 말기의 부정부패로 혼탁한 정국을 빗댄 거세개탁(擧世皆濁)은 바야흐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과거로 돌려놓는 퇴행성 중증으로 발전(?)하고 있는 중이다. 그야말로 자승자박이요, 자중지란이며 자포자기다. 감정적 자극과 불통이 판치면서 상식에 입각한 공감대는 설 땅을 잃었다. 보통사람과의 소통은 찾아볼 수 없다. 역사상 최악의 무기력한 여당과 야당에 정당이니 공당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조차 민망할 정도다.

그들에게 권력은 달디단 사탄의 유혹이다. 그러니 위만 바라볼 밖에. 여당 의원들은 하염없이 구중궁궐을 쳐다본다. 흘러간 옛노래 '그대여, 떠나가나요. 나 같은 건 없는 건가요…다시 또 볼 수 없나요'를 구슬프게 부르며. 대통령 소장품 경매에 눈도장을 찍기 위해 득달같이 달려든다. 국민들로부터 외면받은 야당도 이에 못지 않다. 자신을 뽑아준 지역구는 내팽개친 채 오직 '어게인 2017'을 위해 마이웨이를 부른다. 이들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다. 저 높은 곳을 향해 폭주기관차처럼 달리는 것.

열역학 법칙을 알고 있을 것이다. 제1법칙이 에너지 총량 불변이라면 제2법칙은 그 방향성에 관한 것이다. 열, 즉 에너지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만 향한다는. 이를 거스를 수는 없다. 자연의 이치가 그렇다. 하지만 능력있는 우리 정치판은 이를 정면으로 뒤엎는다. 민생을 외치지만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겉발림에 불과할 뿐, 그들의 머리에는 낮은 곳이 자리할 틈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알아야 한다. 왜 '말이안통하네뜨'라는 별칭을 얻게 됐는지. 대통령이 천명한 법과 원칙은 명백히 옳다. 법치가 이뤄지지 않는 사회에서 성숙한 민주주의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법론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 모성리더십도 필요할 때가 있는 법이다. 뚝심으로 밀어붙인 대처나 레이건 같은 과거 지도자들을 모방만 해서는 국민 대통합을 이루기 힘들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키워드가 창조 경제다. 그렇다면 걸맞은 창조 정치도 있어야 한다. 원칙에는 변함이 없으되 입과 귀를 여는 부드러움을 보여주는 것, 그게 열린 정치가 아닐까. 그런 점에서 올해를 장식한 거인 두 분이 떠오른다. 바로 프란치스코 교황과 고 만델라 전 대통령이다.

강하되 겸손과 사랑, 그리고 온유함으로 가득찬 따뜻한 영웅. 오랜 세월 감옥에서 인고의 나날을 보냈던 만델라가 출소하면서 복수가 아닌 관용과 포용의 자세로 모든 이를 감싼 그 지고한 정신. 그리고 "나는 여기 여러분 앞에 선지자가 아니라 천한 종으로 서있다"는 가슴 뭉클한 말. 무슬림 소녀의 발등에 입을 맞춘 교황은 또 어떤가. 생일에 노숙인들과 반려견을 초대한 한없이 낮은 자세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시대 정신을 읽는다.

낮은 곳을 향하는 지도자의 모습이 이런 것이다.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상대를 증오하지 않아야 하며, 진정으로 화해하려는 모든 이들의 열정이 하나로 뭉쳐야 한다는 교황의 절규를 깊이 새겨 들어야 한다. 잊혀진 희망으로 인해 안녕하지 못하는 저 낮은 곳의 삶 속으로 전부를 던지는 일, 그게 왕도의 정치임을 왜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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