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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과잉국가와 과잉입법의 나라 대한민국 /장제국

국가권력의 남용, 즉흥적인 입법 사라져야 비정상의 정상화 가능해질 것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4-02-17 19:28:54
  •  |   본지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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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종말'이라는 책의 저자로 유명한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최근 '정치질서의 기원 (The Origins of Political Order)'이라는 신간을 내놓았다. 그는 각기 다른 세 개의 제도가 통합돼 가면서 근대 자유민주주의의 기초가 성립되었다고 했다. 먼저 '국가'라는 제도다. 국가는 권력을 통합하고 영역 내에서 그 집행을 가능케 한다고 했다. 두 번째는 '법의 지배'인데 권력이 법에 의해 정당화되고 권력행사의 예견을 가능하게 하고, 세 번째는 '민주적 설명책임'으로 국가권력이 지배자들의 편협한 이익이 아닌 공동체 전체의 이익이 추구될 수 있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세 제도 간의 균형이 잘 이루어질 때 비로소 통치를 위한 권력은 남용되지 않고 광범위한 공공이익의 실현이 가능해진다고 지적했다. 물론 후쿠야마의 이러한 분석에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직면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혼란 상황을 설명하는 데는 상당히 유용하다고 하겠다.

해방 후 우리나라 역대 정부는 '국가'라는 개념을 가장 우선시하는 통치 형태를 취해 왔다. 남북 대치의 극한 안보상황과 극빈의 경제상태는 위정자들로 하여금 국가 생존을 최우선 과제로 삼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의 강조는 곧 국민 개개인에게 부여된 자연권에 대한 무시와 제한을 의미했다. 또한 경제발전 우선정책은 국가경제개발계획을 수립하게 했고,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필연적 시장왜곡 문제는 별로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국민들에게 애국심을 호소해 재벌이 쏟아내는 제품을 무조건 사야만 했던 시절도 있었다. 힘의 시장지배로 인해 사라져가야만 했던 무수한 영세기업과 소상인들의 절규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다. '국가'의 강조는 곧 집권자의 '자의적' 법 해석과 집행으로 이어져 '법의 지배'를 어렵게 했다.

이러한 억압과 희생에 대한 반동이 민주화 운동을 촉발시켰다. 그러나 민주화가 이루어진 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과잉의 '국가'가 남아 있고, '법'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다. 남용되는 권력은 반드시 거쳐야할 '민주적 설명' 절차를 무시하고, 오직 포퓰리즘에 기초한 과잉 '입법'을 양산하고 있다.

예컨대, 최근 우리를 경악하게 한 금융기관의 주민번호를 포함한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본질은 과잉 국가주의이다. 사실 세계 어느 선진국에 가도 태어나자마자 모든 국민에게 번호를 부여하는 나라는 없다. 주민번호제도 도입은 국가안보라는 국가적 측면만을 강조해 만들어진 경위가 있다. 그러다 보니, 개인이 누려야 할 프라이버시에 대한 권리는 철저히 무시되는 것이다. 이제 와서 정치권에서는 대체번호를 부여하는 등 새로운 정책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 미봉적 조치로는 부족하다. 차제에 주민번호제도를 폐지해야 한다. 주민번호만 알면 모든 국민의 일거수 일투족을 알 수 있는 국가과잉 현상은 이제 과감히 접을 때가 된 것이다.

법의 지배 체제도 좀 더 견고히 해야 권력자들에 의한 남용을 막을 수 있고,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공권력에 대한 도전도 종식시킬 수 있다. 권력이란 국민에 의해 위임된 범위 내에서만 행사하게 되어있다. 그게 지켜져야 권력행사에 대한 정당성이 인정되고, 공권력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이 우리 사회에서 설 땅을 잃게 되는 것이다. 지난해 말 홍역을 치른 철도파업 사태는 법의 지배에 대한 불신의 산물이었다고 볼 수 있다. 요즈음 포퓰리즘이 판을 치고 있다. 당장의 여론이 전부인 양 정부와 국회는 호들갑을 떨고 있다. 국가 백년대계는 안중에도 없다. 정책입안에 당연히 필요한 민주적 '설명책임' 과정은 없어진 지 오래고, 오직 여론만 중시한 즉흥적 입법이 크게 늘고 있다. 19대 국회 들어 규제법안이 무려 716개나 통과되었다고 한다. 한국에만 있는 규제도 34건에 이른다고 한다. 이른바 '입법 과잉'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설명책임'을 거치지 않은 법 때문에 심각한 피해를 보는 여론 비주류층은 항변할 곳조차 없다.

대한민국이 진정으로 선진 민주국가가 되려면 이제 국가과잉을 과감히 줄이고, 법의 지배를 공고히 하면서, 사회 전체를 아우르고 국가 백년대계의 '설명'이 가능한 '입법'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비정상의 정상화'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동서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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