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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메디클럽

[시론] 여행은 자신의 잣대를 깨는 것 /이홍종

일본열도 불황에도 굴뚝산업 건실한 건 시공 초월 장인정신 살아있기 때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4-02-23 19:19:53
  •  |   본지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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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에게 직장은 '삶의 터전'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지난 1월 말 찾은 일본 북해도는 대만 관광객의 세상이었다. 눈다운 눈이 오지 않는 부산에서 눈 구경하러 간 우리 부부처럼 대만에서도 복장을 제대로 갖춰 북해도로 몰려 온 것이다. 그동안 일본을 여러 번 방문했지만 이제까지는 학교나 학회 일로 갔기 때문에 일본 호텔이나 식당도 관광객을 위해서는 대규모 시설이 많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약 상자에 없는 치료제가 여행이다'라는 말도 있지만, 이번 북해도 여행에선 '여행이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잣대가 깨지는 것이다'라는 말을 다시금 절감했다. 새롭게 안 사실은 일본에서는 그렇게 많은 눈을 치우기 위해 염화칼슘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설제로 염화칼슘을 사용하면 자동차 하체가 부식되고, 도로가 파손되는 등 환경보호 차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문화적 충격'이라고 할 만한 새로운 경험은 일본 장인정신의 재발견이었다. 니카(NIKKA) 위스키의 북해도 요이치 증류소 방문에서였다. 요이치 증류소는 일본에서 위스키의 아버지로 불리는 타케츠루 마사타카(1894~1979)에 의해 설립되었다. 타케츠루는 일본인 최초로 스코틀랜드의 위스키 제조법을 배워 일본에 가지고 온 인물이다. 그는 1918년 스코틀랜드로 유학하기 위해 홀로 여행을 떠났다. 당시 위스키 제조법은 외부에 알려주지 않는 비밀이었기 때문에 동양에서 온 청년에게 쉽게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정열로 그곳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마침내 위스키 제조법을 익힐 수 있었다.

타케츠루의 유학생활에 정신적인 힘이 되어 준 여성이 있었다. 제시 로베르타 카운(애칭 리타)이었다. 리타는 스코틀랜드의 엄격한 가문 출신이었으나 국적의 장벽을 초월해 위스키 제조에 몰입하는 타케츠루의 열정적인 태도에 매료되었고, '일본에서 본 고장의 진짜 위스키를 만들자'는 타케츠루의 꿈은 곧 두 사람의 꿈이 되었다. 두 사람은 결혼하여 본 고장의 위스키 제조를 한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일본으로 왔다.

타케츠루가 자신의 이상이라고 꿈꿔온 위스키를 만들기 위해 선택한 곳이 북해도의 요이치였다. 차갑고 서늘한 공기, 맑은 물, 그리고 안개가 자욱이 서리는 요이치는 위스키 제조에 필요한 모든 조건을 갖춘 곳이었다. 1934년 요이치에 첫 번째의 증류소가 만들어졌고 지금도 타케츠루의 증류소는 일본 최고의 증류소로서 드라마틱하게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니카에서는 창업 이래 변함없는 전통적인 위스키 제조 방법을 지켜가고 있다. 타케츠루가 위스키 제조에 바친 정열은 니카에서 모든 사람에게 면면히 계승되고 있다.

일본의 장인정신이라면 또 생각나는 것은 몇 년 전 동경대 영문과 여교수에게서 받은 저녁 대접이다. 부산 자갈치에서 우리가 해 준 보답으로 안내해 준 곳은 튀김과 모리소바(메밀국수)를 파는 식당이었다. 먼저 놀란 것은 튀김 하나하나, 새우 오징어 감자 등 모두 따로따로 가격이 매겨지는 것이었다. 물론 엄청 비쌌고. 그리고 유리로 보이는 부엌 안에서 주방장이 정성 들여 메밀국수를 만드는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나는 일본 문화가 재미있다'를 쓴 김지룡에 의하면 장인정신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일본을 통일한 후 전국시대를 꿰뚫어 왔던 외연적 팽창 에너지를 내연적인 깊이로 치환한 정책에서 비롯되었다. 이때부터 사농공상(士農工商)의 기존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하고 직업의 귀천이 약해졌다. '이런 정신이 음악과 영화, 애니메이션 등을 단지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깊게 연구하는 태도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이다'라고 일본의 장인정신이 현대에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일본이 경제대국과 기술대국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에도시대에 형성된 상인정신과 장인정신이 자리 잡고 있다. 일본열도 전체가 불경기에 허우적거리고 있는데도 제조업 분야, 이른바 굴뚝산업이 건실할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시공을 초월한 장인정신이 살아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인들에게는 직업의 귀천이란 있을 수 없고, 자기의 직장을 천직으로 알며 맡은 일에 충실하다. 그뿐만 아니라 일본인들은 회사 또는 동료의 흉을 보는 것 또한 자기의 수양이 부족함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라 해서 이를 삼간다. 일본인들에게 직장은 이런 의미인 것이다.

부경대 국제지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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