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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공존의 그늘, 노년 /최원열

짐짝 취급받는 노년…위정자들 뒷짐만 져

탈시설·홈케어시스템, 일일 양로원 도입 등 선진국형 대안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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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만화 한 편을 보고 어린애처럼 펑펑 울었다. 이 땅의 고단한 어르신들이 너무나 애처러웠다. 소풍이라는 역설적인 제목은 소리없이 다가오는 무서운 재앙의 예고편이었다. 여느 즐거운 외출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세상과 이별해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에 눈물 흘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한 가장이 있었다. 암 투병 중인 아내 수발에 자녀 대학등록금 대기도 빠듯한 택시기사였던 그는 치매에 걸린 노모까지 모셔야 했다. 그래서 어머니를 요양시설에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꾀병을 부리고 증상이 심한 척해서 입소 등급을 받아야 한다고 단단히 일러뒀다. 하지만 노모는 자식 뜻대로 하지 않았다. 한숨만 푹푹 내쉬는 아들. 그게 아닌데. 자식과 떨어지기 싫어서 그랬는데.

노모는 어릴 적 꿈을 꾼다. 빨래터에서 다친 자신을 꼭 껴안은 어머니가 하신 말씀. "시상 천지에 니랑 내랑 둘 뿐인데. 니를 앞세우고 내가 우예 살끼고." 노모는 결심했다. 소풍을 떠나기로. 자식 시름을 덜어주기로. 곱게 분단장을 한 뒤 짐짓 치매 환자티를 내면서 아들에게 바깥나들이를 재촉한다. 강변 공원에서 먹을 것을 청해 아들이 자리를 뜬 사이 돌을 가득 넣은 보따리를 품에 안은 채 물에 뛰어든다. 노모의 독백이 심금을 울린다. 마른 잎처럼 시들어가는 내 새끼야, 너로 인해 내 인생은 온통 꽃밭이었는데….

도대체 누가 죄인인가. 아들에게 돌을 던질 수는 없다. 노모도 모자의 정이 그리웠을 뿐이다. 인륜과 천륜을 저버린 게 아니질 않나. 그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사회와 우리 모두가 책임질 일은 아닌지. 그 삭막한 풍경에 가슴이 아리고 숨이 막히는 듯하다. '마지막 집세'와 '화장비'를 남겨둔 채 불쌍한 노인들은 그렇게 하나둘 사라져 간다. 지금 '마지막 집세' 대기자들이 줄을 서 있다.

'거울 속의 늙은 여자는 울고 있었다. 아무리 웃기려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그래도 거울 속의 여자쯤은 마음대로 될 수 있으려니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고 박완서 선생의 단편소설 '황혼'에 나오는 내용이다. 며느리로부터 어머니 대신 늙은 여자로 불리는, 쓸모없는 짐짝 취급을 당하는 노년, 한국사회의 세대 간 갈등을 다뤘다. 30여 년 전에 '공존의 그늘'을 그려낸 선견지명이 놀랍다.

정녕 젊은 세대와 노년은 공존하기 힘든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미래는 없다.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고, 꼬부랑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는 게 자연의 이치기에. 그걸 거스른다면 인류는 만물의 영장이라 내세울 자격도, 행성 지구에 터전을 잡고 살 의미도 상실할 것이다.

드잡이질에만 열중하는 우리 정치판을 보노라니 분통이 치민다. 한시가 급하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숱한 노인들이 '소풍'을 떠날 참인데 말이다. 결국 기초연금법안 처리가 무산됐다. 정치인들에게 기초연금은 단지 선거용 전략에 지나지 않은 듯하다. '내 탓이오'는 찾아볼 수 없고 '네 탓' 선전에 바쁘다. 오는 7월부터 지급하려던 계획도 물거품이 됐다. 노년층의 절박함은 아예 관심도 없다. 그런 엉터리 정치판은 준엄한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유럽노인 엑소더스가 벌어지고 있는 태국 치앙마이를 보라. 독일에서, 스위스에서 요양시설에 들어갈 여유가 없는 치매 환자들이 몰려와 북새통을 이룬다. 후진국에 쓰레기 처리를 맡기듯 노인과 장애인들을 해외로 내보낸다는 비난이 쏟아진다. 독일에서만 이렇게 내쫓기다시피 해외 이주한 노인이 40만 명에 이른다. 고향에서 정부 지원만으로 요양시설에 들어가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그 돈으로 태국에 가면 24시간 간병인 3명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황혼 자살 공화국 대한민국도 오명을 뒤집어쓰는 건 시간문제다.

시간이 없다. 공존의 그늘을 걷어내기 위한 조치에 서둘러 나서야 한다. 기초연금 못지 않게 중요한 게 현장의 보살핌이다. 제도가 있어도 모르거나 혜택을 받지 못한다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인식을 했다면 노년층이 고통받는 현장으로 뛰어들어가 도와줘야 한다.

정부에 간곡히 권한다. 어린이를 위한 어린이집이 있듯이, 노인들에게도 상응한 시설을 지원하라. 예컨대 일일양로원 같은 것이다. 치매 환자는 물론이고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온종일 돌봐주고 놀이와 교육, 치료도 해주는 원스톱 서비스가 이뤄져야 한다. 부양 가정이나 본인 부담을 줄이도록 염가로 제공되어야 하고, 빈곤층에 대한 무료 서비스도 필요하다.

미국의 '비컨힐 빌리지'처럼 탈시설, 홈케어시스템도 적극 검토할 시점이 됐다. 노후를 정든 집에서 도우미서비스를 받으며 편안하게 보낼 수 있도록 마을공동체가 팔을 걷고 나선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연금 지급과 현장 돌봄이 동시에 이뤄져야 공존의 그늘을 지울 수 있다. 편안하고 행복한 노후가 공존에 득이 된다는 점을 깨닫는다면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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