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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통일, 쪽박론과 대박론 /박무성

'드레스덴 구상'처럼 통일매진 바람직하나

상호 신뢰 부족하면 위험한 이벤트에 그쳐…차분한 논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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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졸지에 무장해제돼 실직자로 전락한 120만 명의 인민군은 폭력조직에 가담하거나 주민등록조차 누락된 '대포 인간'으로 부랑자처럼 떠돈다. 북한제 총기는 돈 몇 푼만 주면 손쉽게 구할 수 있고, 신종마약은 길거리 노점상에 지천으로 널려 있다. 노동당 고위간부의 딸 같은 북한 출신 엘리트 여성들은 룸살롱 접대부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에만 20여 개의 통일급식소가 운영되고, 전국에는 60곳이 넘는 할렘이 생겨났다. 치안마저 무너진 채 폭력과 마약, 섹스가 난무하는 도시….

이응준 씨의 장편소설 '국가의 사생활'에 나오는 통일한국의 서울 풍경이다. 소설에선 2011년 5월 9일 오후 4시 한반도에 '청천벽력'같이 통일이 찾아온다. 그리고 5년 뒤 한국은 인민군 출신 조폭들의 준동과 통제불능 상태가 된 미회수 무기들로 인해 살인 납치 등 강력범죄가 기승을 부린다. 가뜩이나 무능한 관료와 무력한 경찰은 부패로 곪아간다. 소설은 흡수 통일의 사회상을 무척 암울하게 그렸다. 한 편의 숨가쁜 누아르 영화나 음산한 묵시록을 보는 듯하지만, 작가의 상상력을 즐기기엔 너무 위험했다. 2009년 출간 당시 기자는 작가의 의도와 무관하게 자칫 반통일세력의 이데올로기로 읽힐 수 있다고 서평을 썼던 기억이 난다.

2014년 3월, 소설과 달리 현실에선 아직 통일이 찾아오지 않았으나 요즘 사회 분위기는 벌써 통일이 된 듯한, 늦어도 수년 내에는 통일이 될 듯한 착각을 갖게 한다. 분단 이후 여태껏 냉전과 반통일 논리에 목을 매왔던 한국의 대표적 보수언론이 새해 벽두부터 별안간 통일론을 들고 나와 당혹케 만들더니,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기자회견에서 '통일 대박론'을 꺼냈다. 이어 박 대통령은 지난 28일 독일 순방 길에서 오래 준비했음직한 '드레스덴 통일 구상'을 발표했다. 5박7일간의 네덜란드 독일 방문은 통일 대박론의 국내 선포 후속으로 국제사회에서 동의와 지지를 확인하는 외교적 절차였던 셈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 대통령으로서 통일 문제에 매진하는 것은 지당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이번 통일 구상의 수용 여부 열쇠는 여전히 북한이 쥐고 있다는 점을 들어 구체적인 실현 가능성 따위를 따지는 건 일단 접어두자. '통일 대박'이라는 표현이 대통령의 언사로서, 한반도의 미래가 달린 통일 방침의 표제로서 적절한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통일을 남북시장 규모 확대에 주목하는 경제 우위의 접근법도 굳이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반통일의 현실적 근거로 제기되던 천문학적 규모의 통일비용을 일종의 투자로 여기고 그 효과에 주목하는 것 역시 발상의 전환으로, 오히려 환영할 만한 일이다.

다만 이런 관점은 대기업 총수나 기업인의 것이어야 마땅하다. 만약 박 대통령의 통일을 바라보는 안목이 이와 다를 바 없다면 문제는 심각하다. 통일 대박으로 압축되는 시장통합 효과는 통일 후 전개될 많고 많은 국면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통일을 경제 요소의 투입과 산출로 완성하려는 발상은 국가 지도자의 자세로는 적합하지 않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동서독의 통일도 대박'이었다며 박 대통령의 통일론에 장단을 맞췄지만, 정작 그가 강조한 것은 '다른 삶을 산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조언이 아니었던가.
당대를 사는 우리에게 찾아오는 통일은 그야말로 천지개벽일 게다. 메르켈 총리도 통일이 되면 '모든 상황이 바뀌게 된다'고 했다. 독일은 분단 40년 만에 통일을 이뤘지만, 남북은 70년 가까이 갈라져 있다. 3세대가 지난 지금 생활방식은 물론 생각의 틀도 다르다. 더욱이 남북의 경제적 격차는 1990년 동서독의 간극보다 몇 배 더 크다. 독일에서 눈여겨 봐야 할 것은 동독 붕괴의 상징적 유적으로 남아 있는 브란덴부르크 문이나 통일에서 나아가 사회 전반의 통합까지 이뤄 낸 오늘날의 발전상이 아니라, 분단 40년과 통일 후 25년간 분열되고 갈등했던 그들의 지난한 시간들이다. 서독과 동독 국민들이 어떻게 상대를 인정하고, 어떻게 신뢰를 쌓고, 어떻게 하나로 합해질 수 있었는지를 배워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보수와 진보가 유일하게 교집합으로 공유하는 부분이 '통일'이라고 한 지적은 적확하다. 통일은 불현듯 닥쳐올지 모르기에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는 주장에도 공감한다. 하지만 북한 체제의 궤멸을 전제하는 통일 대박론은 기실 근거도 희박하거니와 통일한국을 디스토피아로 보는 '통일 쪽박론'처럼 미숙하고 위험하기는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의 대북 3대 제안에는 '선언'만 있을 뿐 정작 기아국가건, 핵보유국이건 여실한 실체로 바라보는 북한이라는 상대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통일 논의가 정치적 이벤트로 동원되는 건 결국 박 대통령에게도 부메랑이 될 수밖에 없다. 단언컨대 통일은 쪽박도 아니지만, 대박도 아닐 것이다. 차분하고 진지한 통일 담론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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