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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그럼에도 일상은 계속돼야 한다 /박무성

살아있는 자들은 이제 눈물을 닦고 '세월'을 이겨내야

원칙과 기본, 배려…리더십도 복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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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열흘째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분노는 갈수록 커져가고, 절망은 깊다. 그 절망의 바다 밑에는 아직도 100명이 넘는 아이들이 갇혀 있다. "정부가 다 구해줄 거라 믿었는데…. 이제 살아 있을 거라 생각 안 해요. 하루라도 빨리 시신을 찾아야지요." 아직도 아이를 찾지 못한 아버지의 비탄이 가슴을 때린다. 세상이 무너진 희생자 가족들에게 그 어떤 말이 위안이 될까. 사고를 지켜보면서 속절없이 흐르는 눈물도 사치스러운 것을. 이 비극이 언제 끝날지 그저 먹먹할 뿐이다.

지난 수십 년간 우리는 숱한 참사를 겪었다. 1993년 서해훼리호 침몰사고로 292명이 목숨을 잃었고, 2년 뒤 삼풍백화점 붕괴 땐 무려 502명이 희생됐다. 2003년 대구지하철 화재는 192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하인리히의 법칙을 들먹일 것도 없이 사고 이전에 숱하게 반복된 크고 작은 경고와 징후가 있었다. 이를 무시한 인명경시 풍조에다 위기관리 시스템의 붕괴는 그대로 판박이다. 하지만 이번 세월호 참사의 충격은 온 국민을 짓누른다. 사망·실종자 대다수가 10대 고등학생들이기 때문일 테다. 수백 명의 아이들이 이처럼 희생되는 사고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물다.

온 국민이 이렇게 똑같은 심정으로 안타까워 하고, 미안해 하고, 슬퍼하고, 분노한 적이 있었을까. 온 나라가 눈물에 젖어 있다. 언제쯤 일상을 회복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세월호 참사가 안긴 상처는 세월이 흐른다고 쉽게 아물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가면 웬만큼 슬픔도 씻어주겠지만, 마냥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많은 이들이 '어른인 것이 부끄럽다'고 했다. 미안하다고 했다. 그저 말치레가 아니라면 정말 어른다워져야 한다.

3000명 넘게 숨진 미국 9·11테러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은 사건 발생 일주일째 되는 날 국민담화를 발표했다. 국민적 충격과 상처가 아무리 클지라도 '일상은 계속돼야 한다'는 것이 골자였다. 미국의 대통령은 살아있는 자들의 책무를 이야기했다. 9·11은 외부의 공격에 의한 사건이었지만, 세월호 침몰은 오로지 부실한 위기관리 시스템과 뒤틀린 사회풍토와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구조에서 비롯됐다. 그 책임으로부터 어느 누가 자유롭다고 할 수 있겠는가. 살아있는 자들의 책무가 엄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 그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미국의 안보의식은 9·11 이전과 이후로 뚜렷하게 나눠진다. 그렇듯 안전에 관한 한 우리의 의식과 태도는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로 구분되게끔 해야 한다. 위기관리 시스템이나 매뉴얼 완비를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매뉴얼은 지금도 3200개가 넘는다고 한다. 먼지 쌓인 캐비넷 안에서 작동하지 않는 게 문제다. 위기상황에서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하게 만드는 추동력은 개개인의 몸에 밴 원칙과 기본이다. 답답하리만치 원칙과 기본에 충실하는 자세가 우리가 복원해야 하는 첫 번째 과제다.

원칙과 기본을 최우선에 두는 가치관의 회복이 사고 방지책이라면 인간에 대한 배려는 동시에 치유책이 될 것이다.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있는 진도에서 고위 공직자들이 보인 추태나 정치인 아들의 망발, 사이버 공간에서 나대는 장난질 따위는 인간에 대한 배려가 없기 때문이다. 생명을 그 자체로 존엄시하지 않는 사회에서 후진국형 대형사고의 위험은 상존할 수밖에 없다.

리더십의 복원도 시급하다. 어디든 리더는 많지만 진정한 리더십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호 선장은 승객들을 버리고 가장 먼저 탈출했다. 그 순간 캡틴의 리더십도 함께 침몰했다. 사고 이튿날 현장을 방문한 대통령은 철저한 원인규명과 함께 책임자 엄벌을 강조했다. 국가적 위난 앞에 최고 통치자의 리더십보다는 심판자의 단호함만 남았고, 사고수습의 책임자들은 여전히 허둥댔다.

책임자들의 리더십이 실종된 현장에는 오히려 작은 영웅들이 있었다. 승객 안내담당 승무원 박지영 씨는 선장과 승무원들이 앞다퉈 탈출하는 와중에 침몰선에 끝까지 남아 승객들을 구조했다. 선실 비상구에서 제자들에게 일일이 구명조끼를 던져주며 아이들을 대피시키던 단원고 남윤철 교사. 그는 가까스로 갑판 위에까지 올라왔다가 제자들을 구해야 한다며 선실로 되돌아갔다. 자신의 역할에 헌신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 이들이 희망의 불씨를 남겼다.

지금 청와대가 할 일은 국민들이 일상을 회복하도록 돕는 일이다. 국가안보실장이라는 사람이 나서 책임론을 따지고 있을 국면이 아니다. 과연 정부는 있는 것인지, 리더가 이끄는 대로 따라야 하는 것인지…. 비록 세월호 참사는 냉소적인 교훈들을 남겼지만,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진부한 진리를 새삼 깨닫게 한다. 슬픔도 이겨야 승화시킬 수 있는 법이다. 이제 눈물을 닦고 일상에 충실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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