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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국민에게는 의무 다하라면서 /최원열

국민 생명 팽개쳐버린 대한민국 일으키려면

공정과 청렴함 흐리는 공직자 나쁜습관 바꿔 믿음과 신뢰 회복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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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의 악몽이 떠오른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린 천사들이 화마에 희생된 씨랜드 참사. 병아리 같은 아이들이 불길을 피해 한쪽 구석으로 몰려있다 숨진 현장을 보면서 가슴이 찢어졌더랬다. 딸을 잃은 한 어머니가 절규하며 쓴 글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아이야, 여섯살이잖니/두 손으로 셈하기에도/네 개나 남은 나이인데…셈 놀이도 끝나지 않았는데/하루만 잔다더니/아직 그곳에서/ 놀고 있니…아이야 오늘도 이 엄마는/너를 안았던 가슴이 너무 허전해/너를 부르며 피를 토한다/보고싶은 아이야/귀여운 우리 아가야'.

눈물 없이는 도저히 대할 수 없다. 어린 자식을 저 세상으로 보낸 부모의 비통한 심정이 절절이 묻어난다. 김순덕. 전 여자하키 국가대표. 그가 아이를 잃고 대한민국을 떠났다. "누구든지 그 속에 있을 수 있다"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미련없이 고개를 돌렸다. 소중하게 간직했던 훈장들도 그에겐 의미가 없어졌기에 반납했다. 나라에 대한 믿음이 사라진 한 소시민의 저항이었다. 아이한테 해 준 게 하나도 없어서, 해줄 수 있는 힘이 없어서 그랬단다.

어쩌면 그때와 이렇게 판박이일까. 나 혼자 살겠다고 도망친 세월호 선장이나 당시 겁에 질린 아이들이 도와달라고 외쳤는데도 옆방에서 고기를 구워먹으며 회식하던 유치원 교사들이 무에 다를까.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그동안 도대체 뭘 했단 말인가. 안전불감증이니 부패커넥션 같은 단어들은 꺼내기도 싫다.

생명력이 참으로 끈질기다. '관피아' 불사의 법칙이라도 있는 걸까. 그 기나긴 세월에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도 꿋꿋이 변화의 바람에 맞서며 버티는 힘이 놀랍다. 시계가 씨랜드 참사 당시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한 네티즌이 탄식했다. 임진왜란 때는 왕이 도성을 버린 채 줄행랑쳤고, 한국전쟁 때는 지도부가 한강다리 끊고 도망치더니 이번엔 승객 생명을 책임져야 할 선장이 제일 먼저 내뺐다고. 어디 선장뿐이랴. 무능한 정부, 국민을 외면한 정부, 도덕적 해이에 푹 빠진 정부가 더 밉다.

국민한텐 의무 다하라면서 나라가 국민 생명 지켜주는 의무는 왜 다하지 않느냐는 유족들의 절규가 귓전을 때린다. 그렇다. 구조율이 100년 전 타이타닉호 수준밖에 안 되는 그런 나라에 살고 있으니 당연하질 않나. 그래도 타이타닉호 선장은 마지막 순간까지 배에 남아 질서를 잡았다. "Be British." 영국인답게 처신하라는 준엄한 질타에 여성과 어린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Be Korean"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생각만 해도 답답하고 부끄럽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진다는 말도 있지만 홍수가 철철 넘쳐 대지가 온통 잠길 지경이다.

저출산이 어떻고 하면서 아이를 많이 낳으라고 난리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를 보라. 낳으면 뭣하나, 지켜주지도 못하면서. 충격과 슬픔, 절망과 분노가 온 나라를 감싼다. 서러움과 노여움, 부러움, 두려움 그리고 사랑은 마음껏 표현해야 할 자연스러운 감정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억눌리면서 우울과 분노, 질투, 공포 그리고 소유욕으로 변질되면 정의와 양심은 사라지고 만다.

마하트마 간디가 말했다. 원칙 없는 정치와 땀 흘리지 않는 부자들, 도덕성을 상실한 쾌락과 비인간적 교육, 황금만능주의 경제와 과학, 희생을 모르는 종교가 넘쳐나는 게 망국의 징조라고. 우리가 맞딱뜨리고 있는 현실과 흡사하질 않나. 누란의 위기다. 이러다간 나라 전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 어떻게 세운 대한민국인데. 썩어 무너지게 놔둘 순 없다.

해법은 단 한 가지. 민본(民本)으로 돌아가는 길뿐이다. 나라에 기강이 바로 서야 국민이 따른다. 하지만 국민이 진정 주인이 되는 세상을 만드는 건 어렵고도 힘들다. 민생을 보듬어야 할 공직사회가 공렴(公廉) 정신을 갖지 않으면 출발조차 할 수 없다. 공정과 청렴함을 흐리게 하는 건 무수히 많을 터. 새해가 되면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단어가 작심삼일인데, 이게 문제다. 우리의 뇌는 끊임없이 생각의 집을 짓고 부수기를 반복하지만, 육체적 심리적으로 편안히 지내려고 한다. 나쁜 습관이라는 부정적인 기능이 무의식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야지,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하고 마음 먹지만 오래 가지 못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돈에 물들고 도덕성을 잃은 관피아가 척결되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을 살리려면 그 습관을 뿌리뽑아야 한다. 무의식에 공렴 정신을 각인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반복할 때 무의식이 활성화되어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국가안전처니 뭐니 해서 조직을 만들어봤자 수박 겉핥기에 지나지 않는다. 공직사회가 습관을 바꿀 때 국민들로부터 믿음을 얻을 수 있다. 작심삼일을 깨는 그게 진정한 진화이자 민본을 향한 길이다. 명예는 밖에 나타난 양심이며, 양심은 안에 잠기는 명예라는 쇼펜하우어의 명언을 잊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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