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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기다려라' 소송과 법치 /최원열

유족·희생자 위해서 법 비웃는 유병언 찾아 책임소재 규명해내야

생명·인격 수단 될 때 '세월호'는 또 벌어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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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불감증, 그리고 극단적인 도덕적 해이. '세월호 증후군'이 지구촌을 전염병처럼 휩쓸고 있다. 세월호 참사에 이어 방글라데시 여객선 침몰 사고와 터키 탄광 매몰 참사가 연이어 터졌다. 세계인들은 그 안타깝고 처절한 광경에 몸서리쳤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미 콜롬비아판 '세월호'가 지구촌을 울음바다로 내몰았다. 단지 악명 높은 주인공이 선장에서 운전기사로 바뀌었을 뿐, 세월호 판박이였다.

예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어린이 31명과 어른 1명이 버스 화재로 숨진 참극이었다. 연료를 넣다 불이 붙자 운전기사는 "물을 가지러 간다"면서 나만 살자고 냅다 줄행랑쳤다. 비상문도 없는 버스에 갇힌 1~8세 아이들은 순식간에 번진 불에 고스란히 희생됐다. 주민들이 뒤늦게 달려와 모래를 뿌렸지만 만사 도루묵이었다. 기사는 아예 운전면허도 없었고, 버스도 검사조차 받지 않았다니 그야말로 세월호 2탄 참사였다. 봉오리도 맺히지 않은 그 어린 꽃들을 어찌 이리도 무참하게 뭉갤 수 있는지 피눈물이 날 지경이다.

사실 세월호 사고 역시 원조가 따로 있다. 3년 전 동일본 대지진 때 쓰나미에 초등학생들이 떼죽음당한 미야기현 오가와 초등학교 참사였다. 지진이 일어나자 교사들은 학생들을 운동장으로 대피시켰다. 하지만 비상조치는 여기서 끝이었다. 어린 학생들은 "기다려라"는 교사 지시에 배운 대로 충실히 따랐다. 하지만 결과는 참혹했다. 무려 45분의 골든타임이 허무하게 지나갔고 성난 쓰나미는 학교를 쓸어버렸다. 학생 108명 중 74명, 교사 13명 중 10명이 사망 또는 실종된 참사의 전말이다.

쓰러져가는 세월호 선실에서 "대기하라"는 방송만 믿고 기다린 희생자들과 무엇이 다른가. 일본의 희생 초등생 부모들이 지방정부를 상대로 총 230억 원에 달하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명백한 인재였음이 밝혀진 이상 당연한 수순이라 하겠다. '학생들을 안정시키기 위한 조치'라느니 '쓰나미 기록이 없었다'는 지방정부의 변론이 구차스럽기까지 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제2의 '기다려라' 소송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자면 선사에 이어 실제 소유주인 유병언 일가에 대한 책임 소재를 사법당국이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 그게 희생자와 유족들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꼭꼭 숨어있는 그들을 하루빨리 찾아내는 게 시급하다. 그들은 '나'의 이익을 위해 '너'를 희생시키는 씻지못할 악행을 저질렀기에 철저히 그 죄를 물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를 수습하는 데 드는 배상비와 구조·인양 비용만도 6000억 원에 달한다. 하지만 유병언 일가의 재산을 환수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복잡하게 얽혀있는 재산 관계를 하나 하나 밝혀내야하는 지난한 과정이 남아 있다. 참사를 낸 청해진해운은 과거 세모그룹 때의 못된 짓을 또 저지러려고 한다. 바로 파산을 통한 꼬리자르기다.

사법당국이 꼬인 실타래를 풀지 못하면 수천억 원을 국민 혈세로 내야할 판이다. 이번만은 부도와 빚탕감으로 이어졌던 세모그룹 사태의 전철을 되밟아선 안 된다. 정부가 유 씨 일가를 붙잡은 경찰에 일계급 특진을 약속한데 이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현상금을 내건 것은 최선책은 아닐지언정 불가피한 선택이라 하겠다.

유병언 일가가 저지른 대죄는 또 있다. 바로 법치를 무시한 점이다. 전 재산을 내놓겠다고 속이고는 법망을 비웃듯 조폭처럼 '잠수 탄' 그들에게서 문명의 탈을 쓴 야만성을 절감한다. '곰의 벌통'이라는 러시아 우화가 있다. 동물들이 곰에게 벌집을 지키라고 했는데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었다. 동물 회의에서 벌통을 통째로 훔쳐간 곰에게 겨울동안 동굴에 가둬놓는 가혹한 벌을 내렸다. 곰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편안한 벌이었다. 벌통을 차지한데다 겨울잠까지 잘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처럼 법치가 무너지는 일이 넘쳐나는 세상 아닌가.

어디 관피아 뿐이겠나. 기업들로부터 떡값 챙기기에 여념 없는 우리 정치판도 마찬가지다. 부정청탁을 금하는 이른바 '김영란법'을 기를 쓰고 반대하는 까닭을 알 만하다. 뒷돈 받고 눈감아주는 '정피아(정치마피아)'도 철저히 밝혀내는 일이 시급하다.

세월호 참사로 우리는 생명존엄의 가치를 새삼 깨달았다. 생명과 인격, 행복은 그 어떤 경우라도 수단이 되어선 안 된다. 그 진리가 무시당할 때 불행은 찾아들게 마련이다. 우주는 생명적 존재라 할 수 있다. 지구와 동식물, 만물의 영장인 인류 등 모든 게 우주 먼지의 산물이다. 분리된 존재가 아닌 하나다. 너나가 따로 없고 오직 우리만이 있을 뿐. 이게 바로 신성한 이분법이다. 한 스님이 질타했다. 내 삶의 평형수가 뭔가, 또 나의 삶은 우리 사회의 평형수로 작동하고 있는가라고. 우리 모두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이 시대의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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