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정국이 6·4지방선거 속으로 잠깐 들어갔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팽목항 앞바다 속에는 여전히 세월호가 실종자와 함께 침몰해 있고, 정부와 정치인들은 애끊는 희생자 가족들을 외면하기로 작정했는지 아까운 시간만 흘려보내는 모습이다. 그러든 말든 앞으로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우리 사회는 여러 갈래로 다양한 일들을 치를 수밖에 없다.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을 가려 응당한 대가를 치르게 하고, 피해를 본 이들은 합당하게 배상을 받고, 우리 사회 구성원이 더욱 안전하게 살 방안을 제시하는 게 그 일 중 일부다. 300명에 가까운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를 우리 사회가 잊지 않도록, 그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는 일을 야무지게 시작해야 한다.
사실 그 일은 이미 시작됐다. 공권력이 아니라 스스로 결정해 실천하는 민주시민들에 의해서이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지난 4월 16일부터 각 지역 시민들이 팽목항으로 모여들어 절규하는 피해자 가족 주변에서 발걸음 소리를 죽여 가며 자원봉사에 나섰다. 그곳에 가지 못한 초중고 학생들과 시민들은 죄스러운 마음을 실은 물품을 보냈다. 전국 곳곳에 분향소가 마련돼 남녀노소가 눈물지으며 세월호 희생자들을 기렸다.
대한민국 국민은 이런 일을 하거나 지켜보면서 한 가지 사실을 확실하게 알게 됐다. '대한민국은 안전하지 않다. 언제 어디서 누가 희생될지 모른다'. 세월호 탑승객 죽음이 남 일 같지 않다는 생각에 슬픔과 분노가 동시에 치솟았다고 말하는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알고 보니 국가기관이 가진 재난 대응체계는 마비돼 있었다. 국민 생명을 지키는 공공 안전판은 부정부패에 흐물흐물 녹아 구멍이 뚫린 지 오래였다. 돈에 눈먼 경영자가 가진 탐욕이 얼마나 그악한지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화물과 승객 목숨을 맞바꿀 정도로 파렴치할 줄은 몰랐다는 장탄식이 전국을 뒤덮었다. 재앙이 이어지는 뫼비우스 띠 위를 내달리고 있는 것 같은 우리 사회 모습에 절망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글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그나마 많은 시민이 세월호 참사가 빚은 크나큰 슬픔을 몸과 마음으로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사회는 아직 살 만하다고 위로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실종자 중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한 참혹한 세월호 사고는 온 국민에게 트라우마가 됐다. 그렇지만 시간이 흐르면 상황은 달라진다. 기억들은 점차 퇴색하기 마련이다. 국상을 당한 것처럼 애도하던 이들도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인간 기억 세포가 가진 기억력은 허약하다. 보통 사람들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5)가 쓴 소설 '기억의 천재 푸네스'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모든 것을 잊어버리지 않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 그렇지만 '세월호'만큼은 우리 사회가 잊어서야 말이 되는가. 세월호 참사로 꽃도 피워 보지 못하고 사그라진 단원고 학생들과 의로운 스승들을 개인 기억 속에서 퇴색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문제는 그들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불완전한 개인 머릿속에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 대한민국 체제가 영원히 기억해야 한다. 국민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기관과 그 구성원은 필요할 때 모든 것을 던져 책임을 다하게 하는 국가 체제를 만드는 게 그 첫걸음이다. 학부모들이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 불났을 때 대피나 대중교통사고 시 대응법 등을 익히고, 학생들이 체험학습이나 단체 여행을 위해 장거리 이동하려 한다면 일단 반대부터 하는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야 한다. 열심히 세금 내고 살지만 혜택은커녕 '자경단'이 돼 자신과 가족을 지켜야 하는 한국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세월호 사태를 겪으면서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를 떠올린 이들이 많았으리라. 이 땅에서 '21세기 시민 불복종' 운동이 일어나지 않은 건 성숙한 민주시민 의식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눈물과 분노를 삼키고 세월호 사고 수습과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며 차분하게 서명받기에 나섰다. 이 같은 시민들이 점차 늘고 있다. 그러니 정부와 여권은 6·4지방선거에서 세월호 여파를 잘 막아냈다고 좋아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올해만 해도 7·30재·보궐선거, 2년 뒤인 2016년 4월엔 20대 총선, 2017년 연말 19대 대선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국민이 공감하는 '세월호 기억하기'를 이뤄내지 못한다면 앞으로 선거 후에도 웃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