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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칼럼] 불신사회 뛰어넘기 /최원열

마지막 수업서 보여준 문창극 후보 정체성, 적자생존론이 자명

엘리트주의 벗어나 대중에게로 눈 돌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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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대한민국은 냉온탕을 오가고 있다. 세월호 참사로 마음이 갈가리 찢긴 국민들은 브라질 월드컵이 시작되면서 모처럼 똘똘 뭉쳐 꿈이 다시 이뤄지길 두 손 모아 바라고 있다. '우리는 하나(We Are One)'라는 주제가처럼 모두가 통합되는 이 순간은 호기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아뿔싸,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정치판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기가 막힐 지경이다. 문창극 총리 후보의 발언들은 또 다른 면에서 국민을 열받게 하기에 충분하다.

말이 마음속 생각을 울려서 소리로 나타내는 의사 수단이란 점에서 문 후보는 분명 잘못했다. 그는 한민족을 평가절하하고, 남북 분단을 신의 섭리로 오도했다.  일본군 성노리개라는 굴레에 얽매어 살아온 할머니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건 또 어떤가. 인용한 것을 거두절미하고 보도했다는 변명도 구차하기는 마찬가지다. 그 역시 마음 속 생각일테니.

백 번 양보해서 문 후보의 발언들을 받아들인다 치더라도 영 마뜩잖다. 과연 그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할테니 말이다. 여기 핵심이 있다. 초빙교수로 있던 서울대에서의 마지막 수업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자. 그는 우리나라를 불신사회로 단언했다. 서로 믿지 않고 헐뜯어서 이미 되돌아올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균열이 생겼다는 게 요지였다. 대한민국이 임계점을 넘은 회복 불능의 상태라고? 그뿐만 아니다. 다수에 휘둘리는 소수, 그래서 민주주의가 파괴된다는 논리를 폈다.

이게 무엇을 뜻하는가. 말을 뒤집어 보면 우매한 대중에게 나라를 맡겨서는 안 된다는 뉘앙스가 숨어 있다. 그건 엘리트주의에 다름 아니다. 문 후보는 강연에서 숲을 예로 들었다. 나무가 자연의 질서 안에서 햇빛을 더 받기 위해 애를 쓴다며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살아갈 것을 강조했다. 그가 복지 확대나 무상 급식 등에 반대하는 배경이 확연히 드러난다. 하지만 경쟁을 강조한 나머지 생태계 조화라는 큰 흐름을 간과했다. 경쟁에 앞서는 게 상생임을 몰랐던 것일까. 식물은 동물을 살리는 산소를 내뱉고, 동물은 식물의 먹이인 이산화탄소를 토해내 행성 지구를 가꿔나가는 그 절묘한 원리를.

'역동적 경쟁'이라는 개념이 있다. 시장과 소비자, 기술이 빠르게 변하는 상황에서 경쟁자들이 잠시도 추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기에 역동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지 않고 성장한 기업은 온실 화초와 같아 거친 환경을 만나면 쉬 흔들리게 된다는 이론으로 문 후보가 이를 의식하지 않았나 싶다. 스스로 힘을 길러야 한다는 메시지를 줄곧 강조한 게 그렇다.

그의 정체성은 자명하다. 적자생존론이요, 힘있는 엘리트주의다. 소수의 파워엘리트가 나라를 이끌어야 불신사회를 혁파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 우생학의 창시자인 프랜시스 골턴이 대중의 어리석음을 증명하기 위해 수백 명을 대상으로 소 무게를 맞히는 실험을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이들이 적어낸 답안 평균치가 실제 몸무게와 0.5㎏밖에 차이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골턴은 패배를 시인했다. 개인은 어리석을지 모르나 대중이 되면 훨씬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린다며. 민주주의가 그렇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보여준 민심의 선택을 보면 알고도 남음이 있다.

문 후보가 지닌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그는 기본적으로 너와 나를 분리시켰으며, 차별화했다. '너'를 이기는 '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우리'가 끼어들 틈은 찾아보기 힘들다. 기본적으로 다수의 희생을 발판으로 나라를 지키겠다는 발상으로 여겨진다. 그에게는 이게 불신을 뛰어넘는 해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국의 리더가 이래서야 되겠나. 대통합과 국민 행복이라는 지향점과도 한참 거리가 멀다.

선의의 경쟁을 무시하는 게 아니다.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그 이전에 뿌리를 내릴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려면 너와 나가 우리라는 것, 그리고 하나라는 점을 깨쳐야 한다. 닫혔던 마음이 타인을 향해 서서히 열리면서 둘이 하나가 되는 합일의 감정으로 변해가는 게 사랑이듯이. 그래야 불신이 걷히고 믿음이 생긴다. 거실과 부엌의 공기가 다를 수는 없다. 부엌에서 멀어질수록 밥짓는 냄새가 옅어져 느끼지 못할 뿐. 나아가 국민과 나라가 그렇고, 지구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이야말로 배타적이 아닌 '신성한' 이분법이라 하겠다.

청문회 통과를 장담할 수 없으나 문 후보는 예비 국가지도자로서 지금부터라도 엘리트주의에 의한 우월성을 버리고 평범한 다수에게로 눈을 돌려야 마땅하다. 삶은 갖기 위함(for getting) 이 아니라 주기 위한(for giving) 것이며, 그러려면 껴안고 용서하는(forgiving) 자세로 불신의 벽을 넘어야 한다. 지도자의 소임이 뭐냐는 이성계의 질문에 정도전이 답하기를 '듣고, 참고, 품기'라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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