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훤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편지라는 단어를 들을 때 조건반사적(?)으로 떠오는 시가 청마 유치환의 '행복'이다. 청마는 시조 시인 영도에게 쓴 연서를 포함해 5000여 통의 편지를 옛 통영우체국(현 통영중앙우체국)에서 보냈다고. 한때 '청마우체국'으로 개명하자는 움직임도 있었지만 청마의 친일 논란으로 주춤한 상태. 그래도 우체국 앞엔 '행복' 시비와 빨간 우체통이 있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인 이탈리아 베로나엔 여성들이 사랑고백 쪽지를 붙여놓는 줄리엣의 발코니가 있다. 우연히 50년 전 러브레터를 발견한 한 처녀가 안타까운 사연에 답장을 보낸다. 며칠 후 편지 속 주인공인 할머니와 손자가 찾아오자 이 처녀는 그들과 함께 옛사랑을 찾아나선다. 노연인의 사랑이 결실을 맺은 건 물론 처녀와 할머니의 손자도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 2010년 영화 '레터스 투 줄리엣'의 줄거리다. 일본영화 '러브레터'도 2년 전 조난사고로 죽은 약혼자에게 보낸 편지에 놀랍게도 답장이 오는 것으로 시작되는 영화. 여주인공 히로코가 눈 덮인 산에서 외치는 '오겡키데스카(잘 지내세요?)'란 애절한 대사가 심금을 울린다.

이메일과 휴대전화 때문에 편지가 급속히 줄면서 우체통도 갈수록 주는 추세. 가장 많았던 1993년 5만7000여 개에 비하면 지금은 2만여 개 수준. 그래도 전국에서 '느린 우체통'이 속속 개설되면서 명맥을 잇고 있다. 이를테면 편지를 우체통에 넣으면 1년 후에 배달해 주는 식. 우정사업본부도 연초에 슬로 레터 서비스를 한다.

세월호 참사 100일을 맞아 전남 진도 팽목항에 실종자 희생자들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편지를 보낼 우체통이 설치됐다. 이름하여 '하늘나라 우체통'. 이 우체통을 세운 진도군 교회연합회와 사단법인 하이패밀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편지를 수거해 주소가 있는 편지는 답장을 보내고 주소가 없는 건 1년 후쯤 책으로 묶어낼 계획. 하늘로 간 희생자들이 이 편지를 보고 답장을 보낼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쨌거나 세상에서 가장 슬픈 우체통이 아닐 수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