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인문학 칼럼] 다시 시를 꿈꾸며 /이성희

시장·이념의 논리가 삶의 양식을 차지하고

나와 너, 사물을 잇는 생명의 꽃이 시들어도 꿈꾸는 이들은 남았다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4-07-30 23:03:25
  •  |   본지 27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다시 시를 꿈꿀 수 있을까? 오래전 첫 시집의 시에서, 내 삶의 어느 황폐했던 겨울 언저리를 추억하는 시에서 "나는 다시 시를 꿈꾼다"라고 썼던 것이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그리고 20년이란 세월이 지난 지금, 스멀거리는 안개처럼 실체가 없어진 시의 꿈을 다시 떠올려 본다. 도대체 이 시대에 다시 시를 꿈꿀 수 있을까? 며칠 전에 만났던 그 어린 눈동자들이 등 뒤를 미행하며 자꾸만 질문을 던진다, 비수처럼.

지난 토요일, 백년어서원 '청소년 창작캠프'에서 만난 아이들의 눈동자는 정말 초롱초롱했다. 인적이 뜸해진 공휴일의 중앙동, 그 쓸쓸한 골목 한 구석에서, 놀랍게도 시를 쓰겠다는 시대착오적 꿈을 꾸는 대학생과 고등학생 20명 남짓이 초롱초롱한 눈으로 당황한 강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 게임과 야동과 입시지옥의 한가운데서 문학을 꿈꾸는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당혹스럽고도 신기로웠다. 학생들의 맑고 진지한 눈동자 때문에 나도 이제 거의 믿고 있지 않는 시의 꿈을 그만 말하고야 말았다. 몇 명 남지 않은 신도들 앞에 터무니없이 큰 소리로 외쳐대는, 우스꽝스럽고 서글픈 교주처럼. "시를 믿사옵니까?"

시는 파산했다. 시가 어디에 서겠는가? 무자비한 시장의 논리가 악마의 맷돌처럼 삶의 모든 양식을 분쇄시키고 있는 곳에, 증오와 불신으로 서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있는 이념의 진영 앞에, 막장 서사와 이미지들만이 우글거리는 영상 안에, 빈발하는 충격적인 재난 앞에 유감스럽지만 시의 자리는 없는 듯하다. 더는 아무도 시집을 끼고 다니지 않는다. 소녀의 손에도, 자취방 고학생의 책장에도, 연인들의 속삭임 속에도 시는 닻을 내리지 못한다. 하단 강변의 갈대숲도, 갈대숲에 광활한 노을을 물고오던 새 떼도, 선착장 선술집의 낡은 불빛도, 바다가 밀려오던 동해남부선의 철길도 더는 시 읊조리기를 멈췄다. 시는 거주지를 상실했다.

시가 거주지를 잃어버린 시대는 분명 삶의 깊은 곳 어딘가가 고장 난 시대이다. 철학자 하이데거는 "시를 짓는 것은 최초의 귀향"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이데거가 말하는 '고향'은 삶의 근원이다. 멕시코 시인 옥타비오 파스도 "시는 존재의 심층에 거주한다"고 하였다. 우리에게 돌아갈 고향이 있던가? 시를 잃어버린 것은 생명의 고향을 잃어버린 것이고, 그 삶의 심층 어딘가가 고장 난 것이다. 그리하여 고장 난 삶의 비행기는 불모의 사막에 불시착하게 된다. '어린왕자'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입적하신 법정 스님이 그토록 애독했던 '어린왕자'는 오늘 우리에게 마치 시의 비밀스러운 입문서처럼 다시 다가 온다.

작가 생텍쥐페리는 우리들의 삶이 실패했음을 비행기의 고장으로 암시하고 있다. 그리하여 불시착한 사막은 삶이 고장 난 심층의 지평이다. 그러나 그 지평이야말로 다시 삶이 치유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좌절의 벼랑 끝이야말로 새로운 반전이 시작될 수 있는 자리이다. 그 자리에서 비행사는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그리던, 그러나 예전에 잃어버렸던 자신 속의 어린이를 다시 만난다. 어린왕자를 만난 것이다. 어른들이 이해할 수 없었던 그 어린이의 언어와 마음이 우리의 고향이며, 시의 정처가 아닐까? 토요일 만난 '청소년 창작캠프'의 초롱초롱한 눈빛은 왠지 내 삶이 불시착한 사막에서 만난 어린왕자 같기만 하다. 어린왕자와의 만남을 통해 마음이 치유되고 비행기의 고장이 수리되는 것처럼, 시를 통해 우리들의 삶도 치유될까?

생텍쥐페리가 어린왕자를 통해 우리에게 말하는 '길들인다'는 것은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다. 수단과 도구와 유용성의 굴레가 되는 관계가 아닌, 관심을 갖고 배려하고 함께 아파하며, 서로가 자유로우면서도 이어지는 관계이다. 시가 하는 일이 본래 그런 일이다. 나와 타자, 사물과 사물이 서로 지배하지 않고 생명의 관계를 맺게 하는 일이다. 시의 손은 모든 것을 황금으로 바꿔버리는 미다스의 손이 아니다. 그것은 자신과 타자를 죽이는 것이다. 시의 손은 모든 것과 감응하고 살리는 오르페우스의 손이다. 바람에 스치는 별과 잎새에 이는 바람과 부끄럼 없는 하늘을 이어주는 일이 시의 은유다. 그리고 함께 괴로워하는 것이 윤동주의 시쓰기다. 그것은 또한 삶의 치유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모든 정신적 질병은 이러한 관계의 붕괴에서 발생한다고 했다. 내가 만난 어린왕자들의 눈빛을 생각하며, 나도 다시 시를 꿈꾸어 보는 것이다.

누군가가 오늘밤 시를 읽기 위해 적막한 사막을 떠돌 때 그만큼 우주는 고립과 무감각에서 풀려나 섬세해지고 감응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누군가가 시를 쓰기 위해 온 밤을 뒤척일 때, 우주도 함께 뒤척이게 될 것이다. 누군가 어리석게도 시라는 그 파산한 들녘을 방황할 때, 우주는 조금씩 생명의 파산을 이기고 푸른 춤을 추게 될 것이다. 기어코 생명의 꽃으로 피어날 것이다.

시인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고속도로 달리던 중 렌터카 핸들에서 뱀 출몰…소방 출동
  2. 2서범수 의원, 농지 훼손·환경오염 막는 강화 법률 개정안 발의
  3. 3진주시, 70여 년 만에 보건소 단독 신청사 건립
  4. 4정부, “가덕도신공항 건설 대한 주민 의견 최대한 많이 들을 터”
  5. 5부산 울산 경남 오후부터 비…낮 최고 13~18도
  6. 6부산서 ‘불멍’ 즐기다 날벼락…일가족 2명 다쳐
  7. 7반도체 날개 달고 韓 수출 사상 첫 9000억 불 돌파…올해 1조 달러 달성할 듯
  8. 8진주서 택시 화재…운전자 등 2명 화상
  9. 9[속보]피 토하는 아들 방치하고 사망보험 가입한 보험설계사 母 징역 3년
  10. 10[속보]‘엿새째 무소식’ 부캉이 진짜 떠났나…3일 최종판단
  1. 1서범수 의원, 농지 훼손·환경오염 막는 강화 법률 개정안 발의
  2. 2이 대통령 '순방 외교' 공방, '돼지 눈엔 돼지" 표현 논란도
  3. 3李 대통령 “다문화가정 지원, 문제 시정하는 게 차별 아냐”
  4. 4사천 공군기지 훈련기 공중 충돌 뒤늦게 알려져…부상자 없어
  5. 5北, 집속탄두 위력 과시…‘축구장 18개 면적’ 초토화
  6. 6장동혁 “박근혜, ‘인재들로 총선 이기고 정권 탈환’ 당부”
  7. 7[속보] 국힘 장동혁, 李대통령에…“돼지 눈엔 돼지만 보이나”
  8. 8한미일 외교장관 “北 완전한 비핵화 위한 의지 재확인”
  9. 9장동혁 “李대통령 ‘황제골프’ 수준 넘어 ‘민폐골프’”
  10. 10李대통령 "다문화 지원 필요하나 역차별까지 정당화 안 돼"
  1. 1정부, “가덕도신공항 건설 대한 주민 의견 최대한 많이 들을 터”
  2. 2반도체 날개 달고 韓 수출 사상 첫 9000억 불 돌파…올해 1조 달러 달성할 듯
  3. 3[속보]‘엿새째 무소식’ 부캉이 진짜 떠났나…3일 최종판단
  4. 4오픈AI 샘 올트만 깜짝 방한…삼성 사장단에 AI 특강(종합)
  5. 5롯데렌탈 매각 거래종결, 1조3000억원가량 대금 확보
  6. 6이재용 일본 반도체 패키징 거점 방문, 日 소부장 협력 모색
  7. 7못 말리는 한국 제품 인기…연간 수출 1조 달러 달성 눈앞에(종합)
  8. 8은행 부실채권 1년만에 1조3000억 늘었다…8년6개월만에 최대
  9. 9동원개발, 협력사와 손잡고 ‘안전보건 상생’ 다짐
  10. 10국산 비만약 에페 공급가, 마운자로보다 40% 저렴
  1. 1고속도로 달리던 중 렌터카 핸들에서 뱀 출몰…소방 출동
  2. 2진주시, 70여 년 만에 보건소 단독 신청사 건립
  3. 3부산 울산 경남 오후부터 비…낮 최고 13~18도
  4. 4부산서 ‘불멍’ 즐기다 날벼락…일가족 2명 다쳐
  5. 5진주서 택시 화재…운전자 등 2명 화상
  6. 6[속보]피 토하는 아들 방치하고 사망보험 가입한 보험설계사 母 징역 3년
  7. 7[한 손 뉴스] 마르는 회야강에 낙동강 물 공급 검토…양산시 타당성 조사 착수
  8. 8부산 영도 조선소 러시아 어선 화재…소방대원 1명 부상
  9. 9밤부터 비 그치고 월요일 오전 맑아져…평년 기온 보일 듯
  10. 10[속보] 핼러윈 인파 혼잡에 6호선 이태원역 무정차 통과
  1. 1삼성, KIA 6-1 꺾고 2년 만에 한국시리즈 진출
  2. 2BNK, 여자농구 개막전 ‘디펜딩챔프’ KB 완파
  3. 3‘친정 팀 복귀’ 이동욱 감독, “기본기 다져 승리하는 팀으로 만들겠다”
  4. 4“AG 환희 잊고…리그 첫 경기부터 승수쌓기 총력”
  5. 5마침내…밀워키, 월드시리즈 첫 우승(종합)
  6. 6괜찮을까…모레노호, ‘96라인’·손흥민 모두 품었다
  7. 7여자프로농구 절반이 女감독
  8. 8롯데 수석코치 허문회, 2군 감독 박승민
  9. 9부산시대 2년차 읏맨 “홈팬 응원에 성적으로 보답”
  10. 10모레노, 은퇴소동 ‘96라인’ 달랜다…대표팀 내홍 풀까
우리은행
주민자치 모범현장 가다
‘주민대표’가 건축 세부사항까지 의견…지방의회 심사 반영
10대 부산시의회 상임위 들여다보기
“학교 통폐합 지역 맞춤형으로 접근”
강동진의 도시이야기 [전체보기]
바흐를 찾아간 나, 한국을 꿈꾸는 그녀
세계유산위원회, 부산의 시간을 세계와 나누다
경제프리즘 [전체보기]
소비 아닌 문화 생산 주체 오페라하우스
한국 갯벌의 2단계 확대 등재 의미
과학에세이 [전체보기]
지역이 기획, 국가가 지원하는 R&D 시대 열자
진짜 질문의 시작
국제칼럼 [전체보기]
개·고양이 학대는 이제 그만
부캉이에게 부끄러운 북항 재개발 민낯
기고 [전체보기]
‘성범죄 취업제한’의 사각지대
‘2028 세계디자인수도 부산’의 과제
기자수첩 [전체보기]
금고 이사장 전횡, 지금도 진행중
엘리트 자평해온 市 공무원…생중계 회의서 능력 입증을
김준희의 클래식 인사이트 [전체보기]
세레나데, 다정한 위로
여름의 끝자락, 브람스
김지윤의 우리음악 이야기 [전체보기]
다대포에서 만난 퇴계 이황
세종시대 음악이 전해진 이유
뉴스와 현장 [전체보기]
‘탈서울’ 안 된다던 원안위, 세종행에 왜 침묵하나
AX·반도체 전시회 5개 동시에 열렸는데…
도청도설 [전체보기]
호감과 비호감 사이
클릭으로 여는 독도
독자 투고 [전체보기]
새로운 시작 ‘황혼 이혼’
무료 화장실 깨끗하게 쓰자
메디칼럼 [전체보기]
왜 제대로 비워지지 않는지 살펴야
개정 응급의료법이 ‘미수용 방지법’?
목지수의 도시브랜드 산책 [전체보기]
랜드마크 시스템의 시대
북항 돔구장에서 야구 보며 사우나를
박지욱의 뇌력이 매력 [전체보기]
건망증, 이렇게 잡자
운동으로 해마를 키우자
박진희의 컬처 픽 [전체보기]
‘부캉이’ 스펙터클에서 공존으로
부산 문화정책, 지금 필요한 선택
사설 [전체보기]
신세계타운, 센텀시티의 새 도약과 부산의 미래 이끌길
대통령의 SNS 신중함과 절제로 국정 신뢰 지켜야
세상읽기 [전체보기]
SNS라는 광장, 우리는 서로의 말을 듣고 있는가
반복된 일상에서 마음의 여유를 찾는 법
안재철의 연결하는 공간 [전체보기]
지구와 도시의 연결을 묻다
해양수도 부산, ‘제3의 경계 공간’
엄길청의 문전성시 [전체보기]
말과 현실이 너무 다른 부산
반도체와 부산
이보성의 미술 현장 산책 [전체보기]
두 미술관, 각자의 역할을 묻다
시장이 강해진 것일까, 비엔날레가 약해진 것일까
이상이 칼럼 [전체보기]
복지의 ‘필요 원칙’과 포퓰리즘
보건의료에서 지방정부 역할과 ‘정책 의료’
이정구의 맛과 건강 [전체보기]
미식과 오래 씹기
이제명의 오션 드림 [전체보기]
기다림에도 비용이 든다
광복 81년, 다음은 바다의 산업 주권
이홍의 세상현미경 [전체보기]
대규모 대미 투자, 기회인가 위협인가
국제질서의 지각변동과 한국의 성장경로
정쾌호의 부동산 탐구생활 [전체보기]
부산 아파트 10년, 이중 양극화와 위상 추락
미분양의 경고, 지방 맞춤 ‘출구전략’ 서둘러야
주재민의 명당을 찾아서 [전체보기]
사람은 갔어도 명당은 남아 있다
조선 8대 명당 중 하나인 정문도 묘
최태호의 와인 한 잔 [전체보기]
와인은 어떻게 마음에 남는가
추석의 식탁, 가족을 잇는 와인
특별기고 [전체보기]
‘해양수도 부산’ 토대부터 바로 놓아야
당론 따를지 역사 따를지 양심의 선택을
하순봉의 음악이야기 [전체보기]
박자와 기보
국민악파
황정수의 그림산책 [전체보기]
이대원의 ‘온정리 풍경’
유영국의 1957년 작 ‘사람’
CEO 칼럼 [전체보기]
시민 주거안정에서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청년 떠나는 지방, 수도권 인구 분산해야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