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겪었던 두 가지 폭력에 대한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자. 중학교 입학식 며칠 후였다. 맨 뒷줄에 앉은 덩치 큰 녀석 서넛이 작당을 하고선 반 아이 전체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종례 후 담임 선생님이 사라지고 나면 이 녀석들이 몽둥이를 들고 설쳤다. 급기야는 교단에 서서 반 아이 전부를 부동자세로 앉혀놓고 온갖 욕지거리를 퍼붓고 위협을 가했던 것. 조금이라도 대드는 아이에겐 린치(?)를 가해 제압했다. 천황씨 같은 선생님은 학년이 끝나도록 교실 속의 무법천지를 눈치채지 못했다. 40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
또 다른 이야기는 이렇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이 발발했던 5월 18일로 넘어가는 자정이었다. 그때 나는 대학 구내 기숙사에서 단잠에 빠져 있었다. 누군가가 거칠게 방문을 걷어차는 기척에 눈을 떠보니 서너 명의 공수부대원이 난입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착검한 소총을 목덜미에 들이대며 진압봉을 휘둘렀다. 기숙사에서 쫓겨나기까지 만 하루 동안 전 사생들이 겪은 폭력과 수모는 새삼 일일이 말하고 싶지 않다. 박정희가 죽은 후 찾아온, '민주화의 봄'이라고 불렸던 그해 오월 전두환의 정권 찬탈에 반대해 전국을 휩쓴 학생시위에 한두 차례 끼어든 대가치고는 너무 값비싸긴 했다.
어줍잖은 추억(?)을 장황하게 늘어놓은 건 개인에 의한 것이건, 집단 혹은 국가가 저지른 것이건 폭력은 피해자에겐 영혼의 상처로 남는다는 걸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폭력'과 짝을 이루는 단어는 '공포'다. 상대를 공포에 빠트려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팽개치고 복종하도록 만드는 게 폭력이다. 가정, 학교, 사회는 물론 자본과 국가의 폭력도 공포라는 목표는 똑같다. 그러니 민주주의 역사는 '폭력 추방의 역사'라고 해도 틀리지 않다. '폭력의 수요'와 민주화 이행지수는 반비례한다. '용산참사'를 목도하면서도 나는 국민에 대한 무차별 살상이나 불법 연행, 고문 같은 국가폭력은 줄었다고 애써 믿었던 터다. 그런데 최근 터진 '군 폭력 사태'를 접하면서 이런 믿음이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마대자루로 온몸 때리기, 땅바닥에 뱉어 놓은 침과 버려진 음식을 핥아 먹게 하기, 치약 먹이기…. 숨진 윤 모 일병에게 가해진 폭력의 실상에 자식을 군에 보냈던 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피가 거꾸로 치솟는다. 기절하면 링거를 맞히고 또 때렸다고 한다. 사진 속의 시신엔 시퍼런 멍이 가득했다. 윤 일병이 맞아 죽은 이유는 단 하나. '대답이 느리고 어눌하다'는 것. 이번 사건 이후 군내 폭력에 대한 증언이 터져 나오고 있다. 상습 구타는 기본이고 몸에다 오줌 싸기, 얼굴에 치약 바르기, 항문에 물 붓기…. 폭력을 막아야 할 간부마저 가세했을 뿐 아니라 사건을 축소·은폐하는데 급급했던 사실이 양파 벗겨지듯 속속 드러나고 있다. 육군참모총장은 신문 보고 이 사건을 처음 알았다니 덧붙일 말도 없다. 이게 2014년 대한민국 군대의 속살이다. 2차대전 때 난징에서 닥치는 대로 학살을 저질렀던 구 일본군의 내무반 풍경이지 어떻게 '국군'의 모습일 수 있는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나라 지키러 보냈다가 만신창이가 된 시신으로 되돌려 받은 부모의 심정을 뉘라서 짐작이나 하겠는가. 군에 자식을 보낸, 앞으로 보내야 할 부모들의 참담하고 불안한 마음을 대통령은, 국방장관은, 참모총장은 알기나 하는가. 이러고도 남의 자식을 징발할 염치가 있나. 연수 가서 지붕에 깔려 죽고, 수학여행 가다가 배가 뒤집혀 떼죽음하고, 군대 가서 매 맞아 죽고…. 도대체 우리는, 국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저지르고 있는 것일까.
군은 '합법적 폭력'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조직이다. 그 폭력의 행사에는 정당성이 따라야 한다. 하물며 폭력을 구조화해 구성원을 다스리는 수단으로 삼는다는 게 말이 되는가. 이번 사건은 더도 덜도 아닌, '국가가 방조한 살인'이다. 때린 군인도, 맞은 군인도 대학생이었다. 학교였다면 그 애들이 그리도 잔인했을까. 선임병에게 당한 대로 아무런 자의식 없이 후임병에게 되갚음 한 게 아닌가. "폭력은 정상과 비정상, 동일자와 타자, 내부와 외부 사이에 만들어진 경계에서 일어난다"고 했던 이는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이었던가. 개인에 대한 집단의 폭력은 '왕따'를 만들어내 나머지에 공포를 심어줌으로써 '패거리'를 유지하자는 수작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군대 문화는 조폭과 다를 게 하나 없다. 우리 아이들을 조폭으로 전락시킨 자는 과연 누구인가.
이제 나라 전체가 나서야 한다. 폭력에 의존하는 군대 문화를 뿌리째 뽑아내야 한다. 군 같은 특수조직을 꾸려나가는 데 폭력은 필요악이란 변명을 늘어놓고 싶은가. 바로 그런 인식이 오늘의 참사를 부른 게 아닌가. 폭력 문화에 관한 한 우리 군은 제국주의 '황군'의 유산을 단 하나도 버리지 못했다. '병영 내 폭력 엄단' 따위 공문 한 장으로 해결될 일이 결코 아니다. 대통령부터 국방장관, 참모총장, 사단장에 이르기까지 자식을 군에 보낸 부모 앞에 석고대죄할 일이다.
아니, 사회에 만연한 폭력 문화를 우리 모두 깊이 성찰할 때다. 나 자신 속에 은폐된 '폭력의 추억'을 지울 때다. 말도 배우지 못한 유아에게 가하는 부모의 폭력, 가정을 풍비박산 내는 가장의 폭력과 친구를 죽음에 몰아넣는 학교 폭력에서부터 자본의 폭력, 국가 폭력에 이르기까지. 문화적 폭력도 있다. 지금 극장가를 휩쓰는, 살과 피가 튀는 저 숱한 폭력 영화는 또 무언가. 국민소득이 5만, 10만 달러가 돼도 사람이 사람을 때려서 길들이겠다는 사고방식이 용인되는 사회는 야만사회다. 야만인이 되지 않겠다면 우리는 이제라도 폭력 문화를 종식해야 한다.
40여 년 전 급우들을 괴롭혔던 그 아이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삶의 무게에 찌들어 피로한 생활인이 돼 있을 그 친구들의 후일담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중 1짜리가 뭘 알았겠는가. 그저 저희 주먹에 꼼짝 못 하는 급우들에게서 희열을 느꼈을 뿐일 것을. 그런데 말이다. 교실을 짓누르던 폭력의 그림자를 담임선생이 눈치챘더라면, 그래서 적극적으로 대처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 내 영혼 한구석에 드리운 '폭력의 추억'은 없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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