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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칼럼] 다산 정약용과 체 게바라 /이국환

詩 좋아한 다산과 체, 문학적 감성·공감이 성숙한 인간 만들어

꿈꾸는 10대와 20대, 폭넓은 독서로 성찰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4-08-27 20:10:14
  •  |   본지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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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문관 수찬 정약용은 저녁 숙직 자리에서 극비리에 임금의 부름을 받고 어전에 나아가 암행어사로 복명하라는 엄명을 받는다. 정약용은 임금의 명으로 경기도 북부 6개 고을을 암행하였는데, 이 경험이 그의 일생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일찍이 벼슬길에 오른 아버지 덕택으로 사또 자제로 귀하고 유복하게 자란 다산은 책 읽기를 좋아하고 풍광을 읊고 자연을 관조하는 시를 즐겨 썼다. 그런 다산이 잠행하며 목격한 18세기 후반 조선 농촌의 실상은 참담하고 충격적이었다. 목민관들의 부정부패와 탐관오리들의 등쌀에 피폐해진 백성들의 실상을 보면서 다산은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의 권익을 위해 생애를 바칠 결심을 굳힌다.

그리하여 다산의 시가 바뀐다. 자연을 관조하던 다산의 시는 투철한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사회 시, 비판 시로 바뀌었고 시에 세상을 개혁하려는 의지를 담았다. 자신이 퇴락하고 힘들 때에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기는 쉽다. 하지만 홍문관 교리와 수찬을 거쳐 암행어사로 출세가도를 달릴 무렵 약자 편에 서서 다산처럼 행동하는 것은 어렵다. 만약 다산이 백성들의 피폐한 현실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더불어 다산이 문학적 감성과 공감 능력으로 백성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우리가 아는 위대한 다산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 상류층 집안의 아들로 자라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의사로서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그는 젊은 날 고물 오토바이 포데로사를 타고 무작정 떠난 여행에서 서구 다국적 기업의 횡포와 지배층의 부정부패에 착취당하는 남미 민중의 피폐한 현실을 목격하고 인생의 진로를 바꾼다. 체는 메스를 놓고 총을 잡았다. 쿠바 혁명에 동참한 체 게바라는 카스트로와 함께 혁명에 성공하지만, 권력의 맛에 도취하지 않고 다시 콩고 혁명과 볼리비아 농민혁명에 백의종군하였고, 서른아홉의 나이에 볼리비아 정부군에 붙들려 산중에서 총살된다.

그가 죽는 날까지 메고 다녔던 남루한 배낭에서 평소에 좋아하는 시를 필사한 노트가 발견되었다. 노트에는 체 게바라가 사랑했던 네 명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 세사르 바예호, 니콜라스 기옌, 레온 펠리뻬의 시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독서광이었다. 심한 천식을 앓았던 그는 기도가 막혀 숨을 쉬기 힘들 때도 침대 모퉁이에 책상을 올려놓고 책을 읽었다. 체 게바라는 15세 때부터 시를 썼고 네루다의 사랑에 관한 시들을 좋아하여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를 즐겨 암송했다.

사르트르가 체 게바라를 '우리 세기 가장 성숙한 인간'으로 평가하는 데는 바로 이러한 문학적 감성을 바탕으로 한 공감 능력과 신념을 실천하는 결단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다산과 체의 독서는 삶의 현장과 함께했다. 특히 그들이 즐겨 읽고 썼던 시는 그들로 하여금 문학적 감성으로 타자를 공감하는 힘을 길러주었다. 사는 게 팍팍하다며 더는 책을 읽지 않고 시를 쓰지도 읽지도 않는 시대, 한 권의 시집을 읽으며 밤새워 뒤척이는 경험 없이, 그러한 감성으로 타인을 공감해보지 못하고 우리는 사춘기를 건너고 젊은 날을 보낸다.

10대가 시대에 반항하고 20대가 시대에 저항한다면, 30대는 시대에 적응하고 40대 이후는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타협한다. 간혹 현실에 묻히기에는 너무도 비굴해지는 자신의 삶에 냉소하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는 자신의 한계로 시대에 얽매여 있으며, 시대가 주는 무게에 허덕이며 산다. 우리의 현재를 30대와 40대 이후가 이끌었다면, 우리의 미래는 10대와 20대가 꿈꾸는 곳에 있다. 그런데 지금 10대는 교실 뒷자리에 엎드려 자고 20대는 자본의 논리에 복종하려 스펙을 쌓는 데 열중한다. 자본이 우리 존재를 대신 채우려 하는 허무의 시대, 미성숙한 자들이 사회의 부와 권력, 권위를 차지하는 시대에 다산과 체를 떠올리며 성숙한 인간에 대해 고민한다. 다산 정약용과 체 게바라는 자신의 욕망과 모순을 엄격하게 마주하면서도 타인의 실존을 아파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또 자신이 우월한 지위나 권력을 갖고 있음에도 타인을 억압하거나 부당한 일을 강요하지 않았으며, 공동체가 직면한 불의와 부당함에 저항하였다.

아이들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더니 "돈 많이 버는 거요!"라고 합창하듯 소리친다. 어른들의 가치관이 반영되었을 터, 우리는 지금 자본이 세뇌한 새로운 전체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타자와 함께하는 감성, 세계를 해석하고 성찰하는 이성, 미래를 결단하는 지성과 의지를 지닌 성숙한 인간, 그러한 인간은 문학적 감성으로 성장하고 폭넓은 독서로 세계를 이해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여 미래를 꿈꾸고 실천하는 의지를 지닐 때 가능하다. 아이들에게 다산과 체의 삶을 들려주고 싶다.

동아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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