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농부가 빚을 떼먹으려고 소송에서 무조건 이기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아들을 소크라테스에게 보냈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아들과 논쟁이 붙었는데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 언성이 높아지자 아들이 아비를 두들겨 팼다. "아버지도 어릴 때 저를 때리셨잖아요." "이놈아, 그건 널 사랑해서 잘 되라고 한 것이지." "저도 아버지를 사랑해요." 농부는 소크라테스의 학교에 불을 질렀다. 그리스 대표적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의 '구름'의 내용. 말장난하는 소피스트에 대한 통렬한 풍자다.

소피스트(Sophist)는 BC 5~4세기 그리스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철학자들. 설득을 목적으로 하는 논변술을 강조해 궤변론자로 번역된다. 궤(詭)는 위험할 위(危)에 말씀 언(言)이 합쳐진 글자. 그 말을 믿었다간 위험해진다는 거다. 변(辯)은 두 명의 죄수(辛)가 상대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려고 말싸움을 벌이는 모습.

서양 소피스트에 비견되는 게 중국 춘추 전국시대의 '명가(名家)'. 공손룡(公孫龍)이 백마를 타고 가다 말탄 이에게 통행세를 거두는 검문소에 이르렀다. 문지기와의 대화. "흰색은 공(空)이니까 색깔이 아니지?" "그렇소. "그러니까 흰 말은 말이 아니잖아.(白馬非馬)" 그는 하얗고 단단한 돌을 들고 와 이렇게 우겼다. "팔이 없는 자는 돌이 단단한 것을 만져 알 수 없다. 눈이 없는 자는 희다는 걸 알 수 없다. 그러니 이 돌은 하나가 아니고 두 개란 말이야(堅白論)."

'국가정보원의 불법 댓글 사건'에 1심 법원이 "정치개입죄는 인정되지만 대선 개입은 아니다"고 판결해 논란이 분분하다. 불법댓글을 계속적·반복적으로 달아왔기 때문에 선거 때도 그랬다고 해서 새삼 선거운동으로 볼 수 없다는 게 판결 요지. 대선 시기에 댓글 분량이 줄었다는 것도 근거로 댔다. 길에서 새끼줄을 주웠는데 소가 함께 끌려왔더라는 식이 아닌가. 이런 비유는 어떨까? 수능시험에서 커닝하다 걸린 애가 있다. "저는 평소 학교 시험 때도 커닝을 계속적·반복적으로 해왔지만 이번 수능시험에선 오히려 커닝 횟수가 적었는데 어째서 새삼 부정행위입니까?"

앞으로 패러디가 유행할 모양이다. '평소부터 술 마시고 운전을 했으니 오늘도 음주운전은 아니다(주정뱅이).' '평소 집을 10채씩 사들였으니 이번 것도 투기는 아니다(복부인).' '평소 오프사이드를 많이 했으니 이번 것도 골로 인정해 달라(축구선수).' '평소부터 위안부 강제동원을 부인했으니 이번에 또 부인한대서 망언이 아니다(아베 신조 일본 총리).' 재미있는 세상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