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경제력에서부터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남한이 북한을 압도하지만 유독 남북이 호각지세(互角之勢)를 이루는 게 있으니 축구다. 1970, 80년대는 체제 대결의 대리전으로까지 여겨져 전 국민적 관심사가 되기도 했다.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 축구 대결은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 결승전. 김호곤, 차범근, 허정무, 조광래 등 호화멤버로 구성된 한국 팀은 북한과 연장전 포함, 120분 동안 혈투를 벌였지만 0-0 무승부를 기록하며 공동우승했다.

따지고 보면 남북 축구 대결의 역사는 길다. 경평(京平) 축구가 시작된 것은 1929년 10월 8일. 서울 휘문고보 운동장에서 열렸다. 경성중학이 주축이 된 경성팀과 숭실학교가 주축이 된 평양팀의 경기는 사흘 동안 치러져 평양팀이 2승1무로 우승했다. 7000명이 넘는 '구름 관중'이 몰렸고 축구 구경 때문에 술집과 가게들이 일제히 문을 닫았다고. 양 도시를 오가며 치러지던 경평전은 1935년 중단됐다가 1946년 해방 이후 서울운동장에서 격돌한 게 마지막.

북한에도 축그리그가 있다. 1·2·3급 리그로 나뉘는데 1급 리그의 명칭은 '최상급축구련맹전'. 남포의 4·25축구단, 평양의 압록강축구단, 신의주의 기관차체육단 등 15개 팀이 소속돼 있다. 2급과 3급은 각각 40개, 80개 정도. 매년 상위리그의 최하위 팀과 하위 리그 최상위 팀이 교체된다. 여자는 평양 6개를 포함해 12개 팀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의 축구 실력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 첫 출전한 북한은 이탈리아를 1-0으로 누르고 8강에 진출해 세계를 놀라게 했다. 8강전에서 포르투갈에 아쉽게 역전패하긴 했지만. 1980년대 후반 세계무대에 나선 여자축구가 세계 최강 수준임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다. 2006년 러시아에서 열린 20세 이하 여자월드컵 결승에서 중국을 5-0으로 대파했다. FIFA 주관 대회에서 아시아 국가로선 첫 우승.

인천 아시안게임 남자축구 결승에서 한국이 천신만고 끝에 북한을 1-0으로 꺾었다. 연장 후반 전광판 시계가 멎은 후 골이 들어간 '1분의 기적.'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이후 28년 만의 우승이다. 이로써 아시안게임 역대 남북 대결은 2승1무1패로 한국이 우위를 점하게 됐다. 여자축구에선 북한이 남한을 2-1로 꺾고 우승했으니 축구에서도 '남남북녀'가 입증된 셈. 축구교류로부터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면 어떨까. 남북이 단일팀을 이룬다면 월드컵에서 좋은 성적을 이루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걸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