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국립대학인 조선 시대의 성균관도 입학이 꽤 까다로웠던 모양. 전국 유생을 대상으로 초시를 치러 700명을 선발한 다음 복시로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한 각 100명에게만 입학 자격이 주어졌다. 어렸을 적 글재주가 비상했던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도 진사시 복시에 떨어졌다. 하는 수 없이 편입시험인 승보시(陞補試)를 치러 청강생 격인 기재생(寄齋生)으로 성균관에 다녔다고.
근대적 의미에서의 우리나라 최초의 대입시험은 1924년 3월 18일부터 나흘간 치러진 경성제대 예과 시험. 647명이 응시해 180명이 합격했다. 광복 후 경성대학으로 이름이 바뀔 때까지 한국인 졸업생은 810명에 그쳤다. 실제론 일본인을 위한 교육기관이었던 셈. 이상재, 이승훈 등이 결성한 조선민립대학기성회의 대학 설립을 저지하기 위해 일제가 부랴부랴 세웠으니 서울대의 전신인 이 대학의 출발이 그다지 영예롭다기는 어렵다.
1964년의 '무즙 파동'은 6·25전쟁 이후 입시 지옥 풍속도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 엿을 만들 때 엿기름 대신 넣을 수 있는 것을 묻는 4지선다형 자연 문제가 탈을 냈다. 서울시교육청이 답을 '디아스타제'라고 발표하자 '무즙'을 고른 아이들의 부모가 들고 일어났다. 일부 학부모는 무즙으로 만든 엿이 담긴 솥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법정 싸움으로 번진 이 사태는 이듬해 추가 입학이 허용되면서 비로소 가라앉았다.
1968년 '목판화를 새길 때 창칼을 바르게 쓴 그림은?'이란 미술시험도 복수 정답 시비가 벌어져 학부모들이 교장과 교감을 연금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결국 중학교 입시 제도가 폐지되고 평준화 정책이 시행됐다. 1995년 성균관대의 수학시험 오류는 이를 제기한 교수에 대한 징계로 이어졌다. 법정 다툼 끝에 패소판결을 내린 판사에게 교수가 석궁을 쏜 이른바 '석궁 사건'은 영화 '부러진 화살'의 소재가 됐던 터.
2014학년도 수능의 세계지리 문항에 출제 오류가 있다며 수험생들이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등을 상대로 낸 2심 소송에서 원고가 승소했다. '유럽연합(EU)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보다 총생산액이 크다'는 설문을 정답처리한 게 불씨. 교과서엔 그렇게 실렸지만 실제론 2010년 이후의 총생산액은 NAFTA가 더 많았던 것. 평가원은 '수능의 출제 범위를 고교교육 과정으로 제한한다'는 규정을 들어 애초의 답만 고집해 소송까지 갔다. 그러나 시효가 지나 구제 조치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잘못된 시험 문제 하나가 학생들의 인생을 미궁에 빠트린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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