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잡혔던 생선이 정어리와 청어. 청어는 값이 싸 가난한 선비를 먹여 살린다 해서 '비유어(肥儒魚)'란 애칭을 얻었다. 이순신 장군도 청어 덕을 봤다. '난중일기' 선조 28년(1595) 12월 4일 자엔 휘하 장수가 청어 7000여 급(級)을 싣고 오자 쌀과 바꾼 일화가 나온다. 1급은 스무 마리. 당시 조선 수군은 자급자족의 군대여서 이순신은 늘 군사를 먹일 일에 골몰했던 것.

허균의 '성소부고(惺所覆藁)'에 따르면 청어는 4종인데, 북도산은 크고 속이 희며, 경상도산은 껍질이 검고 속이 붉다고. 전라도산은 크기가 작고 황해산은 2월에 맛이 매우 좋다고 했다. 청어는 조선시대에도 어획고가 들쭉날쭉했던 모양. 19세기 학자 이규경의 백과전서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엔 기미년(1799)엔 1급에 동전 2~3문이었다가 경인·신묘년(1830~1831)엔 40~50문까지 치솟았다고 기록돼 있다. 1960, 70년대까지는 꽤 잡혔지만 80년대로 접어들면서 씨가 마를 정도로 급감했다.

청어는 정어리와 함께 기름을 짰다. 예전엔 등잔 기름으로 쓰였고 일제 때는 동해안 마을마다 기름을 짜내는 공장도 들어섰다. 기름을 굳히면 고무처럼 단단해져서 일제 시대엔 신발 밑창과 자전거 타이어 재료로도 쓰였다. 우리말로 비웃인 청어는 눈을 꿰어 말린다 해서 관목어(貫目魚)라고도 한다. 겨울철 인기 안주인 과메기의 어원.

청어를 두름에 꿰어 바닷가에 걸어 두면 바닷바람에 얼었다 녹았다 하며 빠닥빠닥한 과메기가 된다. 살집이 얇은 꽁치는 일주일이면 과메기가 되지만 살집이 두툼한 청어는 보름 이상 걸린다. 원양에서 잡은 냉동 꽁치를 가져다 만드는 요즘의 '꽁치 과메기'는 실은 가짜다. 가짜란 말이 지나치다면 청어 과메기의 대용품이랄까. 생미역에 마늘, 실파, 풋고추를 얹어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과메기는 주당들에겐 소주를 부르는 술도둑.

사라졌던 원조 '청어 과메기'의 생산량이 늘고 있다고. 2005년까지만 해도 연평균 5000t 안팎이던 어획량이 2009년부터는 연평균 3만 t으로 6배 가량 늘어난 데 힘입은 것. 2000년대 후반부터 동해안에 냉수대가 형성되면서 어획고가 늘어났다. 대형 마트에서도 올해 청어 과메기 확보량을 크게 늘릴 계획. 올겨울 마음 맞는 벗들과 둘러앉아 과메기를 안주로 술 마실 생각을 하니 벌써 목젖이 짜르르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