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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시각] 護疾忌醫 /정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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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질기의(護疾忌醫)라는 말이 있다. 중국 전국시대 명의인 편작(扁鵲)과 채(蔡)나라 환공(桓公) 이야기에서 유래한다. 병을 숨기고 고치려 하지 않아 결국 자신의 몸을 망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언을 듣지 않으려 하는 그릇된 태도를 꼬집는 고사성어이다.

부산시의 부산문화재단 민간 이사장 임명 강행과 관련한 일련의 흐름을 보면서 이 말이 떠올랐다.

편작이 환공을 보고 "피부에 병이 들었으니 지금 치료하지 않으면 심해질 것"이라고 충고했다. 환공은 "병이 없어 치료할 필요가 없다"며 편작의 말을 듣지 않았다.

지난 9월 12일 부산시는 "부산문화재단의 역량 강화와 자율성 확대를 위해 민간 이사장제도를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부산시장이 민간에 흔쾌히 자리를 넘겼다고 하지만 '보이지 않는 손' 논란에 이어 부산예총과 부산민예총이 적임자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함께 낼 정도로 이상기류가 감지됐다. 민간 이사장제도의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보다는 특정인을 위한 옥상옥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편작은 열흘 뒤 다시 환공을 만나 "병이 살 속까지 퍼져서 서둘러 치료하지 않으면 더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환공은 다시 편작의 말을 무시했다.

부산시는 지난달 7일 부산문화재단 민간 이사장에 최상윤(74) 동아대 명예교수를 임명했다. 부산 문화계가 '물레방아가 거꾸로 돌아가는 느낌'이라고 반발했다. 민간 이사장제의 취지에 합당한 인물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22개 문화예술 및 시민단체에 이어 대학교수 170여 명이 최 이사장 임명 반대 목소리를 높였으나 부산시는 지난달 13일 최 명예교수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시는 최 명예교수 임명 이유를 "지역 문화예술계에서 폭넓은 활동으로 문화예술 경험이 풍부하고 현장 소통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편작은 다시 열흘 뒤 환공에게 "병이 내장까지 미쳤으므로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경고했다. 환공은 이를 귀담아듣기는커녕 화를 내며 편작을 내쳤다.

지난달 23일 부산 예술인과 예술단체가 '위기의 부산문화, 관변의 시대로 퇴보하는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범시민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민간 이사장 임명에 대한 반대 여론을 이끌어나가기로 했다. 부산시의 일방적인 민간 이사장 임명 절차에 관한 문제를 함께 제기하며 민간 이사장 퇴진을 촉구하는 범시민 서명운동을 병행하기로 했다.

편작은 다시 열흘 뒤 환공을 찾았으나 이번에는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다가 돌아가 버렸다. 편작은 그 이유를 "병이 이미 골수까지 스며들어 고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닷새 후 환공은 온몸에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으나 편작은 이미 떠나고 없었다.

'호질기의' 고사는 여기서 끝나지만, 부산시의 부산문화재단 민간 이사장 임명 강행에 대한 부산 문화계의 반대 운동은 현재진행형이다.

5일 오후 부산 남천동 한 음식점에서는 시민단체 대표와 문화계 원로, 대학교수들이 모여 이 문제와 관련한 범시민대책위원회 구성 방안을 논의했다. 이들은 최상윤 이사장 퇴진과 함께 부산시의 문화정책 마인드 전환을 촉구하기 위한 범시민대책위 출범식 일정 및 활동 방안 등을 논의했다. 말로만 문화융성이 아니라 실질적인 문화융성정책을 추동하겠다는 의도이다.

그럼에도 부산시는 요지부동이다. 그동안 제기됐던 신임 민간 이사장과 관련한 문제점을 해소하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민간 이사장 임명 철회는 재고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선을 그어놓은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결자해지의 용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부산시와 이번에 임명된 민간 이사장은 모든 상황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간다는, 천동설과 흡사한 아집을 내려놓아야 한다. 자신의 말을 외면한 환공을 두고 편작은 홀연히 사라졌으나 이 사태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부산에 뿌리를 둔 부산 사람이다. 이들은 이 문제를 제 일로 생각한다.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계속 활동할 것이다.

특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이들을 '내 편이 아니라 저쪽 사람'이라며 이상한 색깔을 덧칠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은 인사 참사에 이어 문화계를 갈기갈기 찢어 회복불능의 사태로 몰고 갈 자충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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