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를 마친 기자에게 그가 묵직한 비닐봉지를 내밀었다. 그 속에는 연근해산 오징어 서너 마리와 오징어채낚기 낚싯바늘 한 뭉치가 들어 있었다. 그는 연근해 어선원들에 대해 앞으로도 관심을 가져달라며 "이 오징어는 내가 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오징어는 그날 밤 신문사 뒤편 단골 밥집으로 넘겨져 안줏감이 돼 밥상에 올랐다. 오징어채낚기 낚싯바늘 뭉치는 책상 위에 올려두고 기자를 지켜보게 했다.
러시아 서베링해에서 지난 1일 사조산업 소속 원양트롤어선 501오룡호(1753t)가 침몰했다는 비보를 접한 후 기자는 1980년대 후반 수산 부문을 막 맡았을 때 겪었던 여러 일을 떠올렸다. 20여 년 전인 그때나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바라보는 지금이나 우리나라 수산 부문엔 공통점이 하나 있다. 바다는 여전히 위험한 곳이고, 수산 부문에 대한 대내 인지도가 타 업종에 비해 낮다는 것이다. 삼면이 바다인지라 우리 국민은 수산에 대해 친숙하게 느끼면서도 속사정엔 어두운 편이다. 이처럼 느낌과 앎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 진실이 흐릿하게 보일 수 있다. 게다가 한국 사회에는 수산 부문이 가진 고유한 전문성에 대한 정보가 아주 불균형하게 분포한다. 상당한 '정보 비대칭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번 501오룡호 침몰 사건을 놓고 볼 때도 그렇다. 경찰이 관련 수사를 한다는 건 극한 상황인 원양에서 벌어졌던 사실을 제대로 복원하고 그것에 대해 가치 판단을 내려야 함을 뜻한다. 11일 현재 생존자 7명이 제시할 진술, 여러 통신 기록, 컴퓨터 정보 같은 간접 정보가 있을 뿐이어서 상황은 녹록지 않다. 핵심 정보를 담고 있는 501오룡호 선체를 건져내기도 무척 어려워 보인다. 이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면 경찰 수사관이나 담당 공무원, 취재 기자, 학계는 헛다리를 짚는다고 봐야 한다. 그런 조짐을 감지했는지 베링해 조업 경험이 있는 간부급 원양선원들이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우려와 함께 다양한 정보를 올리고 있다.
이들은 한목소리로 한겨울 북양 베링해가 얼마나 극한 환경인지를 설명했다. 매년 12월 중순~이듬해 1월 베링해 수온은 영하 10도를 오르내려 어선 철수가 꼬리를 문다. 이 혹한기에는 특수 방한복을 입었더라도 바닷물에 10분 이상 노출된 선원은 저체온증으로 생명이 위협을 받는다. 파고가 4~7m가 되면 5000t급 군함조차 가까운 항구로 피신해야 한다. 당연히 실종자 수색도 중단된다. 어장 해역 수심은 80~200m, 다른 수역은 수심 500~3000m여서 어군탐지기가 무용지물이다. 이런 악조건 아래 입어료를 내고 정해진 기한 내 할당된 양(쿼터)만큼 명태를 잡아야 한다. 쿼터제 입어는 어선원·선박 안전과 최대 수익 사이에 서 있는 살벌한 노동이라 할 수 있다. 한겨울 술꾼이 즐기는 해장국 속 북양 명태는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 한국으로 수송된다.
SNS에는 긴박한 어로 작업 동영상도 올랐다. 선미 슬립 웨이(Slip way)를 통해 어획물이 가득 찬 길쭉한 그물이 상부 간판으로 끌어올려 질 때 파도도 같이 치고 들어온다. 그물 좌우에서 작업을 돕는 어선원들이 이 파도에 휩쓸리지 않을까 보는 이는 가슴을 죄게 된다. 상부 갑판으로 올라온 어획물은 유압장치로 가동하는 문을 통해 처리실이 있는 아래쪽 하부 갑판으로 옮겨진다. 이번 사고는 이 과정에 문제가 생겨 해수가 함께 유입돼 발생했을 수도 있다고 트롤어선 선장들은 진단했다. 이들은 트롤선박 구조와 조업 특성을 잘 모를 경우 501오룡호(선령 36년) 침몰 원인 수사가 선박 노후와 부실 정비 쪽으로 흐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오룡호가 침몰한 지 11일째를 맞았다. 사고 해역에서는 실종자 수색이 중단과 재개를 반복 중이고 육지에선 사후 처리와 경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역대 최악 원양어선 침몰 사례인 이번 사고가 무엇을 뜻하는지 새겨봐야 할 시간도 다가왔다. 501오룡호 침몰은 우리 수산업이 이제라도 성장 강박에서 벗어나 무엇보다 안전을 추구해야 함을 말해준다. 갈수록 많은 외국 어선원을 고용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선박 안전은 우리나라 국제 신인도와도 직결된다. 정부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국내 수산업이 처한 팍팍한 환경을 제대로 들여다보고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처방해야 한다. 당사자인 수산업계는 이익보다 어선원 안전을 우선하는 경영을 하루빨리 정착시켜야 할 터이다. 길게 보면 그게 내리막에 들어섰다는 수산업계가 살아남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