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증세 없는 복지'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어제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불가능하며, 정치인이 그러한 말로 국민을 속이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세금을 더 거두지 않고도 복지 정책을 펼 수 있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기조에 공개적으로 제동을 건 셈이다. 야당도 "증세 없는 복지는 거짓"이라고 주장해온 터라 청와대가 여야로부터 압박 받는 모양새가 됐다.

박 대통령과 정부는 그동안 지하경제 양성화와 비과세 감면 축소 등을 통해 증세를 하지 않아도 복지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하지만 복지 예산이 지난해 처음으로 100조 원을 돌파했고, 올해는 115조 원으로 전체 예산의 30%를 넘어 나라 살림을 옥죄고 있는 실정이다. 이대로라면 2033년에는 국가 재정이 파탄 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온 터다. 김 대표가 복지 확대 사례를 조목조목 짚어 포퓰리즘으로 규정하고 방향 전환을 촉구하고 나선 이유도 다른 데 있지 않을 것이다. 청와대를 향한 강한 톤의 메시지는 비박근혜계인 유승민 의원이 친박을 누르고 신임 원내대표에 당선되면서 변화한 당내 역학 구도와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유 원내대표도 경선 승리 후 "증세 없는 복지 재검토"를 밝힌 바 있다.

새누리당 투톱의 이런 주장이 정부 핵심 정책을 둘러싼 당·청 간 힘겨루기나 갈등 양상으로 흘러선 국정 난맥만 초래할 뿐이다. 여당 지도부가 복지 문제를 공론화시킨 이상 재정이 거덜 나지 않도록 설계를 다시 해야 한다. 세금을 늘리거나 복지를 줄이거나 선택해야 할 시점이라고 본다.

우선은 복지 예산이 어떻게 쓰이는지 전면적 점검을 통해 지출의 중복과 비효율을 없애는 작업부터 필요하다. 그런 뒤 증세가 필요하다면 국민의 뜻을 묻는 과정을 거치면 될 것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세율을 25%에서 22%로 인하했는데도 기업 투자가 크게 늘지 않았다는 비판을 사온 법인세의 인상과 부자감세 철회 등 민감한 문제도 검토 대상에서 피해갈 수 없다. 당·정·청은 저부담-저복지냐, 고부담-고복지냐를 놓고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