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태평양에서 열린 '24회 환태평양 합동군사훈련(RIMPAC)'에서 우리 해군 대표는 서애 류성룡함과 이순신함이었다. 수상에서 이지스 구축함인 류성룡함이, 수중에선 잠수함인 이순신함이 서로 공조하며 미사일로 가상의 적기 2대를 멋지게 격추시키는 장면을 연출했다. 류성룡 선생은 서울에서 바로 이웃하며 함께 자란 세 살 아래 이순신 장군의 유력 후견인이었다. 두 분이 힘을 모아 임진왜란 당시 우리 바다를 지켜냈던 것을 상기시킨 '문무합작' 퍼포먼스라 하겠다.
선조를 보필한 신료로서 7년의 전란을 겪은 서애 선생이다. 이런 끔찍한 참화를 왜 당해야 했는지를 참회하는 징비록(懲毖錄)을 남겼다. 책 제목 그대로 '미리 징계해 후환을 경계하자'는 게 그 참뜻이다. 적에 대한 원망이 주가 아니라 우리의 허물을 낱낱이 들춰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적인 왜의 조총이나 병법 등을 보태 후세들이 다시는 이런 아픈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라는 가르침이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란 병법의 상식을 당시 조정 대신들은 글로만 익혔지 실천하지 않은 것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기도 했다.
벼슬길을 나와 고향 안동 하회에서 집필 3년여 만에 끝낸 이 책이 선생이 그토록 경계해 하던 왜에 의해 더욱 주목받은 사실도 아이러니다. 일제 식민사관을 주도한 조선사편수회에 의해 책 존재가 알려졌다. 1936년 하회 종가(宗家)에 있던 선생의 친필 필사본을 발견한 것이다. '난중일기'와 함께 임란 주요 사료로 나란히 국보다. 앞서 1633년 선생의 글을 모은 서애집(西厓集)과 동시에 나온 이 책은 1693년 한국과 중국 문헌들의 일본관련 기록을 모은 '이칭일본전'을 통해 일본에 소개됐다. 나중에 통신사 신유한은 일본 견문록인 해유록(海遊錄, 1719년)에서 이런 유포 사실을 한탄하기도 했다.
'징비록' 바람이 일고 있다. 출판계에서 징비록 관련 서적들이 출간 붐을 타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 한 방송사에서 제작한 '징비록' 사극이 지난 주말 첫 방영되면서 인기몰이를 예고했다. 일제의 억압사슬에서 벗어난 지 해방 70주년을 맞은 해다. 한일 국교정상화가 이뤄진 지도 50년이 흘렀다. 70년 전 체제에 향수를 느끼는 일본을 우리는 지금 대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허물부터 살피는 성찰이 필요하다. '징비록' 바람이 그 한 방편이었으면 한다. 이런 정신만이 극일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