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먼 옛날 상고시대로 이끌어주는 것은 고대인들의 무덤이다. 청동기시대는 고인돌(支石墓)이, 그 앞 시기인 신석기시대는 패총(貝塚·조개무덤)이 타임머신 역할을 한다. 지상에 노출된 고인돌은 말 그대로 무덤이지만 패총은 사실 무덤이 아니다. 바닷가에서 생활하던 고대인들이 버린 조개껍데기들이 수천 년간 쌓이고 쌓이면서 형성된 신석기인들의 쓰레기매립장이다. 조개 성분이 석회질이라 자연스럽게 당시 함께 버려졌던 생활 유물들이 온전하게 보전돼 우리를 반기는 것이다.
흔히들 신석기시대를 빗살무늬토기 시대라고 부른다. 기원전 6000년~기원전 2000년 오랜 기간 빗살무늬토기가 쓰였기에 붙여진 것이다. 한반도의 신석기시대 연대 추정에서부터 생활 문화상의 베일을 처음으로 벗겨준 건 영도 동삼동패총이다. 1962년 미국인 고고학자인 모아, 샘플 부부에 의해 발굴 조사돼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이를 계기로 이 땅의 고고학자들도 패총의 중요성에 눈을 뜨게 되고 발굴 능력도 향상됐다. 1500여 개에 달하는 조개팔찌(貝釧·패천)와 조개껍데기로 만든 조개가면은 이 패총의 대표적 유물로 꼽힌다.
신석기 시대 유물 보고인 동삼동패총은 고고학자들의 발굴조사와 연구가 거듭될수록 가치가 더욱 더해가고 있다. 1999년 부산박물관 발굴조사로 이곳이 당시인들의 최고 장신구인 조개팔찌 제조 공급처였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2003년에는 사슴그림이 선명하게 새겨진 토기가 발견됐고, 2011년엔 울산 반구대암각화에 있는 혹등고래와 같은 류의 고래뼈가 확인됐다. 신석기인들의 포경 사실을 짐작하게 하면서 청동기시대로 추정되던 반구대암각화의 연대도 올릴 수 있는 귀중한 단서가 제공된 것이다.
부산 영도구청이 동삼동패총에 대해 이달 말부터 추가 발굴조사를 시행한다고 한다. 부산박물관이 발굴작업을 맡았다. 이 패총 발굴 과정은 우리의 아픈 역사와 함께한다. 일제 강점기인 1929년 동래고보 일본인 교사에 의해 존재가 처음 확인됐고 미국인 부부 학자에 의해 중요성이 알려진 것. 이후 우리의 발굴 성과가 더해져 사적으로 지정되고 동삼동패총기념관도 들어설 수 있었다. 근 10년 만에 발굴 작업이 다시 이뤄진다. 발굴만 했다하면 언제나 세인의 이목을 끈 성과를 낸 곳이다. 이번에는 또 어떤 유물이 수천 년의 잠을 깨고 나타나 동삼동패총 주가를 높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