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다 히로. 지난해 1월 92세로 죽기까지 그는 일본 군국주의의 살아 있는 화신이었다. 필리핀 한 섬에서 혼자 버티다 30년 만인 1974년 세상 밖으로 나온 일본 육군 소위다. 그가 그 과정에서 원주민들을 숱하게 해쳤지만 일본 사회는 그의 군인정신만을 높이 사며 열광했다. 전범 국가로서 자기 성찰이나 원주민 희생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옛 군국주의 향수만이 넘쳐났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지 70년이다. 우리는 아직도 독일 나치 협력자들이 붙잡혔다는 소식을 간혹 접한다. 같은 전범국인 독일은 집요할 정도로 지구촌 곳곳에 숨어 있는 나치 협력자 추적의 끈을 늦추지 않고 있다. 인류에 씻지 못한 참화를 가져온 두 전범국은 너무도 다른 전후 처리 모습을 보인다. 나치 청산과 군국주의 향수로 극과 극이다.
일찍이 미국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이렇게 간파한 바 있다. "일본에서 군국주의는 한때 지나간 한줄기 빛이지만 언젠간 다시 유혹에 빠질 수 있다"고. 미국 정부의 의뢰로 그녀가 일본을 연구해 전후인 1946년 펴낸 '국화와 칼' 말미에 결언삼아 던진 말이다. 세월이 흘러도 일본 알기 기본서로 아직까지 통하는 이유가 다 있었다.
일본이 패전하면서 우리는 식민 사슬에서 벗어났다. 올해는 해방 70년이자 그들과 다시 국교를 정상화한 지 50년이 된다. 한일 두 나라 관계는 지금 최악이란 말이 공공연히 나올 정도로 바닥권이다. 아베 신조 총리가 '전후 체제' 청산을 내걸고 국수주의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이다. '패전 일본국'이란 멍에에서 벗어나자며 자국민들에게 은근히 군국주의 향수를 부추긴다. 우려스러운 국가 지상주의가 힘을 얻는 형국이다.
독일 메르켈 총리가 엊그제 일본 땅에서 일본의 올바른 역사 인식을 당부했다. "과거의 잘못을 정리했기에 주변국과 화해가 가능해 유럽의 통합을 이룰 수 있었다"며 일본의 각성을 촉구한 것이다. 그녀의 발언을 다루는 양국의 언론 자세가 두 나라의 간극을 그대로 나타냈다. 우리는 정상회담하러온 메르켈 총리가 일본에 작심 발언을 한 것으로 크게 다뤘다. 일본 언론들은 달랐다. 군위안부 문제 등을 끊임없이 제기한 아사히 신문 정도나 크게 취급했지 다른 매체들은 그렇지 않았다.
이게 현재 일본의 현실이다. 우경화 국수주의가 지배하고 있다. 아베 정권은 이런 여론 흐름 속에서 나왔으며 이를 더욱 키우는 데 정권의 운명을 걸고 있다. '잃어버린 20년'을 되뇌이는 일본인들에게 대동아공영권을 외치던 옛날이 못내 그리운 것이다. 그들에겐 식민지 침략전쟁은 영광이지 참회의 대상이 아니다. 당연히 이웃나라들에 안긴 아픔은 관심 밖이다. 오히려 그들 덕에 근대화가 됐다는 망언까지 한다.
메르켈 총리의 말에 일본 보고 "그것 봐라, 이래도 과거를 직시하지 않을래"라고 소리쳐 봐야 소 귀에 경읽기나 다름없다. 과거에 언제까지 매달려 있을 것이냐며 미래를 설계하자고 버티는 게 일본이다. 가해자가 피해자 보고 나무라며 화해를 강요하는 투다. 이런 일본을 어떻게 상대하는 게 좋을까. 과거를 참회하지 않는 한 우리 역시 움직이지 않겠다는 건 일응 그럴듯해 보이지만 상책이라 하긴 그렇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했다. 그들이 놓치는 인류 보편적 가치를 우리가 한 수 위임을 가르쳐주면 어떨까. 4·19혁명에서부터 부마민주항쟁과 광주민주항쟁 등은 우리의 소중한 자유 민주주의 정신 자산이다. 전후 일당 지배가 고착화되다시피한 일본으로선 넘을 수 없는 벽이다. 세계 평화정신도 우리에 댈 게 아니다. UN평화공원이 말해주듯 세계의 각국 젊은이가 이땅에서 평화를 위해 피를 흘렸다.
옷을 벗기는 것은 강한 바람이 아니라 햇볕이라고 했다. 민주와 평화를 대신할 가치는 없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그들이 잘못 가고 있는 것을 말이 아닌 실천으로 보여줘야 한다.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기본적 가치와 이익을 공유하는 이웃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로 일본 외무성이 우리를 깎아내리고 있다. 평화헌법까지 연내 개정해 자위대의 집단자위권 행사까지 노리고 있는 아베 정권이다.
세월호 참사 처리에서 보인 인간 존중이 아닌 국가 지상주의가 횡행하는 한 일본은 바뀌기 어렵다. 일본군 잔재인 군내 폭력이 존재하는 한 일본에게 우리는 안중에 없을 것이다. 동남아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이 1970, 80년대 이땅에서 활동한 일본기업들의 '임금 따먹기'식 노동 착취를 되풀이하는 한 그들은 부끄러운 줄 모를 것이다.
서애 류성룡 선생이 '징비록'에서 우리 허물부터 경계하는 게 극일이라고 일렀다. 하지만 그 가르침도 헛되게 두 번의 시련을 겪은 우리다. 역사에서 배우는 민족만이 진정한 승자임을 우리도 보여주자. 메르켈 총리가 우리에게 던진 메시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