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에는 항용 '매력적인 악인'이 등장한다. 세인들은 악행을 보면서도 인간적 매력에 묻혀 동정심을 발동하기도 한다. 악행이 매력으로 둔갑하는 데는 발효의 시간이 필요하다.
리처드 3세(1452∼1485)는 영국 역사상 가장 사악하면서도 매력적인 악인으로 각인돼 온 인물이다. 선천적 척추기형의 장애를 가진 국왕으로 일명 '꼽추왕'이라 불리기도 한다. 그는 1483년 형인 에드워드 4세가 사망하고 12살짜리 조카가 즉위(에드워드 5세)하자 섭정 두 달 만에 조카를 폐위시키고 왕위를 가로챘다. 이후 리처드 3세가 조카와 동생을 런던탑에 가둬 죽였다는 설이 파다했고, 그로부터 200여 년 만에 런던탑에서 어린이의 유골 2기가 발견되면서 리처드 3세의 악행은 사실로 굳어졌다. 리처드 3세는 왕위계승 전쟁인 장미전쟁의 종지부를 찍은 보스워스 전투에서 전사한 후 역사에서 한동안 사라졌다.
셰익스피어의 초기 걸작 '리처드 3세'는 바로 이 리처드 3세를 소재로 한 희곡이다. 셰익스피어는 왕위에 대한 야망에 사로잡힌 리처드 3세의 복잡한 성격을 긴장감 있게 묘사했다.
어린 조카의 왕위를 찬탈했다는 점에서 리처드 3세는 조선의 수양대군(세조)과 비슷하다. 1452년 12세에 왕위에 오른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5년 뒤 영월 청령포로 유배된 뒤 사약을 받는다. 이 때문에 단종은 조선 왕 가운데 유일하게 장례를 치르지 못했다. 단종 애사는 역사의 슬픔으로 잦아들었고, 영월 주민들은 지난 2007년 제41회 단종문화제 때 단종의 혼을 달래기 위해 국장(國葬)을 재현했다. 단종 사후 550년 만의 장례식이었다.
사후 종적이 묘연했던 리처드 3세의 유골이 세상에 드러난 건 2012년 9월. 레스터대학 발굴팀이 레스터시의 야외 주차장에서 유골을 발견하고 DNA 검사를 통해 리처드 3세임을 공식화했다. 지금 레스터시 일대에는 전투 중 사망한 국왕의 유골을 530년 만에 매장하는 역사적인 이벤트를 거행하느라 떠들썩하다.
영국 국민들이 리처드 3세에 뜨거운 관심을 갖는 이유는 유골 발굴 과정이 흥미로웠던 것도 있지만, 리처드 3세란 인물 자체가 갖는 강렬한 캐릭터 때문인 듯하다. 전체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리지만, 꼽추라는 추악한 외모에도 굴하지 않고 냉철하고 용맹스러운 국왕이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복잡하면서도 단점이 많은 인간, 바로 그 점이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매력 포인트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