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는 산 같고, 죽음은 홍모 같다'는 속담이 있다. 의리는 산 같이 무겁고, 죽음은 기러기 털과 같이 가볍다는 말이다. '삼국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 중에 도원결의(桃園結義)가 여기에 해당된다 하겠다. 천하 대업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던지는 관우 장비의 행적에서 의리가 지니는 천근 같은 무게감이 가슴 뻐근하게 전해져 오기 때문이다. 청소년기 친구 간 치기 어린 의기투합을 둘러대는 데 자주 쓰인 것에서도 짐작이 된다.
조선시대 정조의 문체반정에 맞선 학자로 잘 알려진 이옥은 협창기문(俠娼奇聞)에서 다소 색다른 기생의 의리를 오늘에 전한다. 1755년 을해옥사로 화를 당한 단골 벼슬아치가 제주로 귀양을 가게 되자 지니고 있던 패물을 다 털어 동행한 것. 이 기생은 동료들에게 "한 명의 단골이라도 굶어죽는다는 것은 내 수치"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두 사람은 제주 현지에서 가져간 돈으로 몇 날 며칠 통음 끝에 차례로 숨졌다는 내용이다. 이옥은 "재물만을 뒤쫓는 세상의 기생들과 어찌 비교할 수 있느냐"며 이 기생을 의협심이 있는 창기(娼妓) 즉 협창이라 칭송했다.
이처럼 옛날 밑바닥 인생조차 사람 가치의 척도로 높이 치던 의리가 오늘날 형편없이 추락하고 있다. 실리에 반하는 개념쯤으로 치부되는 것은 이제 약과다. 여기서 더 나아가 아예 정의와 반대되는 말로 통한다. 앵커로 명성을 얻었던 새정치민주연합 신경민 의원은 저서 '신경민의 개념사회'에서 "의리와 인연을 버려야 정의를 바로세울 수 있다"고 말할 정도다. 박근혜 대통령은 보다 직설적이다. 지난해 11월 '비정상적 부패관행개선 보고'를 받는 국무회의에서 "공직사회에서 흔히 정의의 반대말은 불의가 아니라 의리"라고 했다. "청탁은 멀고 낯선 사람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에서 일어난다"면서.
성완종 리스트 파문이 갈수록 확산되면서 의리남이 화제로 떠올랐다. 고인이 죽음 직전 서청원 윤상현 김태흠 의원과 최경환 부총리 등 4명의 정치인이 '의리를 지킨 사람들'이라고 가족들에게 토로한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자신의 억울함을 김기춘 전 비서실장 등 소위 정권 실세들에 전해줬다는 게 그 이유란다. 무조건 구명운동을 도운 이는 의리남이고 외면한 이는 배신자인 셈이다. 인간의 꽃이자 인정의 광채라는 의리가 오물을 덮어쓰고 있다. 의리는 정의에 반한다는 대통령 말을 여권 스스로 입증해 보이는 오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