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 유일한 분단국인 우리나라에서 남과 북이 뒤바뀌는 모진 고난의 고장으로 개성을 들 수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에 의해 위도 38도선으로 두 동강날 때 남한 땅이 됐다가 북한의 침공으로 동족상잔을 치른 뒤 북녘 땅이 돼버린 상흔이 깃든 곳이다.
500년 고려왕조의 도읍지 개성은 박완서(1931~2011) 선생에게는 은빛 도시로 기억된다. 이곳으로부터 이십 리 떨어진 시골에서 출생한 선생은 "나는 탄성을 질렀다. 은빛으로 빛나는 도시였다"('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기와지붕과 네모난 이층집 유리창에서 박살나는 한낮의 햇빛은 무수한 화살처럼 적의를 곤두세우고 있었다"('엄마의 말뚝') 등으로 어린 소녀의 시선을 빌려 첫인상을 그려놓았다. 개성 거상(巨商) 일가의 삶을 그린 선생의 역사소설 '미망'은 고향의 지리와 풍속 등을 세밀하게 복원한 역작으로 통한다.
남북 관계가 꽁꽁 얼어있던 시절 휴전선에 접한 개성은 평양이나 신의주 등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겐 미지의 땅이었다. 남북관계에 해빙의 물꼬가 트이면서 지리적 이점을 살린 개성은 남북 교류협력 사업의 상징적 장소가 됐다. 2004년 12월 15일은 그런 점에서 기념비적인 날이었다. 개성공단에서 우리 기업의 제품이 북의 근로자에 의해 생산돼 당일 군사분계선을 넘어 서울의 백화점 매대에 진열됐다. 남북 관계 지각 변동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남의 자본과 기술력에 북의 노동력이 결합된 개성공단은 산뜻한 출발과는 달리 부침을 거듭하고 있다. 통일로 가는 전초기지란 기대와 달리 남북관계의 바로미터 역할쯤에 머물고 있다. 꼭 2년 전 4월 29일 개성공단 입주기업체 직원들의 길게 늘어선 피난 차량행렬이 이를 웅변으로 말해준다. 북한 측의 근로자 철수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우리 정부가 전원 철수 결정을 내려 내전을 치르는 중동과 흡사한 장면을 연출한 것이다.
개성공단 기업들이 또 홍역을 치르고 있다. 근로자 임금을 올려준 3개 기업에 대해 정부가 제재에 나섰다. 북측 임금인상 요구에 응하지 말라는 지시를 어겼다는 이유다. 지난해 12월 임금문제가 제기됐지만 남북이 서로 힘겨루기를 하며 시일만 보냈다. 기업들로선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꼴이다. 2년 전 철수기한이 100일 넘게 이어져 사업을 접은 기업도 있었다. 이러다 남북경협의 산소호흡기란 공단 기업들이 하나 둘 사라지는 게 아닌지 걱정이다.